아르테미스가 사냥하는 것들
아르테미스 2호가 발사된 순간을 기록한 이들이 더 있다. 센터의 궤적을 가로지르던 몇 대의 항공 여객기의 승객들 다수가 창밖으로 로켓이 구름을 뚫고 올라가는 장면을 소셜 미디어에 올렸다. 다각도에서 찍힌 그 많은 영상들은 여러 플랫폼을 순환하며 수천만 회 재생되었다. 비행기 안에서 로켓 발사를 찍어 소셜 미디어에 공유하고, 전 세계가 각자의 스마트폰으로 그것을 실시간으로 본다는 이 사태 자체가 사실 하나의 기적이다. 그리고 그 기적의 계보를 추적하면, 결국 아폴로 프로그램으로 돌아간다.
아폴로 계획이 남긴 것이 달 표면의 발자국뿐이라고 생각한다면 크게 틀린 것이다. 1963년, 아폴로 프로그램은 미국 전체 집적회로 생산량의 60%를 소비했다. 달에 사람을 보내기 위해 컴퓨터를 극단적으로 소형화해야 했고, 그 과정에서 반도체 산업이 폭발적으로 성장했다. MIT의 연구자 존 틸코는 아폴로가 없었어도 집적회로는 나왔을 것이지만, 무어의 법칙이 1965년이 아닌 10년은 늦게 등장했을 것이라고 했다. 아폴로 유도 컴퓨터의 처리 속도는 0.043 메가헤르츠였다. 오늘날 아이폰의 프로세서는 그것의 10만 배 이상이다. CMOS 이미지 센서, 디지털 영상 처리, 무선 통신 기술 등 지금 우리가 손에 들고 있는 스마트폰을 구성하는 핵심 기술의 상당수가 달에 가기 위해 개발된 것들의 후손이다. 이처럼 아폴로 프로그램에서 파생된 기술은 1800개 이상으로 집계된다.
그래서 이번 오리온 우주선 안에서 우주비행사들이 아이폰 17 프로 맥스로 지구 사진을 찍어 전송하는 장면에는 단순한 인증샷 이상의 의미가 있다. 달에 가기 위해 만든 기술이 반도체 혁명을 낳았고, 반도체 혁명이 스마트폰을 만들었고, 이제 그 스마트폰이 다시 달로 향하는 우주선 안에서 지구를 찍고 있다. 일종의 역사적 재귀로 볼 수 있는 이 구조에선 원인과 결과가 서로를 물며 나선형으로 상승하며 기술 발전이라는 것의 본질을 정확히 보여준다. 하나의 도약이 다음 도약의 발판이 되고, 그 발판 위에서 다시 뛰어오르면 이전에는 보이지 않던 풍경이 펼쳐진다.
오리온호에는 라이트 형제의 비행기에서 떼어낸 1인치 정도의 머슬린 천 조각이 실려 있다. 1903년 키티호크 해변에서 12초 동안 36미터를 날았던 그 비행기의 천이, 123년 뒤에 달 궤도를 비행하고 있다. 같은 천 조각의 또 다른 부분은 이미 화성에 있다. NASA의 인제뉴이티 헬리콥터에 실려 화성 하늘을 날았다. 키티호크에서 달까지, 키티호크에서 화성까지. 인간이 무엇을 할 수 있는 존재인지에 대한 이 증거물이 인류의 존재론적 선언으로 보인다면 지나치게 낭만적인 발언인 걸까? 해당 우주선에는 취소된 아폴로 18호에 실릴 예정이었던 성조기도 함께 탑재되었다. 한 번도 우주에 가지 못했던 깃발이 반세기의 침묵을 깨고 마침내 달을 향해 날아가고 있다는 사실은 어떤 서사시보다 웅변적이다.
1972년 아폴로 17호 이후 인류는 지구 저궤도 바깥으로 단 한 발짝도 나가지 않았다. 54년이라는 공백 동안 우리는 국제우주정거장이라는 안전한 울타리 안에서 빙글빙글 돌았을 뿐이다. 그 긴 동면이 드디어 끝난 것이다. 10일간의 달 궤도 비행 중 달 표면에 착륙하진 않지만, 이것을 단순한 시험 비행이라고만 부르는 것은 부족하다. 아르테미스 2호는 인류가 다시 한 번 중력의 우물에서 기어 나오겠다는 의지의 물리적 표현이다.
승무원 구성도 하나의 정치적 문맥으로도 볼 수 있다. 이번 작전에서 파일럿의 임무를 맡은 빅터 글로버는 지구 저궤도를 넘어 심우주로 향한 최초의 유색인종이다. 크리스티나 코크는 같은 영역에 도달한 최초의 여성이다. 제레미 핸슨은 미국인이 아닌 최초의 달 궤도 비행사가 되었다. 대다수가 백인 남성 군인으로만 구성되었던 아폴로 승무원과 비교하면, 아르테미스는 단어의 가장 정직한 의미에서 ‘다른 세계’를 열고 있다.
그런데 이 미션이 순수한 과학적 낭만만으로 추진되고 있다고 생각한다면 순진한 것이다. 아르테미스의 이면에는 냉정한 지정학이 있고, 그 지정학의 핵심에는 자원이 있다.
달의 표토에는 헬륨-3이라는 동위원소가 수십억 년간 축적되어 왔다. 헬륨-3과 중수소의 핵융합 반응은 기존 핵융합과 달리 고에너지 중성자를 거의 만들지 않는다. 방사성 폐기물이 사실상 없는 깨끗한 에너지로 볼 수 있는 이 자원을 활용했을 시, 원자로 벽의 중성자 손상도 극적으로 줄어들어 유지비용이 낮아지고, 에너지 변환 효율은 높아진다. 태양풍이 대기 없는 달 표면에 직접 부딪히면서 남긴 이 자원의 최소 추정 매장량은 약 100만 톤. 이론적으로 수백 년간 전 인류의 에너지 수요를 감당할 수 있는 양이다.
올해 3월, 미국의 블랙문에너지는 미 에너지부와 달 헬륨-3 공급 계약을 체결했다. 해당 기업은 JPL과 칼텍이 참여하는 로봇 탐사 미션을 통해 실제 매장량과 채굴 가능성을 조사할 예정이다. 높은 기술적 장벽의 한계로 아직 헬륨-3 핵융합이 순에너지 출력을 달성한 적은 없지만, 케네디 전 대통령이 1961년에 달 착륙을 선언했을 때도 필요한 기술의 대부분은 존재하지 않았다는 사실을 기억한다면 이는 획기적인 걸음의 시작이라고 볼 수 있다.
헬륨-3이 단순히 추상적인 미래 에너지 논의가 아닌 이유는 지구가 지금 이 순간 전례 없는 에너지 위기를 겪고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 위기의 진원지에는 다름 아닌 AI가 있다.
국제에너지기구(IEA)에 따르면 2026년 글로벌 데이터센터 전력 소비는 1100테라와트시에 달할 전망이다. 이는 일본 전체의 연간 전력 소비량과 맞먹는 규모다. AI 작업 한 건이 일반 웹 검색 대비 최대 1000배의 전력을 소모한다는 분석이 있다. 마이크로소프트, 구글, 메타, 아마존이 올해 데이터센터에 쏟아붓는 자본지출 합계는 3200억 달러를 넘었다. 미국 전체 전력 유틸리티 산업의 연간 인프라 투자의 두 배다. 저명한 기술 전문 컨설팅 기업 가트너는 2027년까지 전력 부족이 AI 데이터센터의 40%를 운영 제약 상태로 몰아넣을 것이라고 경고했다. 미국 가정 전기요금은 2019년 대비 42% 올랐으며, 현재 호르무즈 해협 사태로 더욱 어두운 전망만 예측되고 있다. AI가 가져다주는 편의의 이면에는 일반 가정의 전기요금으로 전가되는 천문학적 에너지 비용이 있다. ChatGPT에게 던진 질문 한 개가 구글 검색 10건분의 전력을 먹는다. 우리가 AI에게 저녁 메뉴 추천을 해 달라고 할 때마다 어딘가의 발전소가 조금 더 돌아가고, 어딘가의 냉각수가 조금 더 데워진다.
이 맥락에서 헬륨-3 기반 핵융합은 그저 가능성 있는 미래 에너지원 중 하나가 아니라, 거의 유일한 구조적 해법에 가깝다. AI와 양자컴퓨팅이 요구하는 천문학적 전력, 화석연료의 기후적 한계, 기존 핵분열의 안전성 우려를 동시에 해결할 수 있는 후보가 달의 헬륨-3 외에 무엇이 있는가. 양자컴퓨터의 극저온 냉각에도 헬륨-3가 필수적이라는 점까지 고려하면, 달 자원은 AI 시대의 물리적 기반 인프라 그 자체가 될 수 있다. 맥킨지가 전망하는 2035년 양자컴퓨팅 시장 규모 1조 3천억 달러, 그 시장이 요구하는 헬륨-3 수요만 연간 10~15톤임을 고려하면 달은 더 이상 시적인 대상이 아닌 미래를 책임질 자원으로서 빛을 발한다. 그리고 바로 이 지점에서 1960년대의 우주전쟁이 2020년대의 거울 속에서 되살아난다.
냉전 시대 우주 경쟁의 본질은 이념의 대리전이었다. 1957년 스푸트니크, 1961년 가가린, 1969년 아폴로 11호를 통해 미국과 소련은 누가 먼저 하늘을 차지하느냐를 놓고 국가적 자존심을 걸었고, 그 경쟁이 역설적으로 인류 역사상 가장 위대한 기술적 도약을 만들어냈다. 60년이 지난 현재의 구도는 놀라울 정도로 유사하다. 차이점이 있다면 미국의 대척점이었던 소련의 자리에 중국이 앉았다는 것이다.
중국의 창어 프로젝트는 체계적이고 집요하다. 2019년 세계 최초 무인 탐사선의 달 뒷면 착륙, 2024년 달 뒷면 최초 토양 샘플 회수. 올해 창어 7호 발사를 앞두고 있는 중국 정부의 목표는 2030년까지 유인 달 착륙, 2035년까지 달 남극 국제연구기지 건설이다. 이와 병행해 차세대 유인 우주선 멍저우, 달 착륙선 란위에, 초대형 발사체 창정 10호의 개발이 진행되고 있다. 미국은 아르테미스로 맞서고 있지만, 아폴로 절정기 NASA 연간 예산이 인플레이션 보정 기준 430억 달러였던 데 비해 현재는 250억 달러 수준으로, 미국 전체 예산의 0.33 퍼센트에 그친다. 그 격차를 SpaceX와 블루오리진 같은 민간의 혁신으로 메우는 것이 21세기 우주 경쟁의 특징이다.
2020년대의 우주 경쟁은 AI 경쟁과 맞물려 하나의 거대한 패권 게임으로 수렴하고 있다. AI를 돌리려면 에너지가 필요하다. 에너지의 궁극적 해법은 핵융합이고, 핵융합의 이상적 연료는 달에 있다. 달의 남극 영구 음영 지역에는 물 얼음도 존재할 것으로 추정되며, 이 물은 음용수와 산소, 로켓 연료로 전환할 수 있다. 먼저 도착하는 나라가 최적의 입지를 선점하고, 그것이 향후 수십 년의 우주경제 질서를 좌우한다. 60년대의 우주전쟁이 이념의 문제였다면, 지금의 신우주전쟁은 에너지와 자원과 기술 패권의 문제다. 그리고 여기에 AI라는 변수까지 얹히면서, 우리는 인류 문명의 다음 세기를 결정짓는 게임에 던져졌다. 이 게임에서 가장 아름답고 가장 비통한 순간은 역설적으로 경쟁과 무관한 곳에서 온다.
지구를 떠난 이틀째, 빅터 글로버가 본부와의 교신에서 말했다. "우리를 믿으세요. 여러분은 아름답습니다. 그리고 여기서 보면, 여러분은 하나로 보입니다. 호모 사피엔스, 그게 우리 모두예요. 어디서 왔든, 어떻게 생겼든." 부활절 아침, 지구를 향한 인삿말에서 글로버는 다시 말했다. 이 광대한 우주는 대부분 아무것도 없는 공허인데, 그 공허 속에 지구라는 오아시스가 있고, 우리는 거기서 함께 살고 있다고. 종교를 믿든 믿지 않든, 이 순간은 우리가 어디에 있는지를 기억해야 하는 순간이라고. 그의 말을 끝으로 네 명의 우주비행사가 우주선 안에서 손을 맞잡았다.
현대 사회에서 사진은 대상을 소유하는 행위라고 여겨진다. 그렇다면 25만 킬로미터 밖에서 찍은 지구의 사진은 무엇을 소유하고자 하는 것인가? 소유라는 개념 자체가 무의미해지는 거리에서 카메라는 오히려 겸허의 도구가 된다. 이번 작전의 사령관인 와이즈먼이 오리온호 창문 너머로 찍은 지구 사진. 양쪽 극에서 오로라가 빛나고 태양의 황도광이 번지는 그 사진에서 국경선은 존재하지 않는다. 인종도, 종교도, 이념도, 증오도 보일 틈 없이 오로지 검은 우주 속에 푸른 점 하나. 칼 세이건이 보이저 1호의 사진을 보고 남긴 ‘창백한 푸른 점’의 통찰이, 반세기 뒤 아르테미스의 창밖에서 다시 증명되고 있다.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이 4년째 이어지고 있다. 중동의 갈등은 끝이 보이지 않는다. 미중 패권 경쟁은 무역에서 기술로, 기술에서 우주로 확대되고 있다. 각국에서 민족주의와 포퓰리즘이 기승을 부린다. 그런데 달 궤도에서 보면, 이 모든 것이 같은 오아시스 위에서 벌어지는 같은 종의 내분일 뿐이다. 우주적 스케일에서 이 갈등들이 얼마나 부질없는 것인지는 글로버의 말처럼 바깥에서 보면 명백하다.
물론 이런 식의 코스모폴리탄적 감상이 구체적인 정치적 문제를 해결해 주지는 않는다. 비판적인 사고를 가진 현대인이라면 오히려 그런 감상주의를 경계하는 것이 마땅하다. 하지만 이 역사적인 순간을 손바닥 위에서 목격할 수 있는 우리는 적어도 하나의 인식론적 전환은 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우리가 싸우고 있는 것들의 스케일을 재조정하는 것. 국경이라는 것이 지질학적 시간 앞에서 얼마나 일시적인 것인지, 인종이라는 범주가 생물학적으로 얼마나 무의미한 것인지, 이념이라는 것이 우주의 무관심 앞에서 얼마나 자기중심적인 것인지를 상기하는 것. 그 상기 위에서 다시 현실 정치를 바라볼 때, 우리는 조금 더 정직해질 수 있다. 그리고 그 시도를 위해선 대한민국의 현주소에 대해서도 정직해져야 한다.
아르테미스 2호에 한국이 완전히 부재한 것은 아니다. 비록 교신에는 실패했지만, 한국천문연구원이 개발한 초소형 위성 K-라드큐브가 탑재되어 있고,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의 반도체 칩이 방사선 내구성 테스트를 받고 있다. 의미 있는 참여다. 하지만 솔직히 말하자. 거대한 교향곡에서 트라이앵글 한 번 치는 정도의 존재감이다.
한국의 우주 프로그램 현주소를 보자. 달 궤도선 다누리는 2022년 발사되어 성과를 거뒀다. 하지만 2028년 달 충돌로 임무가 종료될 예정이고, 독자적 달 착륙선 발사 목표는 2032년이다. 10년간 투입 예산 5303억 원. 미국이 아르테미스에 2012년부터 2025년까지 930억 달러, 한화 약 130조 원을 쓴 것과 비교하면 자릿수가 다르다. 미국과 중국이 달 남극의 최적 기지 부지를 놓고 경쟁하는 동안, 한국은 6년 뒤에야 첫 착륙선을 보내겠다고 말하고 있다.
이재명 정부의 우주 정책을 보면 답답함을 넘어 분노에 가깝다. 우주항공청은 출범했지만, 실질적 권한과 예산은 선언적 수준에 머물러 있다. 2045년 달 경제기지 구축이라는 장기 로드맵은 그럴듯하게 들리지만, 다누리 임무 종료 후 착륙선 발사까지의 수년간 탐사 공백에 대한 구체적 대책은 빈약하다. 정부가 AI 주권이니 디지털 전환이니 수사적 구호를 남발하면서, 그 AI를 돌리기 위한 에너지의 궁극적 원천이 될 수 있는 우주 자원에 대해서는 놀라울 정도로 무관심하다는 것은 일종의 인지 부조화다. 반도체 패권을 논하면서 그 반도체가 태동한 아폴로의 후예인 아르테미스에 관객 수준으로 참여하고 있다는 것, 배터리와 전기차를 말하면서 핵융합과 헬륨-3에 대한 전략적 사고는 부재하다는 것. 이것은 나무를 보되 숲을 못 보는 정도가 아니라, 숲을 보되 숲이 서 있는 대지를 보지 못하는 것이다.
더 심각한 것은 대중의 무관심이다. 아르테미스 2호 발사가 전 세계적으로 역사적 사건으로 보도될 때, 한국 포털의 관심은 아이돌의 탈퇴 소식과 두쫀쿠를 이을 유행 간식 리스트가 선회하고 있었다. 관심사는 자유라지만 국가의 미래 전략과 직결되는 의제에 대한 사회적 관심이 이 정도라면, 정부가 아무리 야심찬 로드맵을 발표해도 실행 동력은 생기지 않는다. 우주는 국방이나 외교처럼 국민이 직접 체감하기 어려운 영역이다. 그래서 정치 지도자의 비전과 설득이 결정적으로 중요하다. 하지만 현 정부의 행보를 지켜본 입장으로서, 지금 이 정부에서 우주에 대한 진정한 비전을 가진 사람이 있는지 의문이다. 케네디가 “이 10년이 끝나기 전에 달에 사람을 보내겠다”고 선언했을 때, 그것은 정치적 수사 이전에 문명적 의지의 표현이었다. 지금 한국 정치에서 그런 수준의 선언을 기대할 수 있는가? 국내 정치의 소모적 갈등에 매몰된 리더십에서 인류적 스케일의 상상력이 나올 수 있긴 한가?
반도체, 배터리, 조선에서 세계 시장을 주도하는 나라가, 그 기술력의 궁극적 무대인 우주에서는 관중석에 앉아 있다. 물론 한국이 미국이나 중국과 같은 규모의 우주 프로그램을 운영하기엔 현실적 한계가 있다. 하지만 이스라엘과 UAE가 각자의 방식으로 우주에서 유의미한 플레이어가 되고 있는 것을 보라. 국제 협력, 틈새 기술, 민간 우주산업 육성을 통해 우주 경제 시대의 의미 있는 좌석을 확보할 기회의 창은 아직 열려 있다. 문제는 그 창이 무한정 열려 있지 않다는 것이다. 달 남극의 최적 부지는 물리적으로 한정되어 있고, 먼저 도착하는 나라가 선점한다. 바둑으로 치면 상대가 이미 귀를 차지한 후 뒤늦게 변에 돌을 놓는 격이다.
미국 현지 시간 4월 6일 오후 1시, 오리온호의 승무원들은 달의 뒷면을 통과하며 인류 역사상 가장 먼 거리인 40만 6773km에 도달했다. 지구에서 가장 먼 곳에 도달한 인간이 되는 것. 그것이 의미하는 바를 잠시 생각해 본다.
오리온호 안에 라이트 형제의 천 조각이 있다. 우주비행사의 손에 아이폰이 있다. 비행기 창밖으로 로켓이 구름을 뚫는 것을 본 사람들이 있고, 해변에서 갈매기와 로켓이 같은 하늘을 가르는 것을 찍은 사람들이 있다. 넷플릭스가 달 근접 비행을 생중계한다. 전 세계가 각자의 화면으로 이 순간을 공유한다. 1903년 12초의 비행에서 2026년 10일간의 달 궤도 비행까지, 그 사이 123년. 그 123년이 인간이라는 종의 가능성에 대해 말해 주는 것은 명확하다. 우리는 멈추지 않는 종이다. 더 높이, 더 멀리, 더 빠르게. 그 충동은 때로 파괴적이었지만, 때로는, 지금 이 순간처럼, 경이롭다.
아르테미스는 그리스 신화에서 아폴로의 쌍둥이 누이이자 달과 사냥의 여신이다. 남성 군인들의 프로젝트였던 아폴로의 뒤를 이어, 최초의 여성과 최초의 유색인종을 심우주로 보내는 프로그램에 여신의 이름을 붙인 것은 우연이 아닐 것이다. 아르테미스가 사냥하는 것은 달의 자원만이 아니다. 인류의 다음 가능성, 그리고 우리 자신에 대한 더 깊은 이해를 사냥하고 있다.
승무원들이 말했듯이, 우리가 위대한 일을 ‘문샷(moonshot)’이라 부르는 데는 이유가 있다. 차이를 제쳐두는 것이 아니라 차이를 함께 가져와 쓸 때, 인간은 위대한 것을 해내는 법이다. 오리온호 창밖으로 보이는 지구의 모습, 검은 우주 속에 홀로 떠 있는 그 연약하고 아름다운 푸른 점이 우리에게 말하는 것은, 결국 우리가 풀어야 할 문제들은 ‘함께’가 아니면 풀 수 없다는 사실이다. 우주 탐사의 역설은 이것이다. 우리가 지구에서 멀어질수록 지구는 더 소중해진다. 우리가 우주의 광대함을 마주할수록, 인류라는 존재의 유일함이 선명해진다. 지금 한국은 이 거대한 건축물에 벽돌 한 장을 보탤 수는 있었지만, 설계도를 그리는 테이블에는 앉지 못하고 있다. 벽돌을 나르는 손이 아니라 청사진을 펼치는 손이 되어야 할 때다.
123년 전 키티호크의 해변에서 라이트 형제가 이륙한 시간은 12초였다. 그 12초가 없었다면 지금 이 글을 읽고 있는 당신의 손 안에 있는 스마트폰도, 머리 위의 인공위성도, 달을 도는 오리온호도 없다. 역사는 늘 그랬다. 거대한 서사는 누군가의 짧은 도약에서 시작되었고, 그 도약을 선택하지 않은 자들은 다음 세기의 관중이 되었다. 갈매기는 여전히 해변 위를 날고 있다. 로켓은 이미 달 너머에 있다. 우리는 어디에 있을 것인가.
저자 소개
반휘은은 글로벌 AI 거버넌스와 신기술을 전문으로 하는 정책 컨설턴트이자 저술가다. 미국 컬럼비아 대학교에서 디지털 인문학, 미디어철학, AI윤리를 전공하며 석사과정을 마친 후, 뉴욕 유엔본부의 (전)기술특사실 (현)디지털과 신기술사무국(전 Office of the Secretary-General’s Envoy on Technology, 현 Office for Digital and Emerging Technologies)에서 AI 정책 연구와 분석을 주도했다. 안보, 에너지, 노동, 건강, 법의 지배 등 다양한 분야에서 AI 거버넌스를 위한 전략적 프레임워크를 개발했으며 20회 이상의 고위급 자문 회의를 주관하며 AI 정책을 구체화했다. 구글, 마이크로소프트(MS), 메타 등 주요 산업 리더들과 협력하여 AI 거버넌스의 글로벌 표준을 마련하는 데 기여한 반휘은은, 디지털 윤리와 사회적 가치에 대한 깊이 있는 통찰을 제공한다. 학계와 산업계를 잇는 다리 역할을 하며, 현재는 AI 거버넌스를 주제로 한 책을 집필 중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