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논현논단] ‘노사정 대화’ 들러리 취급받는 경영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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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기설 한국좋은일자리연구소장/일자리연대 집행위원장

노란봉투법 입법땐 사실성 ‘입틀막’
친노정책 반대로 괘씸죄 옷 벗기도
시장친화법안 나와 경제 살렸으면

이재명 정부가 강도 높은 친노동정책을 펼칠 수 있는 것은 경영단체의 책임이라고 지적하는 전문가들이 꽤 있다. 경영계가 제대로 대응을 못 하기 때문에 전 세계 유례 없는 노란봉투법(노조법 2·3조 개정) 같은 친노동정책이 탄생했다는 지적이다. 하지만 이는 실상을 모르고 하는 소리다. 더불어민주당이 윤석열 정부 때부터 노란봉투법을 추진했을 당시 한국경영자총협회(한국경총)는 이 법이 우리나라 노사관계와 기업의 경쟁력에 심대한 타격을 줄 것이라며 각종 논리를 들어 반대했다. 하지만 경영계의 이런 입장은 법 개정 과정에서 전혀 반영되지 않았다. 오히려 정권 상층부로부터 질책만 받았다.

노란봉투법이 국회 통과를 앞둔 지난해 하반기 한국경총은 청와대로부터 “이제 그만 좀 떠들라”는 경고성 전화를 받고 반대 움직임이 급격히 위축됐다. 정부와 민주당이 친노동정책을 추진하는 데 괜히 방해하지 말라는 압박으로, 경영계는 들러리나 서라는 얘기나 마찬가지였다. 요즘 경제단체들은 노란봉투법으로 인해 현장에 혼란이 가중되는데도 별다른 입장을 내지 않고 있다. 정부와 수직적 관계에 있는 경영계로선 자신들의 반대가 저항으로 비칠 수 있다는 점을 우려하기 때문이다.

경영단체에 대한 정부 압박은 정권을 가리지 않고 있어왔다. 문재인 정부 때인 2017년 한국경총 임원이 친노동정책에 반대 목소리를 냈다가 괘씸죄에 걸려 직장에서 밀려난 적도 있다. 문 정부가 추진하던 인천공항공사 비정규직의 정규직화에 대해 김영배 당시 경총 부회장이 반대의견을 냈다가 퇴진 압력을 받았다. “획일적으로 비정규직에 대한 좋다 나쁘다 식의 이분법적 접근은 기업 내 정규직·비정규직 간 갈등만 부추긴다”고 말한 게 대통령 심기를 건드린 것이다. 결국 그는 경제계 입장을 대변한 죄로 옷을 벗어야 했다.

경영단체에 대한 좌파 정권의 ‘입틀막’은 노사관계에 국한하지 않는다. 대한상공회의소가 지난달 초 영국 단체의 통계를 인용해 상속세 관련 보도자료를 낸 것으로 큰 홍역을 치렀다. 자료 내용이 세밀하지 못한 것으로 드러나자 이 대통령은 이를 “가짜 뉴스”라고 질타했고 대한상의는 곧바로 “외부 통계를 충분히 검증하지 못한 채 인용해 혼란을 초래한 점에 대해 깊이 사과한다”며 고개를 숙였다. 이러한 사과에도 불구하고 경제부총리 산업부장관 국세청장 등 정부 고위관계자들까지 나서 “왜 대통령 심기를 건드렸냐”는 듯 대한상의를 공격했다. 오죽하면 “대통령이 격분하니 장관들도 줄지어 함께 내리갈굼하는 모습이 ‘조폭의 보여주기식 폭력’을 연상케 한다”(윤희숙 전 국민의힘 혁신위원장)는 비판까지 나왔을까. 결국 대한상의는 정부의 압박을 견디지 못하고 최근 상근부회장을 포함한 주요 임원 3명을 해임·면직했다.

이 자료는 영국 이민 컨설팅사인 헨리앤드파트너스의 분석을 인용해 ‘한국 고액자산가 순유출이 1200명에서 2400명으로 급증했다’는 내용으로 과도한 상속세를 피해 한국을 떠나는 부자들이 크게 늘고 있다는 게 요지다. 대한상의가 치밀치 못한 자료를 발표했더라도 정부가 반론을 펴고 정정을 요구하는 게 지금까지의 관례인데 대통령과 부총리, 장관까지 나서 성토한 것은 과잉대응으로 비친다. 이 사건 이후 경제단체들은 보도자료 내기를 꺼린다고 한다. 잘못 자료를 냈다가 사달이 날 수 있기 때문이다.

경영단체를 이런 식으로 취급하다 보니 노사정 3자 간 사회적 대화에서도 경영계는 구색맞추기 정도의 들러리 취급을 받아왔다. 이재명 정부는 이런 경영계와 사회적 대화를 벌이겠다며 지난 19일 경사노위 출범식을 열었다. 잠재성장률 하락 속에서 지속가능한 성장을 위해 경직적 노동시장 개혁이 필수인데, 개혁을 위한 메시지는 찾아보기 어렵다. 다만 그는 “신뢰 회복을 위한 노력에 장기적으로 많은 에너지를 투입해야 하고, 그 첫 출발은 서로 마주앉아 진지하게 대화하는 것이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지금까지 경영계는 사회적 대화테이블에 노동시장 유연화, 대체근로허용, 직장 내 점거금지 등 많은 요구사항을 내고 있지만 노동계 반대로 제대로 된 논의조차 이뤄지지 않고 있다. 경영계를 진지하고 허심탄회한 파트너로 인정해 제대로 된 노동개혁정책을 마련했으면 하는데 경영계 존재를 무시한 채 정부와 노동계가 일방적으로 또 다른 친노동정책을 추진하지나 않을까 하는 걱정이 앞선다. 노란봉투법 시행으로 현장이 큰 혼란을 빚는 것은 노동자의 권리를 극대화한 데 따른 후유증이다. 거창한 사회적 대타협에 집착하지 말고 노사정 3자가 상호 파트너십을 발휘해 국가경제를 살리고 일자리를 늘릴 수 있는 시장친화적 법안을 만들었으면 하는 바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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