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법 판결 이후 제도 보완 요구
“안정화 카르텔 필요” 목소리

해운 산업의 특수성을 인정해 정기선 운임에 대한 공동행위는 예외적으로 인정해줘야 한다는 업계 주장이 나왔다. 해운 산업에서의 공동행위는 단순한 담합이 아니라 오히려 산업의 붕괴를 막고, 시장을 안정적으로 통제하기 위한 수단이라는 이유에서다.
강일 법무법인 태평양 변호사는 17일 서울 영등포구 켄싱턴호텔에서 열린 ‘바다와미래 연구포럼 오찬포럼’에서 ‘정기선 운임 공동행위에 관한 법정책적 고려’라는 주제로 발표하며 이같이 주장했다. 해운 업계에서 공동행위란 동맹을 맺은 해운사들이 운임, 선박 배치, 화물 적재 등을 사전 협의하고 실행하는 것을 말한다.
앞서 2022년 공정거래위원회(공정위)는 에버그린마린 등 국내외 해운사 23곳이 2003~2018년 ‘한국~동남아’ 항로 운임을 수차례 합의하고 신고 의무를 지키지 않았다며 시정명령과 총 962억원의 과징금을 부과했다.
이에 해운사들은 제재 취소 소송을 제기했고, 서울고법은 에버그린마린 사건에 대해 공정위에 규제 권한이 없다고 판단했다. 그러나 대법원은 해운법이 공동행위를 무제한 허용하는 것이 아니라 경쟁 제한 범위 내에서만 인정된다고 보고 원심을 뒤집었다.
강 변호사는 해운 산업은 다른 산업과는 다르게 초기 선박 도입과 유지보수에 거대한 초기 자본이 필요하고, 컨테이너선 한 척 단위로 공급이 투입돼 미세한 수요 변화에 맞춰 유연하게 공급량을 조절하는 것이 원천적으로 불가능하다고 지적했다. 여기에 최근 ‘미국-이란’ 전쟁 등 지정학적 위기에 따라 수요가 극심하게 급변해 오히려 맹목적인 시장 자유경쟁이 경제적인 비효율을 초래한다고 강조했다.
그는 “예전에는 담합, 공동행위에 대해서 사회적으로 피해를 준다고 생각해 기계적으로 위법하다고 판단했던 적이 있었다”며 “다만 최근에는 공동행위가 필요한 산업들이 있다고 판단하는 ‘합리의 원칙’이 적용되기 시작했다”고 설명했다.
강 변호사는 해운 산업을 포함해 항공·운송 산업, 미국 파이프 산업, 19세기 미국 설탕산업 등은 아무리 자유 경쟁을 해도 효율적인 가격과 공급의 균형이 형성되지 않는 ‘공핵 현상’이 발생한다며 이를 해결하기 위해 이른바 ‘안정화 카르텔’이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그는 “안정화 카르텔은 독점을 위한 담합이 아니라 산업의 붕괴를 막고 시장을 통제하기 위한 생존 시스템”이라며 “수급 조건의 평균적 상황을 반영해 가격과 산출량을 고정 및 안정화하자는 취지다. 그렇게 되면 비효율적 자유 경쟁의 공백을 대채해 효율적인 협조가 가능하다”고 말했다.
이에 따라 박성훈 국민의힘 의원은 해운법상 정기선 공동행위에 대해 공정거래법 적용을 배제하도록 명확히 규정한 ‘해운법 개정안’을 대표 발의한 상태다. 업계에서는 공정거래법 적용을 배제해 해운 산업이 국가 전략 산업으로 성장할 수 있도록 활로를 열어줘야 한다고 목소리를 모았다.
박정석 해운협회장은 “중국, 일본 등은 이미 자국 해운 산업을 전략 산업, 기간 산업으로 보고 경쟁력 있게 육성하고 있다”며 “해운 업계의 공동행위를 공정거래 위반으로 보는 것은 국민 입장에서도 ‘소탐대실’이다. 글로벌 시각으로 바라보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