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또 경우의 수" WBC 8강 진출 위기, 한국 야구 어쩌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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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9일) WBC 조별리그 호주전 마지막 중계


▲7일 일본 도쿄돔에서 열린 2026 월드베이스볼클래식(WBC) 조별리그 C조 2차전 대한민국과 일본의 경기에서 8-6으로 패배한 한국 이정후가 아쉬워하고 있다. (연합뉴스)


결국 또 그것을 꺼내 들었습니다. 올해만큼은 마주하고 싶지 않았던 간절한 바람은 이뤄지지 않았죠. 운명의 날이 다가왔지만, 국가대표 야구팀을 바라보는 야구팬들의 시선은 기대보다 허탈함과 피로감이 앞서는데요. 또다시 지독한 ‘경우의 수’ 계산기를 두드려야 하는 벼랑 끝 상황에 내몰렸기 때문입니다.

한국 야구대표팀은 9일 오후 7시 일본 도쿄돔에서 호주를 상대로 2026 월드베이스볼클래식(WBC) 1라운드 C조 조별리그 최종전을 치르는데요. 현재 1승 2패(체코전 승, 일본·대만전 패)를 기록 중인 한국이 8강에 진출하기 위한 계산이 필요합니다. 단순히 승리하는 것을 넘어, 호주를 상대로 최소 5점 차 이상 대승을 거두는 동시에 실점은 2점 이하로 막아야 하죠. (5-0, 6-1, 7-2 등). 이기고도 짐을 쌀 수 있는 가혹한 현실, 왜 또 마주하게 된 걸까요?


▲8일 일본 도쿄돔에서 열린 2026 WBC 조별리그 C조 3차전 대한민국과 대만의 경기. 연장 10회말 4-5로 패한 한국 선수들이 아쉬워하며 관중들에게 인사하고 있다. (연합뉴스)


꼬여버린 계산기, 치명상이었던 '대만전 5실점’

C조는 이미 3전 전승을 거둔 일본이 조 1위와 8강 진출을 확정한 상황인데요. 남은 티켓 한 장을 두고 호주(2승 1패), 대만(2승 2패), 한국(1승 2패)이 다투고 있죠. 한국이 호주를 잡으면 세 팀이 나란히 2승 2패 동률을 이룹니다.

문제는 WBC의 타이브레이커 규정인데요. 동률 팀 간 맞대결 성적마저 서로 물고 물릴 경우, 세 팀 간 경기에서 내준 점수를 수비 아웃카운트로 나눈 '최저 실점률'로 순위를 가르게 됩니다.

대만은 이미 동률 가능 팀 간 경기에서 54아웃 동안 7실점을 해 0.389실점을 기록했는데요. 이한국은 대만전에서 10회 연장 끝에 5실점을 내준 탓에 벼랑 끝으로 몰았죠. 호주를 이기더라도 1, 2점 차 승리로는 부족하고 대승에 가까운 결과가 필요하게 됐습니다. 그렇게 나온 계산이 바로 ‘최소 5점 차 승리, 2실점 이하’입니다.

이미 누적된 실점이 많아 오늘 호주전에서 타선이 대폭발하고 마운드가 완벽히 틀어막아야만 대만의 실점률을 간신히 턱밑에서 제칠 수 있는 극단적인 상황이 된 건데요. 하지만 상대 호주는 대만을 3-0으로 완파하고 최강 일본을 상대로도 3-4 팽팽한 접전을 펼친 껄끄러운 복병이죠.


▲5일 일본 도코돔에서 열린 2026 월드베이스볼클래식(WBC) 조별리그 C조 1차전 한국과 체코의 경기. 1회말 1사 만루 한국 문보경이 만루 홈런을 친 뒤 동료들과 자축하고 있다. (연합뉴스)

▲5일 일본 도쿄돔에서 열린 2026 WBC 조별리그 C조 1차전 대한민국과 체코의 경기. 11-4로 승리한 한국 선수들이 승리를 자축하며 환하게 웃고 있다. (연합뉴스)


영광의 시대는 가고…

야구팬들의 탄식이 깊은 이유는 바로 ‘찬란했던’ 과거 때문입니다. 한때 우리는 정상을 꿈꿔왔거든요. 2006년 제1회 WBC 4강(3위), 2008년 베이징 올림픽 9전 전승 금메달, 2009년 제2회 WBC 준우승 등 2000년대 후반 한국 야구는 종주국 미국과 숙적 일본을 턱밑까지 위협하는 강호였습니다.

하지만 영광은 짧았고 침체기는 길었는데요. 2013년 제3회 WBC '타이중 참사(1라운드 탈락)'를 시작으로, 2017년 ‘고척 참사(1승2패)’, 2021년 열린 도쿄 올림픽 노메달 수모, 그리고 2023년 제5회 WBC ‘도쿄 참사(1라운드 탈락)’까지 국제대회 잔혹사가 10년 넘게 이어지고 있는데요. 급기야 빅리그 주전급 선수들이 빠진 상태에서 치러진 2024년 WBSC 프리미어12 대회에서조차 조별리그 예선 탈락이라는 충격적인 성적표를 받아들었죠.


▲7일 일본 도쿄돔에서 열린 2026 WBC 조별리그 C조 2차전 대한민국과 일본의 경기. 4회초 1사 1루 한국 김혜성이 우중간 투런 홈런을 치고 그라운드를 돌고 있다. (연합뉴스)


기록이 증명하는 '벌어진 세계와의 격차’

세계 야구와 한국 야구의 뚜렷한 격차는 마운드 위 투수들의 평균 구속인데요. 메이저리그(MLB) 공식 통계 시스템인 ‘스탯캐스트(Statcast)’ 데이터에 따르면 최근 빅리그 투수들의 포심 패스트볼 평균 구속은 152~153km/h에 달합니다. 일본(NPB) 역시 148~150km/h 수준까지 치솟았죠. 반면 국내 KBO리그에 도입된 ‘트랙맨(TrackMan)’과 ‘PTS(투구추적시스템)’ 기록을 살펴보면, KBO 투수들의 평균 구속은 수년간 144km/h 안팎에 맴돌고 있는데요. 150km/h 중후반의 강속구가 일상이 된 국제무대에서 KBO 투수들의 공은 더 이상 위력적이지 않습니다.

국제대회의 중압감을 이겨낼 ‘확실한 에이스’의 부재도 발목을 잡았죠. KBO가 발표해 온 역대 국제대회 국가대표 최종 엔트리 및 등판 기록을 복기해 보면 현실은 더욱 차가운데요. 2008년 베이징 올림픽부터 2023년 제5회 WBC까지, 무려 15년 가까운 세월 동안 대표팀 마운드의 1선발 중책을 짊어진 것은 류현진, 김광현, 양현종 등 2000년대 후반에 데뷔한 베테랑들이었습니다. 이들을 밀어낼 만한 20대 ‘포스트 에이스’ 발굴에 실패했다는 것이 현장의 공통된 지적이죠.

또 전문가들은 그동안 아시안게임에서 거둔 4연속 금메달이 한국 야구의 구조적 위기를 가리는 착시 현상을 일으켰다고 꼽았는데요. 병역 혜택을 위해 프로 최정예 멤버를 꾸린 한국과 달리, 일본(사회인 아마추어 위주)과 대만(마이너·프로 혼합)은 1.5군 이하의 전력으로 대회에 임했죠. ‘우물 안'의 승리에 도취된 사이, 세계 야구와의 격차는 회복하기 힘들 정도로 벌어지고 있었다는 평가입니다.


▲8일 일본 도쿄돔에서 열린 2026 월드베이스볼클래식(WBC) C조 조별리그 3차전 대한민국과 대만의 경기. 8회말 2사 1루 한국 김도영이 동점타를 친 뒤 포효하고 있다. (연합뉴스)


반복되는 경우의 수를 끝내려면

다시 운명의 시간이 다가왔죠. 한국은 좌완 손주영을 선발로 내세워 기적의 다득점-최소 실점 경기를 노리는데요. 호주 선발은 지난해 KBO리그 키움 히어로즈에서 대체 외국인 투수로 뛰어 한국 타자들에게 익숙한 라클란 웰스입니다. 초반부터 웰스를 적극적으로 공략해 대량 득점을 뽑아내고 마운드가 호주의 장타력을 억제하는 것만이 유일한 생존 방법이죠.

오늘 호주전에서 한국이 경우의 수를 통과하며 8강에 오를 가능성은 여전히 남아 있습니다. 하지만 그 결과가 한국 야구의 고민까지 해결해 주는 것은 아니죠. 대회가 끝난 뒤에는 승패보다 더 큰 질문이 남아 있는데요. 대표팀 운영과 선수 육성, 리그 경쟁력 등 논의가 필요합니다. 그래야 국제대회 때마다 반복되는 ‘경우의 수’라는 낯익은 장면에서 벗어날 수 있겠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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