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논현광장_임성호의 정치원론] 정치 대결구도에 지각변동 있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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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희대 정치외교학과 명예교수

강경 목소리 충돌로 악순환만 반복
선명성 휩쓸려 견제와 균형은 실종
온건파 정치인에 국민지지 보낼 때

정치는 각종 균열 요인에 영향받게 마련이고, 그 과정상 과하게 격렬한 대결구도가 나타나기 쉽다. 우리나라 정치가 과거엔 여촌야도, 민주주의 대 권위주의의 균열을 보였다면, 오늘날엔 영·호남 지역주의와 진보·보수 이념이 겹쳐 생긴 양극적 여야 대결구도에 갇혀 있다. 문제는 이 대결구도에 소수의 강경 극단 세력들만 주인공으로 등장하고 대다수의 온건한 목소리는 밖으로 밀려나 잘 들리지 않는다는 점이다.

정치인들은 적극적이고 자기중심적인 강한 성정(性情)을 지니는 경우가 많다. 남 앞에 서서 공적인 무언가를 외쳐대야 하므로 그렇다. 온건한 성품이거나 소극적이고 겸손한 태도의 사람들이 정치판을 꺼리는 것과 대조된다. 강한 성정의 사람들끼리 정치를 하려니 대결구도가 생기는 건 당연하다. 그래도 너무 지나치면 문제가 된다. 강경 분자들끼리만 부딪치는 구도에선 서로가 계속 자극받아 극과 극 대결의 악순환이 이어진다. 이러면 조정, 양보, 타협, 합의가 가능할 리 없다. 정청래와 장동혁, 두 강성 싸움꾼이 이끄는 작금의 정당정치는 물론이고 박근혜 탄핵 이후 오늘날까지의 정치에서 강 대 강 여야 충돌은 양쪽을 서로로부터 점점 멀어지게 했다. 가운데엔 큰 공백이 만들어졌다. 이런 상황에선 정치가 원활히 기능할 수 없다.

정치권엔 온건 중도 성향의 사람들도 필요하다. 그들은 귀중한 공헌을 한다. 첫째, 완충역으로서 전체적 갈등의 도를 낮춘다. 둘째, 가교의 역할로 강경 진영 간 소통을 매개한다. 셋째, 윤활유로서 정치권과 정부가 공전과 교착에서 벗어나 원만히 작동할 수 있게 도와준다. 넷째, 구심력의 주체로서 극단적 성향의 세력들이 너무 멀리 나가지 않게 중력을 발휘한다. 다섯째, 흩어져 있는 조용한 다수 국민의 대변자로서 정치가 강한 조직 논리와 열혈 감정에만 휩쓸리지 않게 압력을 가한다. 이처럼 중요한 역할을 하는 온건주의자들이 정치권에 자리를 잡고 여야 강경 세력들과 견제와 균형 구도를 형성해야 정치가 조화를 찾을 수 있다. 양극화 이전인 20세기 미국에서 민주·공화 각당 내부에 포진한 온건 중도주의자들이 양쪽의 강성 이념론자들을 잘 견제한 덕에 조화로운 정치가 꽃필 수 있었다.

물론 현재 우리나라에서 강경 극단 대 온건 중용의 대립구도를 만들기 위한 지각변동이 쉬울 리는 없다. 중도론자를 회색분자로 매도하고 ‘선명성’을 중시하는 정치문화가 조선시대 이래로 뿌리 깊다. 정당정치의 기득권자들은 현상 유지를 위해 당내 중도 목소리를 억누르고 폐쇄적·배타적 공천권을 결사적으로 지키고 있다. 야당마저 집권은 포기한 듯 극우 정당처럼 굴고 있다. 파편화, 불확실성, 급변성을 특징으로 하는 거시적 시대 흐름도 사람들을 불안감, 상대적 박탈감, 좌절감에 몰아넣어 신중하고 합리적인 중용의 덕보단 분노와 변덕이 가득한 선동에 휘둘리게 한다. 양극적 대결구도가 변하기는커녕 더 세질 것 같다는 우려마저 들게 하는 현실이다.

암담한 현실을 비관만 할 순 없다. 우선 국민의 인식 변화를 향한 노력이 요구된다. 국민은 말초신경을 자극하는 극단 강경파에 의한 미몽에서 깨어나 중도·온건 정치인들의 말에 귀 기울여야 한다. 기존 정당들에서 온건 입장을 표했다가 배척당한 정치인들이 국민적 응원으로 힘을 낼 수 있게 해야 한다. 다가오는 6·3 지방선거가 이를 실천할 기회다. 이런 국민적 지지가 있다면 언젠간 공천제도를 개방시켜 정치의 극단화·강경화를 막는 것도 가능할 수 있다.

필자의 원론적 주장이 양극단 정치인들을 움직일 린 없다. 그들은 극단적 강성정치로 권세와 지분을 누려온 기득권자들이다. 오직 국민의 각성과 비판만이 그들을 변화시키고 정치 대결구도를 ‘강 대 강’에서 ‘강 대 온건’으로 바꿔 정치권을 소생시킬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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