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 스테이블코인 규제, ‘안보 관섬’서 접근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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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화택 경제칼럼니스트

지난해부터 추진해 온 디지털자산기본법과 스테이블코인 규율 체계가 여전히 안갯속이다. 여야 협의는커녕 정부와 여당 내부조차 이견이 분분하다. 현재 논의의 초점은 발행 주체를 누구로 할지, 거래소 지분 구조를 어떻게 짤지에만 매몰돼 있다. 하지만 이는 시장의 외형만 다투는 지엽적 논쟁이다. 본질은 스테이블코인이 초래할 금융시장의 변동성과 시스템 안정성 확보에 있다. 이제는 국가적 금융 안보의 관점에서 규제 설계의 판을 다시 짜야 한다.

제도권 안착 시 ‘코인런’ 대비해야

논의의 실마리를 찾으려면 달러 기반 스테이블코인의 구조를 냉철히 들여다봐야 한다. 스테이블코인은 본질적으로 머니마켓펀드(MMF)와 흡사하다. 투자 자금을 모아 국채 등 안전자산에 투자해 가치를 담보하되, 가상자산 형태로 거래될 뿐이다. 주목할 점은 이 시장이 미국 은행 시스템 밖에서 형성된 거대한 ‘민간 부채’라는 사실이다. 미국이 2025년 제정된 ‘GENIUS법’을 통해 이를 제도권으로 끌어들이려는 이유도 명확하다. 스테이블코인이 국채 시장과 통합되는 순간, 그 파급력은 개별 투자자의 손익을 넘어 글로벌 금융 안정의 핵심 변수가 되기 때문이다.

문제는 이 변화가 미국 재정의 불안정성과 맞물려 있다는 점이다. 현재 미국의 국가 부채는 국내총생산(GDP) 대비 122%를 상회한다. 고령화에 따른 복지 지출 폭증으로 재정 적자는 구조적 고착 상태다. 그럼에도 달러가 패권을 유지하는 건 강력한 ‘안전자산 프리미엄’ 덕분이다. 하지만 최근 탈달러화 흐름이 거세지자 미국은 스테이블코인을 ‘디지털 방어선’으로 삼으려는 복안을 내비치고 있다. 민간 유동성을 정부 재정과 연결해 글로벌 금융 생태계를 다시 달러 중심으로 묶어두겠다는 구상이다.

그러나 스테이블코인과 국채 시장의 직접 연결은 새로운 위기의 도화선이 될 수 있다. 국채 시장이 흔들리면 스테이블코인은 더 이상 ‘안정적(stable)’이지 않다. 과거 MMF 사태처럼 디지털 세계에서도 대규모 자금 인출(run)이 재연될 수 있다. 최근 가상자산 시장의 급락은 이러한 리스크의 전조다. 현재의 코인 시장은 채권, 금 등 자산군과 복합적으로 얽혀 있어, 한쪽의 충격이 시스템 전체의 연쇄 청산을 부를 위험이 크다.

발행주체·지분구조 논의는 후순위

공포에 질린 투자자들이 자금을 회수하기 시작하면, 발행사는 담보물인 국채를 시장에 급매도해야 한다. 이는 채권 가격 폭락과 금리 급등으로 이어져 미국 자본시장의 근간을 뒤흔들고, 세계적 금융위기로 번질 가능성이 농후하다. 지난 6일 스콧 베선트 미국 재무장관이 가상자산 급락 직후 “정부는 구제금융 권한이 없다”고 선을 그은 점은 시사하는 바가 크다. 스테이블코인이 정부의 직접적인 보호막 밖에 있음을 명확히 한 것이다.

지금 우리에게 시급한 것은 발행 주체와 코인거래소의 지배구조에 대한 다툼이 아니다. 위기 상황에서 어떻게 시장의 신뢰를 유지하고 유동성을 관리할 것인가에 대한 실효적 대책이다. 규제의 골든타임을 놓치면 ‘코인런’의 후폭풍은 국가 금융 시스템 전체의 고통으로 돌아온다. 스테이블코인 규제를 단순한 산업 육성 차원이 아닌, 국가 금융 안보를 지키는 최후의 보루라는 시각에서 전면 재검토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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