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현택 연필뮤지엄 관장

조명을 받아 더욱 빛나는 금관을 보며 사람들은 하나같이 ‘아름답다’고 말한다. 그러나 그것은 오늘날 우리가 말하는 ‘아름다움’을 목표로 만들어진 것이 아니다. 그 안에는 정교하게 기획된 정치적 연출이 깔려 있다.
신라의 마립간들에게 금관은 범접할 수 없는 신성함과 넘볼 수 없는 위세의 상징이었다. 투탕카멘의 황금마스크가 파라오의 영생을 담보하는 장치였듯, 금관 역시 인간의 유한함을 금의 영원성으로 치환하려 했던 욕망의 징표다. 그 화려한 빛 이면에는 금관의 무게만큼 짓눌린 통치자의 고독이 드리워져 있다.
특히 눈에 띄는 금관이 있다. 바로 ‘서봉총(瑞鳳塚)’ 금관이다. 1926년 공사 중에 발견된 이 고분의 발굴 현장에는 당시 일본을 방문했던 스웨덴의 구스타프 6세 아돌프 황태자가 참여했다. 고고학에 조예가 깊었던 그는 흙 속에서 금관을 직접 들어 올리는 특별한 경험을 했고, 이를 기념해 스웨덴의 한자 표기 ‘서전(瑞典)’의 ‘서’와 금관 봉황 장식의 ‘봉’을 합쳐 ‘서봉총’이라 이름 붙였다. 먼 북유럽의 왕위 계승자와 동방의 고대 통치자가 시공을 넘어 만난 순간, 금관은 과거의 유물이 아니라 인간과 인간을 잇는 서사로 승화된다.
서봉총 금관이 가장 기억에 남는 이유는 장식 때문이다. 유일하게 이 금관에만 봉황 세 마리가 장식되어 있다. 게다가 우아하게! 봉황은 성군이 다스리는 태평성대에만 나타난다는 상서로운 새다. 사슴뿔 모양인 출(出)자형 금관 장식 끝에 봉황이 자리했다는 것은, 통치자 생전의 치세뿐 아니라 죽은 뒤에도 평온이 이어지기를 바랐음을 뜻한다. 서봉총 금관은 ‘태평성대’를 위한 기도문이다. 차가운 금속 위에 내려앉은 봉황의 감미로운 자태는, 권력의 정점에서 느꼈을 죽음과 단절의 두려움을 영적 상상력으로 극복하려 했던 고대인의 영혼이다.
오늘날 유물은 종종 화려한 겉모습과 희귀성으로만 소비된다.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APEC) 정상회의에 참석한 미국 대통령에게 금관 복제품을 선물했다. 트럼프는 매우 만족스러워했다. 그렇다면 이 금관은 신라시대 마립간의 금관과 같은 것일까, 아니면 전혀 다른 것일까? 고대의 신성한 위세품이 세속적 부나 정치적 수사의 상징으로 차용될 때, 유물은 생명력을 잃고 박제가 된다. 황금을 향한 인간의 욕망은 동서고금이 다를 바 없지만, 그 안에 담겼던 내세에 대한 경외와 태평성대의 염원은 어떻게 환기해야 할까?
유물의 현재적 의미는 조상의 위대함을 확인하는 데 있지 않다. 그것은 과거를 현재로 소환해 인간의 본성이 여전히 변하지 않았음을 비추는 거울이다. 번쩍이는 금관 앞에서 우리는 죽음을 초월하려 했던 고독한 분투와, 무덤 속에서도 평화를 바랐던 한 통치자의 소망을 눈치 채야 한다. 황금의 차가운 침묵 속에서 봉황의 의미를 읽어낼 때, 비로소 천 년의 세월을 건너온 유물에 제대로 응답하는 것이다. 감상은 눈으로 하지만, 금관의 말은 마음을 열 때 들린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