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 하도급 대금 분쟁 “판이 바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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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슬아 변호사(서울지방변호사회 대변인·법무법인 대진)

▲안슬아 변호사(서울지방변호사회 대변인·법무법인 대진)
새해가 밝았음에도 건설 현장의 동토(凍土)는 녹을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 “공사 대금을 못 받고 있어요. 직원 월급을 못 줘 고발까지 당했어요.” 건설 현장에서의 비명은 멈추지 않고 있다. 최근 몇 년간 건설 경기 침체가 심화되며 하도급 관련 분쟁 조정 신청은 매년 증가하고 있다. 특히 임금 체불 형사 처벌을 피하려 부당한 ‘헐값 합의’에 응하는 악순환은 하도급 대표들을 벼랑 끝으로 몰고 있다. 그러나 이제는 달라져야 한다. 2026년 강화된 제도적 변화는 하도급사가 스스로 법적 칼자루를 쥐고 권리를 사수하는 ‘대전환기’의 시작이 될 것이다.

그동안 하도급 업체는 불공정 행위를 당해도 공정거래위원회의 처분만을 기다리느라 대응의 골든타임을 놓치기 일쑤였다. 그러나 이제는 공정위를 거치지 않고 직접 법원에 불공정 행위의 중지를 청구하는 ‘사인의 금지청구권(하도급법 제34조의2)’이 올해 본격 시행된다. 여기에 더해 1000만 원을 초과하는 건설 하도급 거래에 대한 ‘지급보증 의무화’와 전기·연료 등 ‘주요 에너지 비용’을 하도급대금 연동제 대상에 포함하는 하도급거래 공정화에 관한 법률 개정안 역시 지난달 29일 국회 본회의를 통과했다.

또한 같은 날 기술탈취 소송에 ‘K디스커버리(한국형 증거개시 제도)’를 도입하는 대·중소기업 상생협력 촉진에 관한 법률 개정안이 국회 본회의를 통과하며, 드디어 우리나라도 디스커버리 시대의 서막을 열었다. 현재 하도급법에도 이 디스커버리 제도를 도입하는 내용의 법안이 발의돼 있는 만큼, 입법에 박차를 가해야 한다.

실제 소송에서 원사업자들은 대금 지급을 피하고자 전방위적인 압박을 가한다. 대표적으로 △일방적 문서에 근거한 공사 범위의 임의 확대 △계약 외 비용의 부당 전가 △임의 집행한 직영 공사비의 요구 △대위변제를 빌미로 한 대금 공제 △미지급 대금에 대한 허위 지급 주장 △공사 지연 책임의 전가 등이다.

이러한 부당한 전방위적 공세는 명확한 법리로 타파해야 한다. 우선 민법 제664조에 따른 도급계약은 쌍방의 ‘의사의 합치’가 필수이다. 판례에 따라 상대방의 서명·날인이 없는 문서는 증명력이 없으며 합의 없는 내역은 계약 내용이 될 수 없다. 또한 도급인이 독단적으로 시행한 직영 공사비는 원칙적으로 도급인이 부담해야 하며, 수급인의 동의나 합의 없이 이를 대금에서 공제하는 것은 허용되지 않는다.

나아가 민법 제469조에 따른 대위변제 역시 이를 주장하는 자가 대위변제의 엄격한 모든 요건을 입증해야 한다. 추가적으로 대금 지급 사실이나 공사 지연의 책임 등은 모두 도급인인 원사업자에게 증명책임이 있으므로 입증을 다 하지 못한 모든 법적 불이익은 결국 원사업자에게 귀속된다.

급박한 자금난을 해소하려 무심코 찍은 도장은 훗날 법정에서 되돌릴 수 없는 족쇄가 되어 돌아온다. 도장을 찍기 전 원사업자가 내미는 증거의 허점을 치밀하게 파고드는 법률적 대응이 선행돼야 한다. 대등한 협상의 주도권은 제도적 변화를 정확히 이해하고 자신의 권리를 주장하는 용기에서 시작된다. 강화된 하도급법과 변화하는 제도들은 이제 하도급 업체가 원사업자와 대등하게 협상할 수 있는 강력한 지렛대가 되고 있다.

원사업자가 제시하는 주장과 증거들을 꼼꼼히 따지고, 부당한 주장들을 법리로 파훼한다면 정당한 공사 대금은 충분히 회수할 수 있다. 공사 대금은 기업의 존폐와 그 기업에 속한 사람들의 생계를 결정짓는 ‘생존권’ 그 자체다. 치밀한 전략과 법리적 방패와 제도적 칼을 갖춘다면 그 어떤 전방위적 압박도 뚫고 나갈 수 있다. 어두운 터널 같은 건설 불황 속에서도 길은 있다. 묵묵히 현장을 지킨 정당한 땀의 대가는 반드시 보호받아야 한다.

안슬아 변호사 (서울지방변호사회 대변인 · 법무법인 대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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