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상근 서강대학교 경영학과 교수
경쟁 급급해 내부통제 갖추지 못해
위험 관리체계 정비해 신뢰 찾아야

가상자산시장이 대형 사고를 맞았다. 국내 2위 가상자산 거래소인 빗썸이 이벤트 당첨금 지급과정에서 지급 단위를 ‘원’이 아닌 ‘비트코인’으로 잘못 입력하면서, 62만원을 비트코인 62만 개(약 60조원)로 당첨자들에게 잘못 지급한 것이다.
일부 당첨자들이 즉시 매도에 나서며 단기에 시세가 급락했고, 금감원장이 “심각한 일”, “재앙” 등으로 이번 사고를 표현할 정도로 후폭풍이 상당하다.
이 사고의 본질은 기술의 문제가 아닌 시장 성숙도의 문제로, 비교적 안정적으로 발전해온 블록체인 기술에 비해 가상자산을 거래하는 거래소의 시스템과 거버넌스는 여전히 웹2.0 시대에 머물러 있다는 현실의 한 단면이다.
‘더닝-크루거 효과(Dunning-Kruger effect)’에서 지식과 경험이 부족한데 오히려 자신감이 가장 높아지는 단계를 ‘무지의 산(Peak of Mount Stupid)’이라고 한다. 실력이 낮을수록 자신의 부족함을 깨닫지 못해 과신하기 쉬운 경향을 말한다. 지금의 가상자산시장이 딱 그렇다.
블록체인은 안전한 기술이고, 거래소는 이를 기반으로 운영되니 큰 사고가 일어날 리 없다는 근거 없는 확신이 안일함을 불렀다. 그러나, 실제 문제는 기술적 결함이 아니라 그 기술을 다루는 사람과 조직, 이를 감시하고 감독해야 할 제도적 장치의 미비에 있었다.
입력 단위 하나 잘못했다고 62만 비트코인(BTC)이 지급되는 구조라면, 이는 시장이 성숙하기 전이라는 증거다.
거래소 운영은 본질적으로 금융 인프라 운영과 같다. 자금 배분, 잔액 검증, 지급 승인 등 기본적으로 최소한의 교차 검증 절차가 필요하다. 그런데, 국내 거래소 상당수는 거래량 경쟁, 마케팅 경쟁에 쏠려 내부통제는 ‘성장 이후에 갖추면 되는 것’으로 여겨왔다.
이번 사고는 이벤트 담당자, 재무 담당자, 결재권자의 검증 시스템이 사실상 작동하지 않았다는 게 문제의 본질이다.
더 큰 문제는 이런 사고는 앞으로 반복될 가능성이 높다는 점이다. 블록체인 기술은 지난 10년간 발전하여 웹3.0 시대의 문을 두드리고 있다. 하지만, 이를 운용하는 거래소의 시스템과 거버넌스는 여전히 웹2.0 시대에 머물러 있다.
일반 금융 시스템이라면 보유 자산 이상 지급이 되지 않도록 설계하는 게 기본 중의 기본으로, 보유 비트코인의 10배가 넘는 양이 지급되었다고 한다. 금융기관인지 기술기업인지 스스로의 정체성을 정의하지 못한 결과다.
지금 필요한 것은 기술논쟁이 아니라 관리감독 구조의 재편이다. 디지털자산은 기존 금융자산과 구조가 다르고, 기술 변화 속도는 기존 규제 체계가 따라가기 어렵다.
중앙은행이나 금융위원회가 아닌, 독립적인 ‘디지털자산 감독기구’가 필요한 이유가 여기에 있다. 기존 금융 감독 체계로는 블록체인 기반 서비스의 복잡한 구조와 속도를 따라갈 수 없다.
인공지능(AI) 기반의 이상거래 탐지 시스템 역시 이제는 선택이 아니라 필수로 받아들여야 한다. 지금 국내 거래소 대부분은 사람이 사고를 발견하는 구조에 머물러 있다.
하지만, 지금은 ‘AI가 먼저 이상 거래를 감지하는 시대’다. AI는 단위 오류, 비정상적 입출금, 순간적 대량 거래 패턴을 실시간으로 탐지하고, 차단할 수 있다.
이런 사고가 발생해도 디지털자산 시장은 앞으로도 반드시 성장한다. 다만, 성숙보다 성장이 더 빠르면 사고는 반복되기 때문에, 위험 관리 체계를 정비하며 다시 출발선으로 세워야 한다.
블록체인의 신뢰는 ‘알고리즘’에서 나오지만, 디지털자산 시장의 신뢰는 ‘운영하는 사람과 조직’에서 나온다. 기술은 잘 작동했다.
잘못 작동한 것은 사람과 조직이었다. 이 사고는 디지털자산 시장이 아직 ‘무지의 산’에 있음을 보여준 첫 번째 경고라고 생각한다. 앞으로 규제와 감독체계가 얼마나 성숙해지느냐가 시장의 미래를 결정할 것이다.
이번 비트코인 오지급 사고는 단순한 운영 사고가 아니라, 디지털자산 시장 전체가 ‘성장’과 ‘성숙’의 차이를 구분하지 못해서 발생한 사태에 가깝다.
거래소들은 글로벌 경쟁을 의식하며 거래량 확대와 서비스 개선에 몰두했지만, 정작 신뢰의 기반인 내부통제, 위험관리와 같은 대응체계는 방치해 왔다.
기술로 포장된 성장에 비해 신뢰의 성숙은 턱없이 부족했다. 이 간극을 해소하지 않는 한, 이런 사고는 앞으로도 반복될 가능성이 높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