前 대한민국예술원 사무국장/ 「한국문화산업정책사」 저자
콘텐츠 성과 비해 저작권 보호 미흡
합리적 보상 없인 경쟁력 유지 못해

문화체육관광부는 최근 K컬처 300조원 시대를 앞당기기 위해 7300억원 규모의 콘텐츠 정책펀드 조성 방안을 내놓았다. 한류의 지속적 성장을 위해 투자 확대는 필요하다. 그러나 투자는 결과이고, 그 출발점에는 언제나 창작이 있다. 창의적 콘텐츠가 끊임없이 생산되려면 다양한 기획과 창작이 활발히 이루어지는 환경이 갖춰져야 한다.
한국 콘텐츠산업은 눈부신 성과를 거두었지만, 저작권 제도 측면에서는 아쉬움이 있다. 필자가 문체부 저작권과 사무관으로 근무하던 1998년에도 추진하던 여러 과제 중 하나가 사적복제 보상금 제도다. 사적복제 보상금은 법이 허용한 개인적 복제(사적 복제)로 인해 권리자가 입는 손해를, 복제에 사용되는 기기나 매체에 부과하는 보상금으로 보전하는 제도다. 스마트폰, USB, HDD 등 복제 기기에 일정 금액을 부과하고, 이를 저작권 신탁관리단체를 통해 저작권자에게 분배하는 방식이다. 독일과 프랑스를 비롯한 많은 선진국들은 이 제도를 운영하고 있지만, 한국은 아직도 도입하지 못했다. 같은 제품이라도 선진국에서는 사적복제 보상금이 창작자를 위해 작동하지만, 한국에서는 그렇지 않은 셈이다.
공공대출권 역시 오랜 논쟁의 대상이다. 정부의 문화기반시설 확충 정책에 따라 전국의 국·공립 도서관 수는 크게 늘었고, 도서관 간 상호대차 서비스도 정착되었다. 필자가 문화기반정책관으로 재직하던 시기에도 전국적인 도서관 확충과 상호대차 서비스 도입을 적극 지원하였다. 상호대차는 한 도서관에 없는 책을 다른 도서관에서 빌려와 이용자에게 대출해 주는 제도다. 여러 도서관을 하나의 시스템으로 묶어 어느 곳에서나 대출과 반납이 편리하게 이루어지도록 한 것이다. 그 결과 도서관 대출은 크게 활성화되었다. 대출이 늘수록 도서 판매가 줄어드는 것은 자연스러운 일이다. 도서관 대출은 명확한 데이터가 존재한다. 그럼에도 한국에는 공공대출권이 인정되지 않고 있다. 유럽의 많은 국가들이 보상금을 마련해서 저작권자에게 분배하고 있는 사실과 대비된다.
최근 정부는 공공저작물의 인공지능 학습 활용을 대폭 확대하는 방안을 발표했다. 이른바 ‘제0유형’ 또는 ‘인공지능 유형’으로 표기된 공공저작물은 누구나 인공지능 학습에 자유롭게 활용할 수 있도록 한 조치로, 공공재 활용 차원에서 바람직한 방향이다. 그러나 이를 뒤집어 보면, 개인 저작물은 동의 없이 자유롭게 사용할 수 없다는 점을 분명히 하는 선언이다. 인공지능 시대에 창작자들이 자신의 저작물이 인공지능 학습에 사용되는 것에 대한 보상을 요구하는 것은 자연스럽다. 인공지능은 개별 저작물의 내용을 그대로 저장하기보다는, 수많은 저작물로부터 통계적 패턴과 구조적 관계를 학습한다는 점을 근거로, 개발자들은 보상이 어렵다고 주장한다.
대부분의 사람들도 어떻게 보상해야 하는지에 큰 관심을 두지 않는다. 그저 인공지능이 제공하는 놀라운 기술에 감탄하고, 사용법을 익히기에 바쁘다. 그렇다 해도 타인의 창작물을 마음껏 활용할 수 있는 면허가 주어지는 것은 아니다. 수많은 저작물이 데이터셋 구성 단계에서 분명히 사용되고, 그 결과물은 모델 성능 향상이라는 경제적·기술적 가치 창출에 기여한다. 인공지능의 지속적 발전과 그 토대가 되는 창작의 발전을 함께 이루기 위해서는 합리적 보상 방식이 마련되어야 한다.
한류의 지속적 경쟁우위 확립은 반드시 풀어야 할 과제다. 창작자의 권익을 두텁게 하는 정책은 한류를 지탱하는 ‘뿌리 깊은 나무’를 심는 일이다. 뿌리가 약하면 어느 순간 화려한 가지와 잎도 쓰러질 수밖에 없다. 창작자 보상 체계를 정비하는 일은 K컬처 300조원 시대를 일회적 성과가 아닌, 지속 가능한 미래로 이어주는 마지막 퍼즐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