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통 대전환 구상과 농업 현장의 구조적 괴리

정부는 K-농업 대전환을 내세우며 온라인 도매시장 구축, 인공지능(AI) 기반 가격 예측과 투명 유통, 데이터 중심의 거래 구조를 강조해왔다. 이론적으로는 타당하다. 고비용·저효율로 고착된 유통 구조를 개선하지 않고서는 농가 소득도, 소비자 체감 가격도 달라질 수 없기 때문이다. 문제는 이 구상이 현장에 내려오는 순간부터 다른 논리가 작동한다는 데 있다.
기존 도매시장과 도매법인의 이해관계, 중도매인 중심의 거래 관행, 플랫폼 기업을 둘러싼 규제 논쟁이 겹치면서 구조 개편은 번번이 속도를 잃는다. 온라인 도매시장은 ‘시범’ 단계에 머무르고, 데이터 공개와 거래 투명성은 원칙적 선언에 그친다. 모두가 고비용·저효율 구조에 문제가 있다는 진단에는 동의하지만, 누가 얼마를 내려놓을 것인지를 묻는 순간 논의는 멈춘다.
실제 현장에서는 “온라인 유통이 늘어났다”는 말과 달리, 농업인이 체감하는 판매 방식은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 여전히 출하는 도매시장 중심이고, 가격은 전날 시세에 따라 ‘맞춰보는 수준’에서 결정된다. 유통 혁신이 말로는 앞서가지만, 농업인의 하루 노동과 수입 구조에는 거의 반영되지 않는 이유다.
이 과정에서 가장 불리한 위치에 놓이는 주체는 늘 농업인이다. 농업인은 농산물 가격을 마음대로 정할 수 없다. 생산비는 오르는데, 가격은 시장과 유통 구조에 의해 결정된다. 그러니 소비자에게도 ‘제 가격’이 있을 수 없다. 농산물이 생산지에서 출발하는 순간부터 유통마진이 덧붙고, 그 과정은 대부분 불투명하다. 농가는 왜 이 가격인지 설명할 수 없고, 소비자는 왜 비싼지 이해하지 못한다.
직거래 확대, 유통 단계 축소, 가격 정보 공개는 오래전부터 반복된 처방이다. 그러나 막상 이를 실행하려 하면 이해관계 충돌이라는 벽에 부딪힌다. 직거래는 기존 유통망을 위협하고, 데이터 공개는 수익 구조를 드러내며, 온라인 플랫폼은 새로운 규제 논쟁을 불러온다. 결국 ‘개혁의 필요성’은 말로만 남고, 현장에서는 변화가 체감되지 않는다.
이 괴리는 정책 설계 방식의 한계를 드러낸다. 농업 정책은 종종 목표와 수단을 분리해 생각한다. 디지털화, 플랫폼, AI 같은 키워드는 앞서가지만, 그 기술이 들어갈 농업 현장의 구조와 관계망은 그대로 둔다. 구조를 바꾸지 않은 채 기술만 얹으면, 충돌은 필연적이다. 그래서 농업 현장에서는 “방향은 맞는데 현실은 다르다”는 말이 반복된다.
유통 대전환은 시스템의 문제가 아니라 관계의 문제다. 누가 가격을 결정하는지, 누가 데이터를 소유하는지, 위험과 비용은 누가 감당하는지를 함께 재설계하지 않으면 변화는 작동하지 않는다. 농업인을 단순한 공급자가 아니라 유통 구조의 주체로 포함시키지 않는 한, 어떤 혁신도 현장에 뿌리내리기 어렵다.
농업 정책이 진짜 전환이 되려면, ‘좋은 방향’을 선언하는 데서 멈추지 말고 그 방향이 현장에서 충돌하지 않도록 구조부터 조정해야 한다. 유통마진의 투명화, 단계별 역할 재정의, 데이터 접근권의 재배분 같은 불편한 질문을 피하지 않을 때 비로소 변화는 시작된다.
농업은 늘 현장에서 답이 나온다. 방향이 틀려서가 아니라, 방향이 현장에 닿지 못해서 문제가 반복된다면, 이제는 그 사이의 구조를 직시할 때다. 대전환은 구호가 아니라, 농업인의 하루를 실제로 바꾸는 시스템일 때 의미가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