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립창원대 GAST공학대학원장
유사시 ‘뒷받침’ 수행역량 중요해져
대체불가능한 공급파트너 지향해야

지난달 23일 미국은 ‘2026 국방전략(NDS: National Defense Strategy)’ 문서를 공개했다. 이 문서는 앞으로 미군의 돈과 시간, 전력과 산업 역량을 어디에 먼저 집중할지를 정해두는 최상위 ‘우선순위표’라고 이해할 수 있다. 이번 NDS는 그 우선순위를 과거보다 더 분명하게 말한다. 미국은 이상주의보다 철저한 실용주의를 내세우며 동맹에게 더 빨리, 더 많이 기여하라고 요구한다.
한국이 놓치면 안 되는 지점은 요구의 강도 자체가 아니라 ‘전쟁 준비 방식이 바뀌었다’는 사실이다. 과거에는 전투력이라 하면 최전선의 무기와 병력, 작전계획을 먼저 떠올렸다. 그러나 이번 NDS가 강조하는 것은 ‘대량 생산’과 ‘지속 능력’이다. 전쟁의 승패는 전장만이 아니라 생산 현장과 정비 체계, 물류망에서 결정된다는 뜻이다. 미국은 방위산업 기반을 최우선 과제로 격상시키고, 동맹에게도 재건 과정에 함께 들어오라는 신호를 보낸다. 함께 싸우려면 함께 만들어야 한다는 메시지다.
문제는 여기서부터다. 미국이 전쟁을 생산·정비·보급의 관점에서 다시 보게 되면, 동맹에게도 같은 질문을 던진다. 전시 상황에서 한국은 필요한 탄약과 부품을 얼마나 빨리 확보할 수 있는가, 고장 난 전력을 얼마나 빨리 복구할 수 있는가 하는 질문이다. 결국 한국의 안보 환경은 더 까다로워진다.
첫째, 동맹이 더 책임져야 한다는 기조가 강화되면 한반도 억제의 부담은 한국 쪽으로 더 커진다. 둘째, 인도태평양에서 억제가 강화될수록 한국은 방어의 대상이 아니라 억제를 떠받치는 생산과 정비의 축으로 평가받게 된다. 셋째, 전쟁이 길어질 때 가장 무서운 것은 무기의 성능이 아니라 ‘끊김’이다. 탄약과 부품, 정비가 막히면 아무리 좋은 무기도 멈춘다. 즉 한국의 위기는 무기가 부족하다는 문제가 아니라, 지속 가능한 전쟁 준비 역량이 국가 생존의 조건이 되었다는 구조 변화가 핵심이다.
그래서 해법으로 생각할 수 있는 것이 국방상호조달협정(RDP-A: Reciprocal Defense Procurement Agreement)이다. 이를 수출을 쉽게 해주는 장치로만 보면 반쪽이다. RDP-A는 한국 기업이 미국 방산 생태계에 들어갈 때 부딪히는 제도적 문턱을 낮추는 ‘입장권’에 가깝다. 진짜 승부는 그다음이다. 얼마나 팔았느냐가 아니라 어느 수준까지 함께 엮였느냐, 즉 통합의 깊이가 국익을 좌우한다.
통합은 다섯 가지로 쪼개면 이해가 쉽다. 첫째는 조달 통합이다. 미국 조달 규격과 시험, 인증 체계에 들어가면 한국 기업은 일회성 수출업체가 아니라 글로벌 표준의 정규 참가자가 된다. 둘째는 생산 통합이다. 미국이 원하는 것은 좋은 제품만이 아니다. 필요할 때 필요한 만큼 끊기지 않게 공급하는 능력이다. 한국이 탄약과 핵심 부품에서 믿을 만한 파트너가 되면 단발 계약이 아니라 장기 공급망 지위를 확보할 수 있다. 셋째는 정비·유지보수(MRO: Maintenance, Repair and Overhaul) 통합이다. 정비는 지원이 아니라 전력 그 자체다. 고장 난 전력을 빨리 되살려 다시 전장에 투입시키는 능력이 곧 억제력이다. 넷째는 공급망 보안 통합이다. 사이버 보안, 부품 추적성, 품질관리를 함께 맞춰야 신뢰를 얻는다. 이는 규정 준수를 넘어 한국을 대체하기 어려운 공급망 핵심 노드로 만드는 장치다. 다섯째는 시장 통합이다. 한미가 공동 생산과 공동 정비 체계를 만들면 제3국에는 무기만이 아니라 생산, 정비, 부품, 교육, 보급이 묶인 패키지를 함께 제시할 수 있다.
이 지점에서 결론은 자연스럽게 정부 국정과제와 맞물린다. 이재명 정부 국정과제 113번이 지향하는 K-방산 4대 강국은 이제 완제품 판매 숫자만으로 달성되지 않는다. 핵심은 세계 방산 공급망에서 빠질 수 없는 위치를 차지하는 질적 도약이다. 국정과제 121번이 강조하는 경제안보 역시 공급망 재편 국면에서 우리 기업이 해외에서 전진 기지 역할을 할 때 성과가 난다. RDP-A는 이 두 과제를 이어주는 ‘실행 도구’가 될 수 있다. 방산을 키우는 일이 경제외교를 강화하는 일이 되고, 그것이 다시 안보를 단단히 하는 일로 이어지는 선순환 구조가 가능해진다.
몇몇 강대국이 군사력과 경제력으로 영향권을 나누고 그 안에서 규칙을 정하는 ‘세력권 정치’의 시대는 감성으로 버티기 어렵다. 강대국은 필요하면 거래하고 필요하면 선을 긋는다. 한국의 생존 전략은 분명하다. 줄을 잘 서는 나라가 아니라 거래로 대체할 수 없는 기능을 가진 나라가 되는 것이다. 미국이 한국 없이 무기를 충분히 만들기 어렵고, 고치기도 어렵고, 제때 보급하기도 어려운 구조를 만드는 것, 그것이 냉정하지만 가장 확실한 억제력이다. K-방산이 미국의 방산 재건 프로젝트와 깊이 결합할수록 우리는 소비자가 아니라 공동 설계자로 올라선다. 그때 세력권 정치 시대에도 살아남는다는 말은 낙관이 아니라 전략이 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