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논현논단_전하진 칼럼] 이제 생명의 고속도로를 건설할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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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DX재단 이사장

기후·인구·지역 복합위기에 직면
관성적 성장추구가 후유증 키워
‘성숙’ 실현하는 사회로 나아가야

대한민국은 여전히 거대한 공사판이다. 국토 어디를 가나 도로를 뚫고 산을 깎아 아파트를 올린다. 정부는 제2차 고속도로 건설계획 등 대규모 토목 사업에 향후 10년간 수백조 원에 달하는 예산을 쏟아부을 예정이다. 우리는 이것을 ‘성장’이라 부른다. 경기가 침체될수록 더 강력한 성장 정책을 찾는다.

이번 지방자치단체 선거에도 대부분 후보들이 앞다투어 ‘성장 공약’을 내세울 것이다. 더 많은 도로, 더 높은 건물, 더 큰 개발을 약속한다. 그러나 기후위기와 인구 감소, 지역 소멸의 파고 속에서 과연 이와 같은 성장 경쟁이 위기를 견디고 공동체를 지켜낼 치료제가 될 수 있을 지는 의문이다.

미래학자 제러미 리프킨은 그의 저서 ‘회복력의 시대’에서 지금의 다중위기 상황을 지적하며, 자연의 복원력을 압도해버린 인간의 맹목적 효율성이 역설적으로 성장을 파괴하고 있다고 지적한다. 성장은 하부구조가 붕괴되면 재난이 된다. 물과 전력, 식량 공급이 끊긴 화려한 도시는 순식간에 지옥이 될 수 있다.

기후위기가 목을 조여오고, 일자리가 사라져 소비력이 감소되는 상황에, 더 많은 도로와 더 높은 아파트가 과연 어떤 미래를 보장할 것인지 따져 물어야 한다.

단언컨대, 지금의 성장 중심 정책은 유효기간이 만료된 머니로직(Money Logic)의 관성일 뿐이다. 모든 것을 돈으로 환산하는 머니로직의 추출적 성장 모델은 엄청난 양적 성장을 이루었지만, 기후위기, 양극화, 또한 인공지능(AI) 등 기술의 위협 등 다중위기라는 후유증으로 생존 기반자체를 파괴하는 상황에 직면한 것이다.

인간은 성년이 되면 육체적 성장이 멈춘다. 성장을 지속하게 되면 말단비대증이라는 병이 된다. 이 병은 신체 말단과 장기가 계속 커져 생명 단축을 재촉한다. 지금 인류는 말단비대증 환자와 같다. 더 늦기 전에 성장을 멈추고 성숙한 사회로 전환해야 한다.

다시 말해 생태계의 원리에 따라 윤리적이고 풍요로운 지속가능한 성숙사회를 지향해야 한다. 이 변화는 거대한 국가 담론처럼 보이지만, 사실은 매우 개인적인 문제다. 매년 예산은 여전히 ‘더 많이 짓는 것’에 사용되는 데, 삶은 피폐해지고, 일자리는 불안해지며, 생활비는 올라 소비력은 감소하고 있다.

이대로 가면 개인의 생존 불안은 더욱 증폭될 수밖에 없다. 따라서 새로운 일과 삶터를 통해 생존주권을 되찾아야 한다.

인류 역사는 혈연 → 공장 → 플랫폼이라는 기본 단위의 변화 속에 성장했다. 이제 성숙사회 기반이 되는 새로운 기본단위가 필요한 시점이다. 혈연과 공장 그리고 플랫폼이 작은 단위로 통합된 살림셀(Salim Cell)이라는 하부구조가 그것이다.

살림셀은 정부와 시장 의존을 줄이고, 에너지·식량 자급(Zero Basic), 도시 기능의 내재화(Urban Basic), 공동체와 새로운 일(Culture Basic)을 결합한 분산형 생존 인프라다. 사람들은 살림셀 안에서 출퇴근 전쟁을 치르는 대신, 스스로 에너지를 생산하고 자원을 순환시키며 서로를 돌본다.

그리고 사라진 일자리 대신 자신이 진정 원하는 가치에 몰입하여 새로운 장르를 창조하며, 성숙한 사회의 시민이 된다. 이때 비로소 AI도 훌륭한 파트너가 될 수 있다.

특히 성장이 아닌, ‘성숙’이라는 새로운 가치를 추구하는 일은 진정한 꿈과 희망이 될 수 있을 것이다다. 미국 인디애나 대학의 연구에 따르면, 지구상에는 약 1조 종의 생명체가 존재하며 인류가 그동안 파악한 것은 0.001%도 안 되는 미미한 수준이라고 한다.

이 밖에도 광활한 우주, 깊은 인간관계 등 지금까지 관심 밖이었던 분야를 탐구하고, 상상 이상의 가치가 창조되는 사회가 미래 사회이고, 그 베이스캠프가 살림셀인 것이다. 인류의 하부구조가 살림셀로 전환되면, 자신만의 장르(Genre)를 창조하는 장리스트(Genreist)의 삶터이자 일터가 된다.

살림셀을 통해 수천, 수만 가지의 다양한 가치가 탄생하여 이들이 서로 연결되어 집단지성을 이루는 풍요로는 사회를 상상해 보라. 미지의 세계를 탐구하고 지구적 선(善)을 추구하는 성숙 사회의 모습이 그려지지 않는가?

2026년, 살림셀을 통해 성숙사회로 나아가는 원년이 되기를 소망한다. 이제 아스팔트 위의 속도 경쟁을 멈추고, 우리의 삶을 지키는 생명의 고속도로, 살림셀 건설에 함께 나서야 할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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