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기찬의 사람 중심 기업가 정신] 대한민국, 유럽·일본의 길을 갈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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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면교사가 아니라 반면교사가 되어야 한다

▲김기찬 프레지던트대학교 국제총장, 세계중소기업학회 의장 (출처=본인 제공)
돈을 꿈꾸게 하라! 돈은 꿈이 되기도 하고 흉기가 되기도 한다. 돈이 꿈을 꾸면 세상에 희망이 된다. 반대로 돈이 ‘꿈’을 잃으면 흉기가 된다. 돈이 잠들면 사회는 관료화되고 혁신은 사라진다.

기업가는 돈을 벌기만 하는 사람이 아니다. 기업가는 돈을 꿈꾸게 하는 사람이다. 기업가정신의 출발점은 세상의 불편이다. 불평을 어떻게 생산적으로 해결할 것인가. 이 가능성을 혁신으로 전환하는 곳이 기업이다. 창업이란 기존 기업들이 해결하지 못한 세상의 불편에 도전하는 꿈의 과정이다. 이러한 꿈에 세상의 돈이 투자될 때, 돈은 더 나은 세상을 상상하게 만들고, 그 상상은 혁신으로 이어진다.

미국은 돈이 ‘일하는 나라’의 대표적 사례다. 청년들이 혁신에 도전하는 미국 대학의 R&D에 거대한 자금이 투입되고, 자본은 스타트업 펀딩으로 흘러간다. 그 결과 파괴적 혁신이 대학과 창업을 중심으로 연쇄적으로 등장한다. 미국의 자본은 꿈꾸는 사람들을 일하게 만든다.

2000년 이후 인터넷, 플랫폼, AI, 반도체, 전기차, 바이오 등 세계 경제의 판을 바꾼 기업들은 대부분 미국에서 나왔다. 반면 유럽과 일본에서는 세계 시장을 흔들 혁신 기업이 거의 등장하지 않았다. 이는 기술이나 인재의 부족 때문이 아니라, 혁신이 자랄 수 있는 구조가 사라졌기 때문이다. 미국에는 담보도 없고 당장의 수익도 없는 스타트업에 장기간 자본을 투입하는 모험자본 시스템이 작동하고 있다. 이것이 미국의 성장 엔진이다.

2026년 현재에도 엔비디아, 구글, 오픈AI 등 미국의 빅테크 기업들은 범용 인공지능(AGI) 시대를 만들어가고 있으며, 동시에 수많은 AI 창업기업들이 쏟아지고 있다. 돈이 잠들지 않는 미국의 창업 생태계다.

대한민국은 지금 갈림길에 서 있다. 그동안 한국 경제는 독일과 일본의 길을 따라왔다. 라인강의 기적을 보았고, 일본식 경영의 품질 관리 시스템을 벤치마킹했다. 그러나 이들 국가는 ‘잃어버린 30년’을 경험했고, 독일 경제 역시 최근 크게 흔들리고 있다.

이제 일본과 유럽은 더 이상 우리의 정면교사가 아니라 반면교사가 되어야 한다. 독일식·일본식 장인정신은 어느 순간부터 새로운 것에 도전하는 기업가정신의 반댓말이 되어가고 있다. 장인정신이 보수주의로 흐르지 않도록, AI와 디지털 전환(DX)이라는 날개를 달아주는 기업가정신이 필요하다.

현재 이들 국가는 ‘돈이 잠자는 나라’가 되었다. 혁신은 느려지고 사회는 서서히 굳어가고 있다. 한때 한국 성장의 모델이었던 독일은 노후화의 징후가 뚜렷하다. 라인강의 기적을 만들었던 산업 DNA는 혁신 속도에서 뒤처지고, 국가 시스템은 관료화로 경직되었으며, 사회는 안일함에 익숙해졌다. 독일은 마이너스 성장에 직면했고, 칸트의 나라에서 열차 지연은 일상이 되었다. 혁신 없는 에너지 정책과 러시아 의존은 서민들을 춥게 만들었고, ‘히든 챔피언의 나라’에서 더 이상 AI와 같은 미래 혁신 담론을 찾기 어렵다. 독일 자동차 산업 역시 중국 시장 의존 속에서 심각한 위기를 맞고 있다. 경제대국 독일의 돈이 꿈을 잃고 ‘잠자고’ 있기 때문이다.

일본도 다르지 않다. ‘잃어버린 30년’ 속에서 일본은 “현금은 왕”을 외쳐왔다. 2000년 전후 많은 일본 기업들은 ‘망하지 않기 위해’ 현금을 쌓았다. 버블 붕괴 이후 생존 전략으로 축적된 일본 기업들의 내부유보금은 일본 재무성 통계에 따르면 매년 역대 최고치를 경신하고 있다.

그러나 역설적으로 이 막대한 현금은 IT 전환이라는 결정적 기회를 놓치게 만들었고, 혁신을 정체시켰다. 일본 기업들이 ‘현금은 왕’을 외칠 때, 세계는 AI라는 거대한 파도를 맞이하고 있었다. 현금을 쌓아두는 전략은 단기 생존에는 유리할 수 있으나, 인플레이션과 기술 대전환기에는 가장 위험한 선택이 될 수 있다.

2026년은 AI라는 문명 대전환의 해다. 코로나 이후 지속된 글로벌 인플레이션 속에서 현금 가치는 급격히 하락하고 있다. 현금은 ‘기다리는 자본’으로서의 전략적 유연성을 요구받고 있지만, 동시에 “현금은 쓰레기”라는 말이 회자될 만큼 보유 비용은 커지고 있다. 반면 금값, 주가, 물가는 폭등하고 있다. 일본식 ‘현금을 지키는 전략’은 생존에는 도움이 되었을지 모르나, 미래 기회를 선점하는 데는 무력했고 결국 잃어버린 30년의 원흉이 되었다. 과도한 안전 위주의 현금 경영이 저성장의 구조를 고착화시킨 것이다.

그럼에도 일본의 전통 대기업들과 달리, 소프트뱅크의 손정의 회장은 2000년 당시 창업 초기였던 중국 알리바바에 2000만 달러를 투자했다. 2014년 알리바바가 뉴욕 증시에 상장할 당시 이 지분 가치는 약 60조 원에 달했고, 초기 투자 대비 약 3000배에 가까운 수익률을 기록했다. 이 자금은 이후 소프트뱅크가 비전펀드를 조성해 전 세계 AI 기업에 투자하는 원동력이 되었다.

이 사례는 AI 대전환기인 지금, 세상의 꿈을 현실로 만들어내는 기업가적 도전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명확히 보여준다. 한국의 돈 역시 부동산에 잠자게 해서는 안 된다. 미래 혁신의 꿈을 위해 일하게 해야 한다. 현재 한국의 막대한 자본이 부동산이라는 지대(Rent)에 묶여 있는 것은 국가적 낭비다. 반면 미국의 힘은 대학 R&D와 모험자본이 결합해 돈이 끊임없이 ‘일하게’ 만드는 데서 나온다. 물론 미국식 모델이 만능은 아니다. 높은 실패율과 승자독식이라는 그림자도 존재한다. 그러나 엔비디아와 오픈AI가 문명적 전환을 이끄는 지금, 자본이 혁신의 마중물이 되는 시스템만큼은 반드시 벤치마킹해야 한다.

대만은 더 노골적으로 “세금까지 일하게” 만들었다. 대만 정부는 TSMC 지분에 투자해 국가 자본이 기술 혁신의 파트너가 되는 모델을 구축했다. 정부가 전략적으로 투자한 TSMC의 성과는 국가 재정을 풍부하게 했고, 그 배당금은 국민 복지로 환류되는 선순환 구조를 만들었다. 이는 우리에게 중요한 시사점을 던진다.

한국 역시 민간 모험자본이 활성화될 수 있도록 세제 혜택을 과감히 확대하고, 실패해도 다시 도전할 수 있는 ‘패자부활’의 안전망을 강화해야 한다. 돈이 일하게 하되, 사람이 다치지 않는 구조가 함께 마련되어야 한다.

대한민국은 인재가 전부인 나라다. K 컬처, K 기업가정신, 기술 인재, 그리고 세계 최고 수준의 IT 인프라를 동시에 갖춘 나라다. 이제 필요한 것은 ‘현금을 모시는 경영’이 아니라 ‘미래를 설계하는 경영’이다.

돈이 기득권과 지대로 굳어버리면 사회는 관료화되고 성장 잠재력은 소진된다. 지금 필요한 것은 “현금을 왕처럼 모시는 전략”이 아니라 “돈을 꿈꾸게 하는 전략”이다. 저성장 국면에서 일본식 ‘현금은 왕’ 전략이 다시 거론되지만, 독일과 일본의 모델은 이제 분명한 반면교사가 되어야 한다. 한국은 ‘돈이 잠자는 나라’가 아니라 ‘돈이 일하는 나라’가 되어야 한다.

돈이 꿈꾸면 모험자본이 되고, 청년 창업이 되고, 결국 혁신 국가의 원천이 된다. 돈을 잠재우지 말고 꿈꾸게 하라. 자본이 부동산을 떠나 청년의 아이디어와 기술의 현장으로 흘러갈 때, 혁신은 일상이 된다. 정부는 혁신의 인프라를 구축하고, 기업은 파괴적 도전을 멈추지 않으며, 자본은 그 꿈을 뒷받침하는 삼각 혁신 연대를 공고히 해야 한다.

이것이 AI 대전환 시대에 대한민국이 저성장의 늪을 벗어나 세계 무대의 주역으로 남는 길이다.

김기찬 교수는 현재 인도네시아 프레지던트대학교의 국제총장이자, aSSIST 석좌교수, 가톨릭대학교 경영학부 명예교수이며, 세계중소기업학회(ICSB) 회장으로 활동 중인 대한민국 대표 경영학자다. 기업가정신과 ESG(환경·사회·지배구조)를 통합한 사람중심 경영 철학의 선구자이자, K-Entrepreneurship의 세계화를 이끄는 학계·실무계의 권위자다.

서울대 경영학 박사학위를 취득한 후 도쿄대 경제학부 객원연구원, MIT 국제자동차프로그램(IMVP) 연구위원, 조지워싱턴대학 초빙교수 등을 역임했다. 대통령직속 국민경제자문회의 혁신경제분과 위원장, 유엔글로벌콤팩트 한국협회 이사, 신남방정책 민간자문위원을 역임하며 정부 자문 역할도 수행했다.

또한 현대자동차, 삼성전자, 포스코에너지 등 대기업의 자문교수 및 현대모비스·홈앤쇼핑·킨텍스 사외이사 등 산업계와 학계를 연결하는 산학연 허브형 리더로 평가받는다. 윤경ESG포럼 공동대표, 한국인도네시아경영학회 회장으로서 아세안과의 경영교육 및 교류 확대에도 힘쓰고 있다.

주요 저서로는 '사람중심 기업가정신'(2018), '이토록 신나는 혁신이라니'(2019), '플랫폼의 눈으로 세상을 보라'(2015) 등이 있다. 다수의 국내외 수상 경력도 보유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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