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철우 산업부장

발단은 이재명 대통령이 해당 자료의 근거가 불충분하다는 점을 공개적으로 짚어내면서부터다. 대통령은 국가 정책의 근거가 되는 자료가 정확하지 않을 때 발생할 수 있는 사회적 혼란을 우려하며, 이를 ‘가짜뉴스’라는 표현을 빌려 강하게 경계했다. 법률에 근거한 공적 단체인 대한상의가 충분한 검증 없이 외부 자료를 인용한 것에 대해 엄중한 책임감을 당부한 것이다.
대한상의는 즉각 고개를 숙였다. 외부 컨설팅 업체의 통계를 충분한 여과 없이 사용해 불필요한 논란을 일으킨 점에 대해 공식 사과했다. 정책의 정당성을 뒷받침해야 할 데이터가 오히려 논란의 중심에 서게 되자, 발 빠르게 과오를 인정하고 수습에 나선 모습이다.
데이터는 객관적이어야 한다. 하지만 이번 사태에서 나타난 통계 인용 방식은 ‘결론을 정해놓고 끼워 맞춘’ 인상을 지우기 어렵다. 숫자가 정책을 관철하기 위한 수단으로 전락할 때, 그것은 더 이상 정보가 아니라 독(毒)이 된다. 우리는 입법과 정책 결정의 근거가 되는 기초 자료가 오염될 경우 민주적 토론이 본질을 벗어나 표류하게 된다는 사실을 이미 뼈아픈 경험을 통해 목도해 왔다. 기업의 이익을 대변하는 단체일수록 그 근거는 더욱 정교하고 투명해야 한다. 실력이 아닌 ‘자극’으로 승부하려 했던 대한상의의 조급함이 결국 재계 전체의 신뢰도를 깎아먹은 셈이다.
심각하게 받아들여야 할 것은 상속세 개편이라는 중차대한 과제가 ‘데이터의 부실함’이라는 예기치 못한 암초를 맞은 상황이다. 이 사건이 남긴 파장이 앞으로 상속세 논의의 향방에 작지 않은 숙제를 던질 것이다. 중소기업계는 ‘대한민국에서 가업 승계는 가능한가’라는 절규와 함께, 상속세 개편이 기업 생존과 고용 유지를 위해 더 이상 미룰 수 없는 시대적 과제임을 호소하고 있다.
역대 정부는 상속세 최고세율을 현행 50%에서 40%로 낮추고 최대주주 할증을 폐지하는 등의 세법 개정안을 제출했지만 정치권 이견으로 국회 문턱을 넘지 못했다. 물론 상속세나 증여세 감면이 능사는 아니다. 가업승계 기업만 챙긴다는 점에서 형평성 원칙에 어긋나고 국민 정서상 받아들이기 쉽지 않다. 중소기업 지원은 좋지만 그렇다고 무리한 특혜를 줄 수는 없다. 자칫 부의 대물림을 권장하는 꼴이 되기 때문이다.
이번 데이터 논란은 상속세 개편을 ‘부자 감세’라는 프레임에 고착시킴으로써, 향후 합리적 정책 논의의 동력을 크게 약화시킬 우려가 있다. 결과적으로 상속세 개편을 염원하던 기업인들의 진정성마저 오염시켰다는 점을 뼈아프게 반성해야 한다.
경계해야 할 것은 ‘통계의 오류’만큼이나 무서운 ‘논의의 실종’이다. 상속세 개편의 핵심은 부를 대물림하는 것이 아니라, 기술과 노하우, 그리고 일자리를 대물림하는 데 있다. 기업이 영속성을 잃고 사라질 때, 그 피해는 기업주가 아닌 국가 경제와 지역사회로 전이된다. 팩트 오염으로 거대한 경제적 가치가 ‘가짜뉴스’라는 낙인 아래 사장돼서는 안 된다.
기업인들에게 상속세는 단순한 세금이 아니다. 그것은 평생을 일궈온 일터와 숙련된 노동자들의 일자리를 지켜낼 수 있느냐를 결정짓는 ‘생존의 문턱’이다. 지금 이 순간에도 수많은 기업 현장에서는 상속세 부담 때문에 기업을 팔거나 폐업을 고민하는 ‘현실적 비극’이 진행 중이다. 부실한 데이터가 진실을 잠시 가릴 수는 있지만, 현장의 고통까지 가짜일 수는 없다. 이번 사태가 상속세 개편이라는 시대적 과제를 좌초시키는 악재가 아니라, 오히려 가장 정직하고 투명한 방식으로 정책의 필요성을 재확인하는 전화위복의 계기가 되기를 바란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