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재수 송현경제연구소 국제경제부문 대표
산업 구조조정·효율성 제고 늦어져
금리인상 결단해 시장 안정 꾀해야

최근 한국은행이 다중 딜레마에 빠져 효과적 통화정책 수행에 어려움을 겪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딜레마의 원천은 크게 세 가지다.
우선, 통화정책 파급경로의 왜곡이다. 주택가격 급등 및 가계부채 과다로 인해 자산시장이 금리에 민감해지면서 한국은행의 기준금리 조정이 실물경기보다 자산시장에 먼저 영향을 미치는 상황을 예로 들 수 있다. 금리 인하가 소비와 투자를 진작하기도 전에 부동산가격이 급등하고 가계부채도 덩달아 급증하면서 금융안정에 문제가 생기는 상황이 잦아지고 있는 것이다. 부동산가격의 과도한 상승 및 이에 따른 부의 상위계층으로의 집중이 이러한 경향을 심화하고 있다. 또한, 유례없이 빠르게 진행되고 있는 고령화는 가계의 소비성향을 낮추어 금리 인하의 소비증가 효과를 제한하고 있다.
반면, 금리 인상은 다중채무자 가계와 소규모 중소·벤처기업을 중심으로 이자 부담을 빠르게 높여 투자 및 소비 증가를 억제하는 동시에 부동산거품 파열 및 가계부채 부실화 위험을 높여 금융안정을 저해할 여지가 커졌다. 결국, 한국은행은 기준금리 조정 시 소비 투자 등 실물경기에 대한 효과는 물론 부동산시장 및 가계부채 등 금융안정에 대한 효과와 이들 요소 간 상충까지 고려해야 하기 때문에 정책적 운신 폭이 크게 좁아진 형편에 놓여있다.
둘째, 경기 부진 장기화로 인해 통화정책 방향의 탄력적 조정이 어려워졌다. 최근 통화정책의 목적 변수인 국내 총수요는 구조적으로 침체되어 있다. 이를 항목별로 보면, 고령화·저출산 및 소득·부의 양극화에 따른 소비 부진, 대다수 산업에서의 새 사업모델 창출 미흡과 미국 중심의 글로벌공급망 재편에 따른 투자의 부진 또는 해외유출 등이다. 또한 반도체 이외 철강 조선 화학 가전 등 주력 제조업의 국제경쟁력 약화에 따른 수출 부진도 꼽힌다.
이런 상황에서 정부와 기업 등 대다수 경제주체는 경기부진 탈출을 명분으로 낮은 금리를 요구하고, 따라서 한국은행은 기준금리 인하에 경도되기 쉬운 반면 인상에는 어려움을 느낄 수밖에 없다. 그 결과 글로벌금융위기 이후(2022~2024년 제외) 2% 내외의 낮은 기준금리가 계속되고 있다. 이러한 저금리정책이 낳은 심각한 결과 중 하나는 경제구조 개혁의 지연이다. 저금리는 한계기업을 온존케 함으로써 우리 경제의 구조조정과 효율화를 늦추고 있다. 정부의 전통 서비스·제조 중소기업에 대한 ‘밑빠진 독에 물붓기’식 지원도 계속되고 있다.
셋째, 외환시장 불안이 기준금리 인상 내지 인하 중단을 압박하고 있다. 2025년 평균 원·달러 환율은 1422원으로, 외환위기 당시인 1998년의 1395원, 글로벌 금융위기 때인 2009년의 1276원을 넘어서면서 사상 최고치를 기록했다. 최근 5년간 원화 가치는 17%나 하락해 엔화(29% 하락)와 더불어 주요 통화 중 가장 크게 하락했다. 2022년 하반기 이후 사상 최장기간 최대폭의 한·미 정책금리 역전이 지속되면서 한국 투자자산의 수익률이 상대적으로 낮아진 것이 원화가치 하락의 주 원인 중 하나다.
게다가 2010년대 이후 개인들의 투자행태가 글로벌화되면서 예상수익률이 상대적으로 높은 미국 주식 등에 적극 투자하고 있고, 한미 통상협상으로 정부와 수출기업의 대규모 대미 직접투자가 예정됨에 따라 최근 외화유동성이 구조적으로 부족해진 실정이다. 이는 지금의 환율 불안이 쉬이 해소되기 어려움을 시사한다.
이런 요인들을 통화정책 측면에서 종합해보면, 소비·투자 등 실물경기 면에서는 금리 인하 압력, 외환시장 및 경제구조 개혁 면에서는 금리 인상 압력이 엇갈리는 가운데, 자산시장 및 대출시장에서는 금리 인상 필요성과 금융불안 우려가 상충하고 있다. 한국은행의 통화정책이 진퇴유곡에 빠진 것이다. 이러한 상황이 초래된 것은 앞에서 언급한 문제들을 주로 정부가 시의적절하게 해결하지 못한 데 원인이 있다. 따라서, 이를 타개할 책임 역시 정부에게 있다.
부동산부문 정상화와 가계부채 축소, 구조적 총수요 부진 요인 개선 및 기업·산업 구조조정, 자본시장 및 금융산업 개혁 등을 정부가 적극 추진해야 한다. 다만, 이러한 문제의 해결에 시간이 걸리니만큼 한국은행이 마냥 기다려서는 안 된다. 한국은행 스스로 할 수 있는 조치를 해야 한다. 기준금리를 인상, 과도한 한미 간 금리역전과 저금리에서 벗어나는 것이다. 이로써 부동산시장 안정, 한계 기업·산업의 구조조정, 외화유동성 확충이 가능하다. 정부의 과감한 경제개혁 노력과 한국은행의 결단이 한국 경제의 성장잠재력과 금융·외환시장 안정을 향상할 열쇠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