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왜 서로를 태그하는가?
이제 정체성은 마음속에서 조용히 숙성되는 무언가라기보다, 바깥에서 먼저 형태를 얻는다. 말하기 전에 캡처되고, 생각하기 전에 저장된다. 무엇을 좋아하는지보다, 무엇으로 분류될 수 있는지가 더 중요해진다. 취향은 취향으로 끝나지 않고, 곧바로 좌표가 된다. 어느 순간부터 개인은 ‘어떤 사람’이라기보다, 어떤 범주에 속하는 존재가 된다. 스스로를 설명하는 쪽이 아니라, 호출되는 쪽에 가까워진다. 나라는 감각은 하나로 이어진 덩어리라기보다, 흩어진 정보들의 묶음으로 존재한다.
오래전부터 문화는 사회적 구분을 만들어왔다. 피에르 부르디외가 말한 문화자본은 애초에 취향을 둘러싼 문제가 아니라, 계급의 재생산에 대한 분석이었다. 어떤 음악을 듣는지, 어떤 언어를 쓰는지, 어떤 몸짓을 자연스럽게 구사하는지가 곧 사회적 위치를 드러낸다는 점에서 문화는 언제나 권력의 지표였다. 오늘날의 문화자본은 부르디외가 상정했던 것보다 훨씬 더 빠르고, 가볍고, 미세한 형태로 작동한다. 그 어느 때보다 고도로 연결된 디지털 사회에서 문화는 축적이 아닌 소비에 지향점을 둔다. 시간에 걸친 숙성은 기회를 잃는 낭비로 판단되는 시점에서 문화는 획득과 소모가 동시에 일어나는 자극제이자 가장 직관적인 상품으로 변질되었다.
사람들은 자신의 취향을 니치(niche)로 고정시키고, 그 상세한 분야를 다시 잘게 쪼갠다. 포엣코어, 다크 아카데미아 코어, 클린걸, 메시걸, 올드 머니와 같은 명명들은 압축 파일로 기능하며 망망대해와 같은 개성의 시대에서 카탈로그로 작동한다. 물론 성격도 검색 가능해야 한다. 그래야 내 무심한데-마호가니톤-다크체리-고딕아카데미아-겨울-시나몬향-핫토디를-좋아하는-러버걸-미감에 딱 맞는, 살짝 바랜 듯하면서 안쪽에 뜯긴 택이 달린 스카프를 대체 어떻게 주문하겠는가.
이렇듯 디지털 플랫폼의 활성화를 통해 이미지, 태도, 소비 방식, 말투, 정서까지 하나의 단어 안에 접히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취향이 유통 가능한 패키지가 되어버린 것이다. 이때 문화자본은 이해의 깊이를 늘리는 장치가 아니라, 빠르게 위치시키는 인덱스다. 이 구조는 기 드보르가 말한 ‘스펙터클의 사회’와 더 가깝다. 직접 사는 삶보다 전시되고 중계되는 간접적인 체험이 우리의 기본값이 되어가고 있다. 중요한 것은 무엇을 경험했는지가 아니라, 어떻게 보였는지다. 취향 역시 경험이라기보다 이미지가 된다. 고유한 축적의 결과보다 즉각적으로 소비 가능한 장면들의 일련 속에서 우리는 취향을 가진 것보다 연출하는 방향성을 택한다.
여기서 고유성은 출발점이 아니라 결과값이 된다. 나는 나여서 이런 취향을 갖는 것이 아닌, 이런 취향을 갖고 있기 때문에 나라는 이미지가 만들어지는 것이다. 문화자본은 더 이상 개인 내부에 쌓이는 것이 아니라, 외부에 배열된다. 보여주기 위해 정리되고, 인식되기 위해 단순화된다.
이 좌표계는 연결과 배제를 동시에 만들어낸다. 같은 라벨을 공유하는 사람들끼리는 즉각적인 친밀감을 느낀다. 같은 밈을 이해하고, 같은 레퍼런스를 알아보고, 같은 장면에서 웃는다는 사실만으로도 우리는 서로를 ‘우리’라고 부른다. 그러나 이 친밀함은 늘 얇은 막 위에 있다. 내가 이해하는 코드가 곧 상대를 배제하는 기준이 되기 때문이다. 어떤 농담을 모르면 ‘감이 없는 사람’이 되고, 어떤 미감을 공유하지 않으면 ‘느낌이 없는 사람’이 된다. 이때 문화자본은 더 이상 취향의 언어가 아니라 통과증의 역할을 한다.
테오도어 아도르노가 비판했던 문화산업은 대중문화를 표준화된 상품으로 만들었다. 오늘날 우리는 그 표준화가 한 단계 더 안쪽으로 들어온 시대를 살고 있다. 이제 표준화되는 것은 노래나 영화만이 아니라, 사람의 성격과 태도다. 차이는 허용되지만, 관리 가능한 범위 안에서만 허용된다.
더 흥미로운 점은, 이 모든 과정이 시장과 완전히 결합되었다는 사실이다. 예전에는 물건이 브랜드를 가졌다면, 지금은 사람이 브랜드를 갖는다. 성격, 말투, 취향, 세계관이 패키징된다. 자신을 드러낸다는 행위는 곧 자기 상품화와 겹친다. 이 현상은 장 보드리야르가 말한 시뮬라크르의 논리와 맞닿아 있다. 원본보다 복제가 더 많이 유통되고, 복제가 현실을 대신하는 상태. 우리는 진정성을 소비하지만, 그 진정성은 이미 여러 번 복제된 이미지일 가능성이 높다. 진정성이라는 개념 자체가 가장 잘 팔리는 상품이 된 것이다.
여기서 생성형 AI를 둘러싼 “영혼이 없다” 라는 유구한 비판을 다시 고려하게 된다. 많은 사람들이 AI의 결과물을 보며 영혼이 없다고 느끼는 이유는, 그 문장들이 수많은 데이터의 평균값으로 만들어졌기 때문이다. AI가 도출한 결과값에는 창작자의 손에 수 년간 굳은 습관도, 피나는 노력 끝에 얻은 미세한 목소리의 떨림도 없다. 시간과 버릇이 소거된 기계적인 작품은 오로지 계산된 미학만을 내세울 뿐이다. 하지만 이러한 과정은 오늘날 개인의 취향과 표현에 있어서도 드물지 않게 찾아볼 수 있다. 알고리즘이 추천한 것을 소비하고, 그 소비 기록이 다시 알고리즘을 학습시키는 순환 속에서, 우리는 서로를 닮아가며 평균값에 머물게 된다.
사람들은 점점 더 많은 사고 과정을 도구에게 맡긴다. 문장을 쓰고, 요약하고, 방향을 잡고, 판단을 보조받는다. 이는 편리함이지만, 동시에 사유의 일부를 외주 주는 행위다. 지그문트 바우만이 말한 ‘액체 근대’처럼, 모든 것이 유동화된 사회에서 사고마저 유동화된다. 깊이보다는 속도, 고민보다는 반응이 우선된다.
이 흐름은 도시에서도 그대로 반복된다. 서울의 번화가를 걷다 보면 장소의 고유한 얼굴이 점점 흐려지는 것을 체감할 수 있다. 홍대인지, 성수인지, 도쿄인지, 뉴욕인지 쉽게 구분되지 않는 공간은 같은 콘크리트 질감, 비슷한 미니멀 인테리어, 브랜드 이름만 갈아 끼운 커피 메뉴, 사이즈만 바꾼 포스터들이 즐비하다. 젠트리피케이션은 단순히 임대료 상승의 문제가 아니다. 도시가 하나의 자산 클래스로 재편되는 과정 속에서 그 기억도 함께 지워지고 있다. 각 동네가 가지고 있던 고유한 리듬이 사라지고, 대신 투자하기 좋은 이미지와 찍어낸듯한 시설들이 덮인다. 다양한 문화의 저장소로 기능하던 도시가 하나의 표준화된 패키지로 유통되는 단계에 도달한 것이다.
이 모든 조건 속에서 개인의 자아는 수행(performance)에 가까워진다. 우리는 반복적인 행위를 통해 자신을 만들어가지만, 외부의 시선을 전제로 하는 오늘날의 수행에서 개인은 자아의 탐구보다 어떻게 보이는가를 우선시하게 된다.
결국 우리는 사람도, 취향도, 도시도 서로를 복제하는 세계에 살고 있다. 이 복제는 효율적이고 예측 가능하며 관리하기 쉽다. 그러나 그 대가로 사라지는 것은 느림이다. 취향이 생겨나기까지의 시간, 관계가 어색함을 통과해 깊어지기까지의 시간, 도시가 스스로의 얼굴을 만들어가기까지의 시간. 문화자본이 속도에 의지한 소비로만 소모가 될 때 깊이는 희생될 수밖에 없다.
그렇다고 해서 이 문화를 도덕적으로 단죄하는 것은 너무 단순하고 쉬운 선택이다. 많은 사람들에게 취향 공동체는 실제로 위로와 안전지대가 된다. 특히 기존의 제도와 계급 구조에서 배제되어 왔던 이들에게 취향 공동체는 새로운 돌파구로 기능할 수 있다. 사회의 이목이 쏟아져야 할 문제점은 방향성에 있다. 문화자본이 나를 표현하는 언어로 작동할 때와, 나를 대신하는 언어가 될 때는 전혀 다른 결과를 낳는다. 전자는 확장이고, 후자는 축소다.
어쩌면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더 많은 라벨이 아니라, 라벨 뒤에 남겨진 여백이다. 아직 말로 붙잡히지 않은 취향, 정리되지 않은 감정, 검색되지 않는 관계. 그 여백을 견디는 능력 자체가 지금 시대의 가장 희귀한 문화자본일지도 모른다.
저자 소개
반휘은은 글로벌 AI 거버넌스와 신기술을 전문으로 하는 정책 컨설턴트이자 저술가다. 미국 컬럼비아 대학교에서 디지털 인문학, 미디어철학, AI윤리를 전공하며 석사과정을 마친 후, 뉴욕 유엔본부의 (전)기술특사실 (현)디지털과 신기술사무국(전 Office of the Secretary-General’s Envoy on Technology, 현 Office for Digital and Emerging Technologies)에서 AI 정책 연구와 분석을 주도했다. 안보, 에너지, 노동, 건강, 법의 지배 등 다양한 분야에서 AI 거버넌스를 위한 전략적 프레임워크를 개발했으며 20회 이상의 고위급 자문 회의를 주관하며 AI 정책을 구체화했다. 구글, 마이크로소프트(MS), 메타 등 주요 산업 리더들과 협력하여 AI 거버넌스의 글로벌 표준을 마련하는 데 기여한 반휘은은, 디지털 윤리와 사회적 가치에 대한 깊이 있는 통찰을 제공한다. 학계와 산업계를 잇는 다리 역할을 하며, 현재는 AI 거버넌스를 주제로 한 책을 집필 중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