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은주 삼성벤처투자 투자심사역·변리사
인공지능(AI)이 전 산업의 지형을 빠르게 뒤흔들고 있다. 그런데 이 거대한 소용돌이 속에서 기이할 정도로 조용한 지점이 하나 있다. 바로 AI 기술 자체를 둘러싼 ‘특허 분쟁’이다. 수조 원 규모의 거대 시장이 형성되고 있음에도, 정작 특허를 놓고 다투는 사례는 손에 꼽을 정도다. 과연 AI 기술이 너무 특별해서일까, 아니면 아직 때가 오지 않은 것일까?
지금까지 불거진 AI 소송들은 기술 특허 침해보다는 ‘저작권’과 ‘발명자 자격’ 이슈에 집중되어 있다. 게티이미지와 작가들이 제기한 데이터 무단 학습 논란, 그리고 AI의 발명자 지위를 부정한 ‘다부스(DABUS)’ 사건이 대표적이다. 이는 현재의 갈등이 AI의 기술적 메커니즘 그 자체보다는, 주로 데이터 사용의 정당성이나 법리적 해석을 다투는 단계에 있음을 보여준다.
그렇다면 왜 핵심 기술인 AI 알고리즘 자체에 대한 특허 소송은 잠잠할까? 첫째, 지금은 경쟁보다 ‘시장 확대’가 우선인 시기이다. 초기 시장에서는 특허 소송으로 성장을 늦추기보다, 기술을 빠르게 개방해 생태계를 장악하는 것이 유리하다. 구글이 핵심 기술인 ‘트랜스포머’를 대중에 공개한 것이 대표적이다. 현재 주요 AI 기업들은 시장 확장과 선점을 위한 속도전에 몰두하며, 내부적으로는 특허 자산을 지속하여 축적하고 있다. 둘째, AI 기술에 대한 침해 입증의 기술적·법적 난도가 매우 높다. AI 알고리즘이나 모델은 소프트웨어 발명처럼 ‘추상적 아이디어’로 취급되어 특허 등록이 까다롭다. 설령 등록되더라도 권리 범위가 좁게 해석되곤 한다. 게다가 AI의 핵심인 학습 데이터와 매개변수는 서버 깊숙한 곳에 숨겨져 있다. 경쟁사가 내 기술을 도용했더라도, 외부에서는 그 블랙박스 내부를 들여다보며 침해를 입증하기가 현실적으로 매우 어렵다.
하지만 이러한 평화도 곧 깨질 가능성이 크다. AI가 클라우드 서버를 넘어 로봇, 자율주행차, 의료기기, 증강현실(AR) 글래스 등 디바이스와 본격적으로 결합하고 있기 때문이다. 예컨대, 올해부터 쏟아져 나오는 ‘온디바이스 AI’ 탑재 스마트폰이나, AI가 관절 모터를 직접 제어하는 휴머노이드 로봇은 그 시발점이다. 이처럼 눈에 보이는 하드웨어와 AI가 결합하는 순간, 특허의 권리 범위는 명확해지고 경쟁사의 침해 입증 또한 훨씬 수월해질 수밖에 없다. 이와 관련해 지난 1월 15일 공개된 지식재산처의 ‘AI 분야 특허 심사실무가이드(3차 개정안)’는 주목할 만한 기준이다. 개정안은 단순한 AI 활용을 넘어, 학습 데이터와 모델의 구체적인 ‘기술적 효과’를 입증해야 한다고 명시했다. 특히 센서나 로봇 등 ‘물리적 시스템’과 결합될 때 특허 인정 가능성이 높다는 점을 분명히 했는데, 이는 앞서 언급한 하드웨어 중심의 시장 변화와 정확히 맞물린다.
일반적으로 특허 소송은 특정 기술이 시장을 지배하고, 등록 특허가 충분히 축적되며, 후발 주자의 추격이 거세질 때 발생한다. 지금의 AI 특허 소송 부재는 ‘공백’이 아니라 ‘전환 전 단계’다. AI가 현실 세계의 시스템 깊숙이 침투할수록, 잠자고 있던 특허들은 다시 강력한 경쟁 수단으로 부상할 것이다. 고은주 삼성벤처투자 투자심사역·변리사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