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료실 풍경] 실연

최영훈 일산연세마음상담의원 원장

진료실 문이 열리고, 눈이 퉁퉁 부은 환자가 들어왔다. 그녀는 자리에 앉자마자 깊은 한숨을 토해냈다. “선생님, 제가 죽인 것 같아요. 조금만 더 빨리 병원에 데려갔다면….”

그녀의 떨리는 어깨 위로, 오늘 아침 출근길에 마주한 우리집 고양이의 모습이 겹쳐졌다. 올해로 13살. 사람으로 치면 칠순이 훌쩍 넘은 그 아이는 만성 신부전을 앓고 있다. 환자가 쏟아내는 ‘사형집행인의 죄책감(Executioner’s Guilt)’은 낯선 의학 용어가 아니었다. 그것은 매일 밤 18게이지 바늘을 아이의 등 가죽에 찔러 넣으며 내가 느끼는 감각과 쌍둥이처럼 닮아 있었다.

나는 짐짓 차분한 목소리로 물었다. “아이가 떠난 지 얼마나 되었나요?” 환자는 대답 대신 손수건으로 입을 틀어막았다. 펫로스 증후군은 단순한 슬픔이 아니다. 그것은 가족을 잃은 상실감이자, 사회적으로 충분히 위로받지 못하는 ‘박탈된 애도’의 고통이다. 세상은 “고작 동물 한 마리 죽은 것 가지고 유난이다”라고 말하지만, 나는 안다. 그 작은 생명이 차지하고 있던 공간이 우주보다 넓었다는 것을.

퇴근 후,그 아이의 등 가죽을 들어 올리고 수액 바늘을 꽂을 때 느껴지는 그 질긴 저항감. 아이가 움찔거릴 때마다 ’이게 과연 사랑일까, 아니면 나의 욕심일까‘라는 질문이 비수처럼 꽂힌다. 환자가 호소하는 “마지막 순간의 눈빛이 잊히지 않는다”는 말은, 곧 나에게 닥쳐올 미래의 예고편과도 같다. 이것은 의사인 내가 겪는 ‘예기애도(Anticipatory Grief)’다.

하지만 역설적이게도, 나의 이 아픔은 진료실에서 가장 강력한 치료제가 된다. 나는 교과서적인 위로 대신, 나의 고뇌를 담아 환자에게 말했다. “환자분, 슬픔에는 유통기한이 없습니다. 충분히 울고, 충분히 아파하셔도 됩니다.” 그녀의 눈동자가 흔들렸다. 나의 말은 의사의 처방이 아니라, 같은 길을 걷는 동료의 고백처럼 들렸을 것이다. 우리는 함께 ‘고양이 별’과 ‘무지개다리’ 건너편에 있을 아이들에 대해 이야기했다. 비과학적이라 비웃음을 살지라도, 상실의 구멍을 메우는 데에는 때로 동화 같은 믿음이 약물보다 효과적이다.

나는 그녀에게 숙제를 하나 내주었다. 떠난 아이의 털 뭉치와 장난감을 담은 ‘기억 상자’를 만드는 것. 그것은 아이를 잊기 위함이 아니라, 마음속 안전한 곳으로 이사시키는 작업이다. 아이는 사라진 것이 아니라, 우리의 내면으로 통합되는 것이니까.

진료를 마치고 환자가 나가는 뒷모습이 조금은 가벼워 보였다. 그녀를 치유하며 나 또한 치유받는다. 이것이 ‘상처 입은 치유자(Wounded Healer)’의 숙명일지도 모른다. 오늘 밤 집에 돌아가면 우리 아이를 안아주어야겠다. 녀석은 어제도 내일도 아닌, 오직 ‘오늘’만을 산다. 나 또한 다가올 이별을 미리 걱정하느라 오늘의 온기를 놓치지 않기로 다짐한다. 환자의 텅 빈 집에도, 나의 불안한 마음에도 언젠가는 새살이 돋아날 것이다. 사랑한 기억이 고통보다 더 오래 남을 것이기에.

최영훈 일산연세마음상담의원 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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