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석기 과학칼럼니스트

실생활, 특히 스포츠에서 가위바위보와 비슷한 상황을 흔히 볼 수 있다. A(선수 또는 팀)는 B에게 강하고 B는 C에게 강한데 C는 A에게 아주 약한 게 아니라 오히려 강한 경우다. 그 결과 절대 강자가 없어 토너먼트에서 조편성, 즉 운이 매우 중요하게 작용한다. 예를 들어 A와 B가 먼저 붙으면 A가 올라올 가능성이 커 C가 유리하다. 반면 B와 C가 4강에서 만나면 B가 올라와 A가 우승할 확률이 높다. 이처럼 물고 물리는 관계가 없다면 스포츠의 재미가 반감될 것이다.
자연계에서도 가위바위보와 비슷한 상황이 있나 보다. 연초 주간학술지 ‘사이언스’의 목차에서 본 한 논문의 제목에 ‘도마뱀 가위바위보 게임’이라는 문구가 있었기 때문이다. 제목이 특이해 무슨 내용인가 볼까 하다가 다른 일로 바빠 지나쳤다. 그런데 며칠 뒤 한 출판사에서 과학 신간 추천사를 부탁하며 보내준 원고를 읽다가 옆줄무늬도마뱀 수컷의 짝짓기 전략을 다룬 부분에서 문득 ‘이게 도마뱀 가위바위보 게임이가?’라는 생각이 들었다.
‘사이언스’ 사이트에 들어가 찾아보니 1월 1일자에 실린 논문의 주인공이 옆줄무늬도마뱀이 맞았다. 과학 기자와 칼럼니스트 생활을 20년 넘게 하는 동안 옆줄무늬도마뱀이라는 이름을 들어본 적이 없는데 불과 며칠 간격으로 학술지와 책에서 연달아 접하니 별일이다. 그런데 문득 의문이 들었다. 책에 소개될 정도로 알려진 내용을 ‘사이언스’처럼 저명한 학술지가 논문으로 다시 실어줄 리가 없기 때문이다.
알아보니 책에서는 옆줄무늬도마뱀의 가위바위보 게임을 밝힌 1996년 생태학 연구 결과를 소개한 것이고 이번 논문은 그 메커니즘을 규명한 유전학 연구 결과였다. 게다가 이번 연구를 주도한 미국 앰먼 코를 UC버클리 박사는 30년 전 연구를 한 배리 시네르보 UC산타크루즈 교수의 제자였다. 스승이 시작한 연구를 한 세대 만에 제자가 완성한 셈이다. 그렇다면 도마뱀의 가위바위보 게임이란 무엇인가.
옆줄무늬도마뱀 수컷은 특이하게도 목의 피부색이 주황, 파랑, 노랑 세 가지가 있다. 목이 주황색인 수컷은 힘이 세고 공격적이라 영역이 넓고 거느리는 암컷도 여럿이다. 목이 파란색인 수컷은 좁은 영역에서 암컷 한두 마리를 지키는 데 만족한다. 반면 목이 노란색인 수컷은 영역조차 없는 ‘독신’이다. 얼핏 생각하면 암컷을 가장 많이 차지한 주황색 수컷의 새끼가 많아 얼마 못 가 파란색 수컷이 사라지고 노란색 수컷은 바로 대가 끊길 것 같지만 그렇지 않으니까 가위바위보 게임이다. 즉 주황색 수컷(바위)이 노란색 수컷(보)에게 져서 셋의 균형이 무너지지 않는다. 그런데 노란색 수컷이 어떻게 주황색 수컷을 이길 수 있을까.

이번에 제자 코를은 수컷 목 색깔의 차이가 색소를 만드는 데 관여하는 SPR 유전자 때문이라는 사실을 밝혔다. 즉 주황색 수컷은 이 유전자가 변이형이라 주황색 색소를 만든다. SPR은 색소뿐 아니라 호르몬과 신경전달물질 합성에도 관여하는데, 변이형은 남성 호르몬인 테스토스테론을 많이 만들고 그 결과 힘이 세고 공격성이 크다.
한편 파란색 수컷과 노란색 수컷은 둘 다 정상 SPR 유전자였다. 따라서 이들의 차이는 환경적 요인으로 보이는데 아직 밝혀내지 못했다. 다만 영역을 확보하지 못하면 잠입 전략을 취하는 데 유리하게 파란 색소가 만들어지지 않는 것으로 추측하고 있다.
안타깝게도 시네르보 교수는 2021년 60세의 아까운 나이에 지병으로 세상을 떠났다. 만일 그가 살아있었다면 제자의 성공에 무척 기뻐하지 않았을까. 인생은 짧고 예술(과학)은 길다는 말이 떠오른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