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학세상] 최고의 마라토너는 ‘숨 고르기’ 선수

이난영 과학칼럼니스트

요 몇 주 동안 ‘극한 84’라는 마라톤 관련 예능 프로그램을 즐겨 보고 있다. 달리는 도중 코뿔소 같은 야생 동물과 마주치기도 하고, 대회 주제에 맞춰 머리부터 발끝까지 분장을 한 참가자들이 물 대신 포도주 한 모금으로 갈증을 달래는 모습은 ‘극한’이라는 이름에 걸맞은 흥미로운 광경이다. 하지만 나를 사로잡은 건 이런 독특한 경주 환경이나 예상 밖 이벤트들보다는 완주의 희열이다. 수없이 찾아오는 포기의 순간을 넘기고 끝내 결승점을 밟는 모습을 보면 마치 내가 그중 한 명이 된 것처럼 가슴이 뭉클해진다.

‘극한 84’에서 보면 출연자들이 훈련 중 자신의 심박수(BPM), 즉 심장이 1분 동안 몇 번이나 뛰는지를 확인하는 장면이 자주 등장한다. 마라톤이라는 극한의 도전에서 심박수는 단순한 숫자가 아니라, 내 몸이 현재 터지기 직전인지 아니면 안전한지를 알려주는 정직한 지표이기 때문이다.

하루 7000보에도 칭찬과 보상을 받는 도시인들에게 거의 열 배에 달하는 수치인 42.195km를 쉼 없이 달리는 건 상상조차 힘든 일이다. 마라톤이 극한의 고통을 견디며 자신의 한계를 넘는 인내와 의지의 표상으로 여겨지는 이유다. 때문인지 많은 이들이 삶의 고비에서 마음을 다잡기 위해 운동화 끈을 묶는다. 그런데 과학의 시선으로 보면, 마라톤의 진짜 미학은 아이러니컬하게도 ‘달림’보다 ‘쉼’, 좀 더 정확히 말해 숨을 고르는 순간 속에 있다.

‘극한 84’에서 보면 출연자들이 훈련 중 자신의 심박수(BPM), 즉 심장이 1분 동안 몇 번이나 뛰는지를 확인하는 장면이 자주 등장한다. 마라톤이라는 극한의 도전에서 심박수는 단순한 숫자가 아니라, 내 몸이 현재 터지기 직전인지 아니면 안전한지를 알려주는 정직한 지표이기 때문이다.

심박수는 우리가 숨을 들이마시고 내뱉을 때마다 미세하게 변한다. 숨을 들이마실 때(들숨)는 교감신경이 활성화되어 심박수가 살짝 올라가고, 숨을 내뱉을 때(날숨)는 부교감신경이 작동하며 심박수가 낮아진다. 이를 ‘호흡성 부정맥’이라 부르는데, 생명을 유지하기 위한 자연스럽고 유연한 신체 반응이다.

마라톤처럼 긴 거리를 달리면 몸은 더 많은 에너지를 만들기 위해 산소를 갈구하고, 심장은 산소를 실어 나르기 위해 점점 더 빨리 뛴다. 호흡 역시 덩달아 가빠지는데, 이를 어떻게 다스리는지에 따라 42.195km라는 긴 거리의 감당 여부가 결정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우리는 흔히 힘차게 나아가는 모습을 보고 ‘말처럼 달린다’고 표현하지만, 사실 말은 인간처럼 계속해서 달리지 않는다. 인간과 달리 말은 숨이 가쁘면 멈춰야만 하는 숙명을 지녔다. 말은 구조상 입으로 숨을 쉴 수 없는 ‘의무적 코 호흡자’ 이기 때문이다. 좁은 콧구멍으로만 산소를 흡입해야 하니 기도 저항이 매우 크다.

더 큰 제약은 말의 네 발 보행 구조에 있다. 말이 달리면 내장 기관이 앞뒤로 심하게 흔들리며 폐를 누르는 횡격막을 피스톤처럼 압박한다. 이로 인해 한 걸음을 뗄 때 무조건 숨을 한 번 내뱉는 ‘보행-호흡 결합(LRC)’ 현상이 발생한다. 말은 숨이 차서 천천히 쉬고 싶어도 발이 움직이는 한 호흡을 조절할 수 없는 ‘기계적 제약’에 갇혀 있는 셈이다.

반면, 직립 보행을 하는 인간은 축복받은 러너이다. 횡격막이 복부의 압박으로부터 자유롭기 때문에 필요에 따라 호흡 리듬을 마음대로 바꿀 수 있는 ‘호흡 유연성’을 가졌다. 천천히 달릴 때는 세 걸음에 한 번(3:1), 속도를 낼 때는 두 걸음에 한 번(2:1) 숨을 쉬는 식이다. 또한 입으로도 숨을 쉴 수 있어 강도가 높아지면 저항 없이 다량의 산소를 받아들인다.

하지만 이 유연성은 우리에게 선택지를 하나 더 던져준다. 터질 듯한 숨을 그대로 몰아쉬며 버틸 것인가, 아니면 의식적으로 호흡 속도를 늦출 것인가 하는 문제다. 많은 러너가 30km 지점에서 신체적·정신적 한계인 ‘사점(Dead Point)’이라는 벽을 만난다. 이때 뇌는 “이제 곧 쓰러질 테니 당장 멈추라”는 강력한 경고를 보낸다. 흥미롭게도 이때 의도적으로 숨을 천천히 쉬는 것만으로도 이 경고 신호의 강도를 낮출 수 있다(https://www.nature.com/articles/s42003-024-06642-3).

의식적으로 숨을 깊고 느리게 고르면 불안을 담당하는 ‘편도체’가 안정될 뿐만 아니라, 심박 변이도(HRV)도 좋아진다. 심박 변이도의 변동성이 풍부해진다는 것은 심장이 상황에 맞춰 박자를 조절할 ‘여유’를 되찾았다는 뜻이며, 우리 몸이 다시 ‘회복 모드’로 들어갔음을 의미한다.

결국 마라톤의 진짜 미학은 죽을 힘을 다해 뛰는 ‘오기’가 아니라, 거칠어진 숨을 부드럽게 가다듬는 ‘정지의 기술’에 있다. 결승선에서 흘리는 눈물은 한계를 넘어선 고통의 대가이기도 하지만, 스스로 숨을 다스려 몸과 마음을 회복시킨 자만이 누릴 수 있는 평온의 상징일 것이다. 질주하는 세상 속에서 나만의 숨을 고를 줄 아는 지혜, 그것이 마라톤이 우리에게 건네는 진짜 위로라는 생각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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