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논현논단] ‘역대 최대 수출’서 읽는 한국경제 희망

권오용 한국가이드스타 상임이사

고비마다 버팀목 돼온 성장디딤돌
시장다변화로 사상 최고 실적 올려
정치도 K프리미엄 시대 열었으면

우리나라에서 수출은 경제지표 이상의 의미를 가진다. 외환위기 속 재계가 주창했던 국제수지 500억 달러 흑자론은 만연했던 열패감을 불식시키고 국민적 자신을 회복시켰다. 기업들이 총력을 기울여 수출하고 국민들이 ‘금 모으기’로 힘을 보태자 우리는 외환위기를 졸업했다. 상실했던 경제주권도 되찾아 왔다.

오일쇼크, 금융위기, 코로나 등 고비마다 수출은 돌파구였다. 그래서 한국경제는 수출로 먹고산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국내총생산(GDP) 대비 수출비율은 2024년 기준 36.5%로 미국(7.1%), 일본(17.6%), 중국(19.1%), 영국(14.1%)에 비해 압도적으로 높다. 특히 반도체, 자동차 등 고부가가치 산업을 앞세워 국민소득을 높이며 선진국 도약의 마중물 노릇을 했다. 그래서 역대 모든 정부는 진영논리를 떠나 수출만큼은 그 중요성을 인식하고 총력지원체제를 구축해 줬다. 참여정부가 시작한 한미 자유무역협정(FTA)을 이명박 정부에서 마무리 지은 것이 대표적이다.

2025년 우리나라 수출이 사상 처음으로 7000억 달러를 넘어설 전망이다. 1964년에 1억 달러를 돌파했으니 60년 만에 7000배가 넘는 경이로운 성장을 했다. 미국 도널드 트럼프 행정부의 고율관세부과, 글로벌 공급망 재편, 환율 변동성 등 온갖 악재 속에서도 한국 경제의 든든한 버팀목 역할을 해준 셈이다.

특히 올해의 성장세는 1분기 역성장(-2.3%)에도 불구하고 2분기부터 반등이 돋보였다. 수출시장 다변화는 수출 회복세를 견인했다. 올해 1~10월 중 한국 수출이 증가한 국가는 135개국으로 지난해(123개국) 대비 많이 늘어났다. 미국, 중국, 일본 일변도에서 아세안, 유럽연합(EU), 대만 등으로 다변화가 확산됐다. 중소기업 주도의 회복국면도 향후 한국 경제를 읽는 희망이 될 수 있다. 올해 1~3분기 중 총수출이 2.2% 늘어나는 동안 중소기업 수출은 6.0% 증가하며 두 배 이상 빠른 속도로 수출을 견인했다. 무엇보다 인공지능(AI), 반도체(HBM), 선박(LNG 운반선) 등 고부가가치 제품이 축적된 기술력과 생산역량에 힘입어 수출주력으로 자리매김했다.

세계화된 수출 상품의 하나로 김(seaweed)이 있다. 11월 20일 기준 김 수출이 10억 달러를 돌파했는데 1억 달러 수출이 2010년이니 15년 만에 10배가 됐다. 1970년대만 해도 우리 김의 수출시장은 일본(90%)이었다. 그새 최대 수출국이 미국으로 바뀌었고 수출 대상국도 120개국을 넘어섰다. 한국은 세계 김 수출 시장의 70%를 장악한 절대강자다. 그래서 비슷한 시장점유율을 가진 D램 반도체에 빗대 ‘검은 반도체’라고도 불린다.

이렇게 되기까지 기울인 노력은 상상을 초월한다. 서양인이 싫어하니까 안 돼서라는 고정관념에서 탈피해 짠맛을 덜어내고 아몬드, 카레, 바비큐 등으로 맛을 현지화했다. 김스낵을 개발해 고단백 저칼로리 시장을 공략했다. 때마침 불기 시작한 ‘케데헌’ 같은 K컬처도 한몫했다. 우연은 없었다.

한국에서 생산하니까 싸구려라는 K디스카운트에서, 한국에서 생산됐으니 더 값을 쳐줘야 한다는 K프리미엄 시대를 활짝 연 것도 수출이다. 한국에서 만들어지는 것은 뭣이든 세계화될 수 있다는 가능성을 열어 준 것도 수출이다. 경제뿐 아니라 문화도, 정치도, 사회도 우리는 성장과정에서 수출에 너무나 많은 신세를 져 왔다.

호재는 만발하지만 내년 수출을 마냥 장밋빛으로 볼 수만은 없다. 올해 수출 증가분의 대부분을 반도체가 채웠다. 비(非)반도체 수출은 같은 기간 1.5% 줄었다. 전통적 주력 수출 제품이었던 석유화학, 철강, 이차전지 등은 일제히 감소하며 체력의 약세를 드러냈다. AI 혁명은 메가트렌드이지만 닷컴 버블과 같은 급격한 변동은 언제든 재연될 수 있고 반도체에 대한 과다한 의존은 양날의 칼로 작용할 수도 있다. 내년부터 본격화할 2000억 달러 대미 직접투자도 우리 수출에 어떤 영향을 미칠지 알 수 없는 상태로 불확실성을 가중시키고 있다. 그래서 내년 수출은 7000억 달러에 미치지 못할 것이라는 전망도 나오고 있다.

그러나 전망은 전망이고 우리는 언제나 수출로 일을 내고, 먹고 살았다. 외환위기 당시 전경련(현 한국경제인협회)은 500억 달러 국제수지 흑자론을 주창하면서 밖에 나가서 보면 우리나라는 돌멩이도 수출경쟁력이 있다며 각고의 노력을 기울였다. 그리고 기껏해야 50억 달러에 불과할 거라는 정부 일각의 냉소를 일축하며 위기를 극복해 냈다. 우리는 이런 저력을 가지고 있다. 연초 마이너스에서 출발해 보기 좋게 역대 최고를 기록한 수출을 보며 한국 경제에 새삼 희망을 가지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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