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대 행정대학원 명예교수/공법학
극한대결·혐오정치 청산이 급선무
‘정치적 불리’ 감당할 진심 봤으면

언제일까 했는데 이제 드디어 윤곽을 드러냈다. 지난 15일 정부는 “시민사회·정당과 함께 사회적 개혁 과제를 상시적으로 논의하겠다”며 국무총리 직속으로 ‘사회대개혁위원회’를 출범시켰다. 노조, 진보 성향 시민단체와 군소 정당 관계자들이 대거 참여한 이 기구는 이른바 ‘광장 시민’의 열망을 담아 새로운 대한민국의 길을 열자는 약속을 이행하는 차원에서 만들어졌다. 이보다 앞서 이재명 대통령은 12월 9일 국무회의에서 내년부터 규제·금융·공공·연금·교육·노동 6대 분야 개혁에 본격 착수하겠다는 뜻을 밝혔다. 그러나 정부의 6대 분야 개혁 시동과 사회대개혁위원회의 발족은 언론이나 대중들로부터 별반 관심을 끌지는 못했다. 일부 보수언론에서 반미 골수 재야인사를 수장으로 내세운 것을 쏘아보았을 뿐이다. 이 기구는 ‘갑툭튀’는 아니다. 대선 한 달 전 이재명 후보를 당시 야권의 단일 ‘광장 후보’로 정하고 사회대개혁위를 만들어 사회대개혁을 추진한다는 공동선언이 있었다.
사회대개혁위원회의 7대 분야 ‘대개혁’과 정부가 시동을 건 6대 개혁이 어떻게 연결되는지는 불분명하다. 사회대개혁은 6대 개혁과는 사뭇 결이 다르다. 광장 시민의 요구에 응답하는 일이라며 긍정하는 시각도 있지만 그간 음양으로 드러난 정권 주도세력의 행태나 전후 맥락을 감안하면 기대보다는 걱정이 더 앞선다. 무엇보다 크게 우려되는 점은 문제의식과 의제 설정의 편향성과 당파성이다. 집권세력이 나라의 미래, 개혁의 목표와 대상 등 의제설정의 주도권을 행사하는 것을 나무랄 수는 없다. 국정목표의 변침만큼 정권교체를 실감케 하는 게 또 있을까.
하지만 정권교체는 어쩔 수 없다 해도 사회대개혁이라면 그건 또 다른 문제다. 전격전으로 밀린 숙제 해치우듯 할 수는 없는 일이다. 사회개조니 제2의 건국이니 하며 역대 정권이 깃대를 내걸었던 시도들이 실패했던 것은 결국 국민의 마음을 얻지 못했기 때문이다. 인기 위주 포퓰리즘 이야기가 아니다. ‘광장 민의’라지만 그 전위세력들의 요구와 촛불과 빛의 혁명이라 불린 광장 행동에 대한 다수 국민의 요구 사이에는 큰 거리가 있다. 이를테면 불법적 비상계엄에 반대하지만 지난 몇 년간 한국 민주주의를 망가트린 극한대결의 혐오정치를 뜯어 고치지 않으면 그 어떤 개혁도 제대로 이뤄질 수 없다고 믿는 사람들이 많다. 선거제도를 포함한 정치개혁이 더 급선무라는 얘기다.
하물며 개혁의 세부 각론에 들어가면 문제는 훨씬 더 어렵고 복잡해진다. 국민 대다수의 공감이 없이는 ‘가죽을 벗기는’ 고통을 감내하라 요구할 수 없다. 더욱이 추호라도 당파성이나 당리당략이 개입되는 기미라도 보이면 저항의 불길이 걷잡을 수 없게 번질 것이다. 사회대개혁위원회는 자문기구라고 하지만 상시 자문이어서 그 상징적 의미는 말할 것도 없고 실질적으로도 큰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다.
정치적 홍위병 노릇을 할지도 모른다는 우려도 나온다. 위원회의 구성이나 출범 전후에 나타난 정치적 제스처를 보면 시작부터 뭔가 잘못됐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다. 사회대개혁이란 명분이 무색하게 편파성이 두드러진다. 국민에게 그 진심이 가 닿도록 해야 하는데 사회대개혁위원회 주도의 소통 플랫폼으로 가능할까. 당파성과 진영사고 때문에 일을 그르칠 공산이 크다. 선택적 정의가 아니라 더 큰 숨은 그림, 민의를 찾아 올바르게 담아낼 수 있는 그릇이 필요하다.
정부가 공언한 6대 개혁은 또 다른 고역(苦役)이다. 이 대통령은 “저항이나 갈등 없는 개혁은 개혁이 아니다. 이런 일을 해내지 못하면 대체 뭘 할 수 있겠느냐”고 하면서 개혁 의지를 다졌다고 한다. 그러나 이 정부가 과연 혁명보다 어렵다는 개혁에 시동을 건 것인지 아니면 이 또한 지나갈 면피의 몸짓으로 끝날지는 미지수다. 연금개혁이나 노동개혁, 공공개혁 등 구조개혁은 자신의 지지층이 많은 사람들에게 메스를 대야 하는 일인데, 줄줄이 이어지는 선거정국에서 ‘표 떨어지는 선택’을 할 수 있을까.
예를 들어 문재인 정권은 권력기관 개혁에 비해 구조개혁에 소극적이었다는 평가를 받았지만 그 덕에 임기 말까지 높은 지지율을 유지했다. 그 정략적 선택의 간지(奸智)를 상찬해야 할까. 정치적이라고 하면 역대 어느 정권보다도 더 격하게 정치적인 현 정권이 쾌도난마 그 가시덩굴을 헤치며 작품을 만들어 낼 수 있으리라 기대할 수 있을까. 혹 공약이라고 다 지켜야 하는 건 아니라고 변명하는 건 아닐까. 진심이면 좋겠다. 아니 이 대통령의 진심을 믿고 싶다. 6대 개혁만은 정치적으로 불리하거나 부담이 되더라도 초심을 잃지 않고 장기적 시야를 가지고 꿋꿋이 무소의 뿔처럼 나아가기를 바란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