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정원 쉼표힐링팜 대표

그 이면에는 더 심각한 문제가 있다. 농촌은 지금 의사 한 명을 구하지 못해 의료 기능이 멈추는 지역이 되고 있다. 보건지소와 공공의료기관조차 상시 의료 인력을 확보하지 못해 진료일이 제한되거나 특정 과목이 아예 사라지는 일이 잦다. 불과 두 해 전 전국지방의료원연합회장이 “지금 당장 지방 의료기관이 지역 책임의료기관으로서 역할을 하려면 지방의료원 35곳에 의사 1400명이 필요하다고 한다. 하지만 현실은 14명 구하기도 힘들다”고 털어놓은 게 과장이 아니다.
지방자치단체가 높은 연봉과 파격적인 조건을 제시해도 농촌으로 내려오려는 의사를 찾기 어려운 것이 현실이다. 의사 한 명이 떠나면 그 여파는 곧바로 생활의 불안으로 이어진다. 만성질환 관리가 중단되고, 응급 상황에서는 골든타임이 거리 앞에서 무너진다.
농촌 고령화로 의료 수요는 늘어나지만, 의료 인력은 도시로 더 빠르게 집중되는 역설이 반복된다. 이는 개인의 선택 문제가 아니라, 의료 전달체계가 지역 현실을 반영하지 못한 구조적 실패다.
우리는 흔히 ‘좋은 병원은 대도시에 있다’고 말한다. 그러나 농촌에 대형병원을 그대로 옮겨오는 방식은 해답이 될 수 없다. 인구 규모도, 질병 구조도, 생활 반경도 다른 지역에 도시형 의료 모델을 그대로 적용하는 것은 지속 가능하지 않다.
농촌에 필요한 의료는 규모가 아니라 접근성과 연속성이다. 해외에서는 이 문제를 다르게 접근한다. 북유럽 국가들은 의료를 시설이 아닌 네트워크로 설계한다. 의사·간호사·돌봄 인력이 팀을 이루고, 방문진료와 원격의료를 결합해 의사 한 명에게 모든 부담이 집중되지 않도록 한다. 일본 역시 고령화가 심각한 농촌 지역에서 의료·복지·돌봄을 통합한 지역포괄케어 시스템으로 의료 공백을 최소화해 왔다.
이제 우리도 질문을 바꿔야 한다. 농촌에 의사를 ‘파견’할 것인가, 아니면 의료가 지역에 머물 수 있는 구조를 만들 것인가. 단기 인력 충원이나 응급 처방으로는 한계가 분명하다.
주거, 교육, 돌봄, 생활 인프라가 함께 작동하지 않는 한 어떤 의사도 농촌에 오래 남을 수 없다. 농촌 의료복지는 복지의 말단이 아니다. 그것은 지역이 존속할 수 있는 최소 조건이며, 고령사회로 향하는 한국 사회 전체의 미래를 가늠하는 기준이다.
새벽 첫차에 오르는 어르신들의 모습은 개인의 선택이 아니라 사회가 만든 이동이다. 병원이 어디에 있느냐의 문제가 아니다. 의사가 어디에 있느냐만의 문제도 아니다. 의료가 삶의 곁에 머물 수 있는 구조가 있는가의 문제다. 이제 농촌 의료를 다시 설계해야 할 시간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