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해물질 장기간 노출로 발병 추단"

29년 동안 화재현장에 출동한 소방관이 급성 백혈병을 앓게 된 것은 공무로 인한 질병이라며 인사혁신처의 요양 불승인 처분을 취소해야 한다는 법원 판단이 나왔다.
14일 법조계에 따르면 서울행정법원 행정8단독 문지용 판사는 최근 소방공무원 A 씨가 인사혁신처장을 상대로 낸 공무상요양불승인처분취소 소송에서 원고 승소 판결을 내렸다.
판결문에 따르면 A 씨는 1990년대 초 소방공무원으로 임용돼 약 29년간 근무했으며, 2021년 급성 골수성 백혈병 진단을 받았다. 그는 공무로 인한 질병이라며 요양급여를 신청했지만, 인사혁신처는 "2년 2개월 동안 화재진압·구조 업무를 수행했을 뿐이고, 그 시점으로부터 약 22년 뒤 발병한 만큼 상당인과관계를 인정하기 어렵다"며 불승인 처분을 내렸다.
이에 A 씨는 "29년간 소방공무원으로 일하며 개인보호장구를 충분히 지급받지 못한 채 화재현장에 출동해 유해물질에 지속적으로 노출됐다"고 반박하며 소송을 제기했다. 그는 부서장·당직책임관·소방서장으로 근무하며 현장을 지휘한 시기 역시 유해물질 노출 기간에 포함돼야 한다고 주장했다. 백혈병 관련 병력이나 가족력도 없다고 했다.
법원은 A 씨의 주장을 받아들였다. 재판부는 우선 소방본부가 산정한 A 씨의 화재현장 출동 건수가 1047건에 이른다는 점에 주목했다. 이어 "산정 방식에 다소 과다함이 있다 하더라도 여러 사정을 종합하면 A 씨가 적어도 수백 건 이상의 화재현장에 출동한 사실은 인정된다"고 판단했다.
또 현장 지휘관도 일선 대원들과 마찬가지로 화재 중심부와 근접한 위치에서 업무를 수행하며 보호장비 착용이 어려운 구조라는 점을 인정했다. 실제 동료 소방공무원들이 "현장 지휘관은 통신기기로 현장 지휘를 하고 상부기관에 보고를 해야 해 호흡기 보호장구를 착용할 수 없어 현장에서 유해물질에 노출될 수밖에 없다"고 진술한 점 등을 고려해 "A 씨가 현장 지휘를 하면서 상당한 양의 유해물질에 노출됐을 것으로 보인다"고 봤다.
재판부는 A 씨에게 백혈병 관련 질환 병력이나 가족력·유전 요인이 전혀 없고, 직업환경의학 전문의 역시 "약 29년간 화재 진압 업무에 종사했다면 공무와 백혈병 사이에 업무관련성이 있다고 볼 수 있다"는 의견을 제시한 점도 함께 고려했다.
그러면서 "A 씨가 소방공무원으로 근무하면서 백혈병 발병 원인이 되는 유해물질에 장기간 노출된 결과 백혈병이 발생했다고 추단할 수 있다"며 "공무와 질병 사이의 상당인과관계는 규범적으로 인정되면 충분하며, 의학적·자연과학적으로 명백히 증명돼야 하는 것은 아니다"라고 밝혔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