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논현광장_안병억의 유러피언 드림] 돈 떨어진 우크라, 불투명한 對러 전쟁

대구대 군사학과 교수·국제정치학

美 경제지원 중단, 유럽은 저성장
대출받아 전쟁지원에 EU내 논란
합리적 종전 모색에 각국 ‘골머리’

“미국이 우크라이나 및 유럽과 게임을 벌인다. 우크라이나에게 손실을 끼치려 한다.”(프리드리히 메르츠 독일 총리) “미국이 우크라이나를 배신할 수 있다.”(에마뉘엘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

지난달 말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러시아에 지나치게 유리한 우크라이나 평화안을 제시했다. 유럽은 침략자가 점령한 영토를 인정해주며 전후 우크라이나에 대한 안전보장도 미흡한 평화안을 반대하면서 수정안을 마련 중이다. 지난 1일 독일과 프랑스 수반은 전화통화에서 대책을 논의했는데 첫 머리 인용처럼 두 정상은 동맹국 미국 불신을 그대로 드러냈다. 게다가 우크라이나는 내년 2월이면 돈이 떨어져 유럽의 지원이 없으면 더 이상 러시아에 맞서 싸울 수가 없다. 저성장에 시름 중인 유럽은 여러 방안을 논의중이지만 대책 마련이 쉽지 않다.

영국 주간지 이코노미스트는 지난달 각국의 우크라이나 지원 현황을 집계했다. 2022년 2월 24일 전쟁 발발부터 올해 10월 31까지 유럽연합(EU) 27개 회원국과 영국은 2060억 달러어치(약 290여조 원)의 무기와 경제적 지원을 제공했다. 미국은 1330억 달러 지원에 그쳤다. 트럼프 행정부는 지난 2월부터 경제적 지원을 중단했고 취임 전 바이든 행정부가 약속한 무기만 지원한다. 우크라이나가 전쟁 수행에 반드시 필요한 러시아 관련 핵심 정보조차 2월 말 백악관에서 트럼프와 젤렌스키 대통령이 공개설전을 벌인 후 한동안 주지 않았다.

미국과 유럽의 무기와 경제지원으로 우크라이나는 전쟁을 벌여왔는데 1년에 약 1000억~1100억 달러가 전쟁 수행에 들어갔다. 우크라이나 명목 국내총생산(GDP)의 절반 정도다. 이코노미스트지는 내년부터 4년간 전쟁 지속에 들어갈 돈을 3900억 달러로 추산했다. 미국을 제외한 31개 나토(북대서양조약기구) 회원국들이 경제력에 비례해 분담하면 국내총생산의 0.4%를 지원하는 셈이다. 미국이 더 이상 경제 및 무기를 지원하지 않을 것으로 보여 나머지 회원국들은 이전보다 두 배의 지원이 필요하다. 침략자를 응징하지 않고 보상하는 식으로 전쟁이 종결된다면 유럽은 안보위협에 더 노출될 수 있다며 계속해서 우크라이나를 지원해야 한다고 이코노미스트는 주장했다.

유럽은 지난해 0.9%에 이어 올해 1.2%, 내년에도 1% 안팎의 저성장이 예상된다. 저성장 속에서 복지 등에 쓸 돈은 많아지기 때문에 회원국의 추가 지원이 아닌 동결된 러시아 자산을 담보로 우크라이나에 지원해주는 방안이 제시됐다. 지난 3일 EU 집행위원회는 앞으로 2년간 900억 유로(약 155조 원) 지원안을 발표했다. 유럽에 동결된 러시아 자산을 담보로 대출을 받아 지원하는 ‘배상금 대출’ 방식이다. 러시아가 불법적인 침략전쟁을 벌인 배상금을 주면, 우크라이나가 이 돈으로 EU에 대출금을 갚도록 하겠다는 것이다.

유럽과 선진 7개국(G7) 회원국에 총 2800억 유로의 러시아 자산이 동결됐다. 동결자산 중 2100억 유로가 유럽에 묶여 있다. 이제까지 동결된 자산에 대한 연이자 27억 유로를 회원국들의 지원 이외에 추가로 우크라이나에 제공했는데 턱없이 부족하다. 유럽에 동결된 러시아 자산 2100억 유로 중 대부분인 1940억 유로(올 6월 기준)가 벨기에에 있는 중앙예탁기관인 유로클리어에 묶여 있다. 러시아는 동결자산 이자 지급조차 절도라며 강력하게 규탄했는데 이를 담보로 한 대출은 국제법 위반이라며 유럽을 맹비난했다. 벨기에는 집행위원회의 제안이 자국에 대한 러시아의 보복 등에 대처가 부족하다며 계속해서 반대해 왔다.

유럽중앙은행(ECB)조차 ‘배상금 대출’안이 단일화폐 유로화의 국제적 위상을 훼손할 수 있다고 경고했다. 동결된 러시아 자산의 3분의 2가 유로화인데 배상금 대출은 이를 처분하는 성격이다. 동결 자산의 처분은 전례가 별로 없기 때문에 유로화 보유를 꺼릴 수 있다는 것. ECB는 EU 예산을 담보로 국제자금시장에서 대출하는 안을 제안했다.

오는 18일 EU 정상회담(유럽이사회)에서 배상금 대출 여부가 결정될 가능성이 높다. 미국 일방의 평화안 추진에 유럽마저 우크라이나 지원에 허덕인다. 지속가능한 정의로운 종전은 점점 더 어려워지고 있다.

‘하룻밤에 읽는 독일사’ 저자

팟캐스트 ‘안쌤의 유로톡’ 제작·진행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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