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논현논단] ‘규제의 역설’ 위에 싹튼 쿠팡사태

김영규 고려대 경영학과 교수

대형마트 규제 타고 이커머스 장악
자율 보장하되 잘못 강력 처벌하고
경제 체질 개선하는 계기로 삼아야

최근 몇 주 동안 쿠팡에 대한 논란이 뜨거웠다. 처음은 쿠팡의 새벽배송 금지에 관한 사회적 논의가 시작되면서였다. 새벽에 일하는 것이 건강 및 안전에 부정적 영향을 주기 때문에 이를 금지해야 한다는 일각의 주장에 의해 시작됐다. 시간이 지나며 새벽배송 금지를 반대하는 여론이 힘을 얻었는데, 자녀를 둔 맞벌이부부, 자영업자 등 새벽배송에 의존하는 사람들이 많다는 사실이 증명되었다.

그리고 최근 대규모 고객정보 유출이 있었음이 밝혀졌다. 이 과정에서 미흡하고 수동적인 초기 대응에 대한 질타가 이어졌으며, 직원이 이미 퇴사한 상황에서도 고객 정보에 대한 접근이 가능했고, 전반적인 보안 수준이 부실했음도 드러났다. 이에 대한 우려와 실망으로 탈퇴하려고 하는 고객들이 겪는 어려움도 논란이 되고 있다. 그럼에도 탈퇴가 예상보다는 큰 규모로 이루어지지 않고 있다. 대체되기 어려운 서비스를 제공한다는 것은 조직의 성과와 생존에 가장 중요한 요인인데 부정적 이슈 속에서도 쿠팡의 대체 불가능한 지위를 증명하고 있는 것 같았다.

쿠팡 새벽배송이 우리 사회의 필수적 서비스가 될 수 있었던 배경에는 로켓배송 실시 및 이를 위한 정직원 고용 등 회사의 전략적 의사결정이 있었지만, 대형마트의 심야영업 금지 같은 규제 역시 쿠팡이 새벽배송 시장에서 거의 독점적인 지위를 얻는 데 도움이 된 측면이 있다.

물론 대형마트에 대한 규제는 나름대로 그 필요성이 인정된 부분이 있었겠지만, 이처럼 어떤 규제나 정책은 늘 의도하지 않은 결과를 낳을 수 있다. 따라서 시장의 결과에 지나치게 큰 영향을 초래하는 규제가 아닌지 검증이 필요하다. 한번 만들어지고 시행된 규제를 없애기는 매우 어렵기 때문이다.

이번 과정에서 쿠팡은 최고 수준의 정보보안 인증을 받았다는 사실도 알려졌다. 보안 강화를 목적으로 한 인증제도가 문제 발생시 면죄부로 사용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었다. 쿠팡이 다수의 전직 관료 및 법조인들을 영입했다는 것도 알려졌다. 소액의 선물을 주고 받는 것까지 처벌하기로 한 김영란법이 법에만 저촉되지 않으면 이해충돌이 아니라는 도덕적 면죄부가 될 수 있음도 보여주었다. 규제 강화가 오히려 윤리의식을 후퇴시킬 수 있다는 것을 역설을 보여주는 사례이다.

이번 여름 북유럽에 다녀오면서 느낀 교훈이 있다. 북유럽사람들의 앞선 시민의식은 그들이 환경을 보호하고 질서를 잘 지키게 하는 원동력이라고 들어왔다. 물론 그런 면도 있었다. 사람들은 무료인 공용주차구역에서 각자의 개성이 담긴 종이시계판에 언제까지 주차할지를 표시하고 그 시간을 잘 지킨다. 그러나 그 이면에는 표시한 시간을 초과할 떼 감당해야 할 비싼 주차위반 과태료가 있었다. 선진 시민의식도 중요하지만 잘못된 행동을 할 때는 확실한 손해가 있다는 것 역시 올바른 행동을 하게 하는 중요한 인센티브가 될 수 있다.

예전보다 약해졌다고 하지만 강력한 반독점과 소비자 권익보호를 최우선으로 하는 미국에서는 제약을 최소화하는 대신 문제가 발생했을 때 강력한 경제적 처벌이 따른다. 반면 우리나라에서는 다양한 규제로 자유로운 경제활동에 제약은 많지만, 문제가 생겼을 때 경제적 손해는 상대적으로 크지 않은 것으로 인식하고 있다.

길어진 평균수명에 전세 사기나 주가조작 등 경제사범들에게 가해지는 적은 벌금을 보면 몇 년만 참으면 잘 살 수 있다는 잘못된 환상을 심어줄 수 있다. 지나치게 넓은 범위를 규제하기보다 오히려 자율을 보장하되, 선을 넘을 때 강력한 경제적 책임을 묻는 법의 제정과 집행이 필요한 이유이다. 이번 사태로 다수의 전직 관료가 쿠팡을 위해 일하고 있다는 점도 환기되었는데, 법에 대한 해석이나 이에 따른 경제적 징벌 수준의 편차가 커질수록 이해충돌에 반하는 관행이 많아질 수밖에 없다.

어려운 이웃을 돌아보게 되는 연말이다. 우리가 내는 기부금이 투명하게 사용된다는 것을 믿을 수 있다면 아마도 더 많은 도움의 손길이 있을 것이다. 기부기관의 투명성을 담보하기 위해 블록체인기술이 활용되고 있으며 이는 상당히 기대되는 분야이기도 하다. 누가 기부하고 누구에게 전달했는지 개인을 특정할 수는 없지만, 자금이 제대로 된 경로로 사용되었는지 투명하게 확인이 가능하다는 것이 바로 이 기술의 강점이다.

이렇게 정책 결정, 법 집행, 그리고 자금흐름과 같은 중요 과정의 투명성을 높일 수 있는 기술을 적극적으로 활용하는 한편, 경제적 피해에 대한 강력한 제재가 따라야 우리 경제의 체질을 개선하고 잘못된 관행을 바로잡을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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