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소유의 시대, 되돌릴 수 없는 한 입 사이에서
이 현상을 단순한 식욕, 혹은 탐욕적이고 감각적인 충동 정도로 해석하고 싶어질 수 있다. 그러나 문화는 어떤 대상을 잃기 전에는 집착하지 않는다. 먹는다는 행위의 스펙터클은 풍요의 순간보단 소외의 시기에 나타난다. 소비와 소유라는 고대적인 권리가 소실되고 있는 지금, 우리는 타인의 섭취에 더욱 집착하게 된다.
디지털 미디어의 부상과 함께 소유의 개념은 열람으로 변질되었다. 우리 삶의 물질적 기록물, 음악과 책, 영화와 기억은 더 이상 책상의 서랍 속에 머무르지 않는다. 우리는 페이지가 마모되는 책 대신 불변한(것처럼 보이는) 디지털 텍스트를 대여한다. 먼지가 소복히 쌓인 CD 대신 손바닥 안에서 음악을 스트리밍한다. 레코드판이나 DVD, 귀퉁이가 닳은 책이 가지던 물질적 영속성은 플랫폼의 정책 변화나 출판사의 판권 철회에 따라 사라질 수 있는 라이선스로 대체되었다. 우리가 소유할 수 있던 가치는 로그인과 서비스 약관 뒤에서 떠다닌다. 한때 ‘내 것’이었던 것은 이제 단지 ‘이용 가능’할 뿐이며, 매달의 결제와 조용한 기업 인프라에 의존한다. 좋아하던 영화 한 편이 한 장의 계약 만료로 사라질 수 있고, 플레이리스트는 법적 공백 속으로 증발할 수 있다. 읽고, 듣고, 심지어 기억하는 일조차 이제는 허가를 필요로 한다. 가장 친밀한 문화 경험조차 조건부가 되었다. 비밀번호 하나를 잃거나 카드가 만료되면 우리의 ‘서랍’은 무너진다.
현재의 ‘구독형 사회’는 우리에게 영구적 임대 상태로 존재하는 법을 가르쳤다. 우리는 인터페이스를 통해 세계를 빌리고 그 연결이 유지되기를 바라는 수밖에 없다. 그 효과는 미묘하지만 깊다. 소유가 없다면 축적도 없다. 이야기와 경험의 계승도 없다. 모든 것은 다시 또 획득되어야 한다. 소비는 완결이 아니라 반복으로 존재한다.
인공지능은 이 변화를 더욱 가속한다. AI를 설명하는 언어부터가 모든 것을 말해준다. 우리는 모델에게 정보를 “먹여서” AI를 발전시킨다. AI는 방대한 대사율의 투입을 요구한다. 에너지, 노동, 물, 광물, 그리고 가장 보이지 않지만 핵심이 되는 인간의 표현, 다시 말해 우리의 삶의 흔적을 삼키며 성장한다. 그 대가로 AI는 텍스트, 이미지, 조언, 답변, 순간적인 정합성 등의 창조의 환영을 되돌려준다.
그러나 이 시스템이 만들어내는 것 중 진짜로 우리의 것은 없다. AI가 우리의 그림체로 이미지를 만들거나 우리의 어투로 문장을 생산해도 우리는 이전 세대가 손글씨 편지나 회화에 부여했던 종류의 확신으로 그것을 저작물이라 주장할 수 없다. AI가 생성하는 결과물은 완전히 외부적이지도, 온전히 내부적이지도 않다. 그것은 우리가 통제하지도, 소유하지도 못하는 계산적 존재의 조건에 속해 있다.
푸코는 과거에 권력은 단순한 지배가 아니라 상상 가능한 것의 형태를 규정하는 데 있다고 말했다. 오늘날 플랫폼은 우리가 욕망을 언어로 표현하기도 전에 그것을 큐레이션한다. 알고리즘은 우리가 무엇을 소비할지를 결정하고, 그 욕망을 충족시키는 수단을 제공한다. 이런 맥락에서 소비는 경험을 마무리하는 행위가 아닌 의존을 강화하는 절차로 자리매김하는 것이다. 우리는 먹는 것이 아니라, 먹여지고 있다.
아마 이것이 누군가가 요리하고 먹는 모습을 바라보는 행위가 이상하리만큼 친밀하게 느껴지는 이유일 것이다. 알고리즘과 달리 사람의 입은 모호함을 허용하지 않는다. 삼켜진 순간 그 대상은 돌이킬 수 없이 우리와 통합된다. 소비는 실존적 확실성의 은유가 된다. 아직 물방울이 묻은 딸기는 먹혀 육신이 된다. 고기 조각이 동동 떠다니는 국물은 피로 흡수되어 숨이 된다. 결이 부드럽게 찢어지는 크루와상은 눈발 흩날리던 겨울 저녁의 기억이 된다. 그 어느 것도 완벽히 재생성되어 되찾을 수 없는 영구적인 개인의 소유물이 된다.
이 영상들 속에 깃든 갈망은 음식 자체에 대한 허기가 아니다. 그것은 결말에 대한 욕망, 되돌릴 수 없음에 대한 갈망, 실재와의 접촉에 대한 목마름이다. 시청자는 칼로리를 감상하기보단 소프트웨어 업데이트나 권한 철회, 기업 전략 변화로 무효화되지 않는 소유의 한 형식을 바라본다.
우리는 결핍이 아니라 무형성이 지배하는 시대에 도달했다. 사회가 잃어버린 것은 풍요가 아니라 영속성이다. 정신적인 빈곤 속에서 우리는 이미지, 소리, 서사를 삼키듯 소비한다. 그 소비가 디지털 경제가 우리에게서 빼앗아간 것, 즉 자율성과 지속성, 그리고 자아의 소유권을 되돌려 줄 수 있을 것처럼 우리는 굶주린 마음으로 게걸스럽게 그릇을 먹어치운다.
칸딘스키는 근대가 우리의 영혼을 “물질주의적 혼수상태”에 빠뜨렸다고 경고했다. 그러나 오늘 우리를 가두는 것은 더 이상 물질이 아니다. 우리는 모든 것이 무한히 제공되지만 결국 손에 닿지 않는 세계를 떠돈다. 우리는 손에 쥘 수 없는 콘텐츠, 주장할 수 없는 창조성, 구현할 수 없는 지능 속에 둘러싸여 있다.
아마 지금 던져야 할 질문은 무엇을 소비하느냐가 아니라, 아무것도 남지 않는 소비의 의미가 무엇인가이다. 소유가 한때 존재의 증거였다면, 이 손에 잡히지 않는 문화 속에서 그 다음은 무엇인가?
우리는 먹고, 타인이 먹는 모습을 지켜보며, 여전히 허기에 허덕인다. 더 많은 것을 원해서가 아닌, 사라지지 않는 무언가를 향해서.
저자 소개
반휘은은 글로벌 AI 거버넌스와 신기술을 전문으로 하는 정책 컨설턴트이자 저술가다. 미국 컬럼비아 대학교에서 디지털 인문학, 미디어철학, AI윤리를 전공하며 석사과정을 마친 후, 뉴욕 유엔본부의 (전)기술특사실 (현)디지털과 신기술사무국(전 Office of the Secretary-General’s Envoy on Technology, 현 Office for Digital and Emerging Technologies)에서 AI 정책 연구와 분석을 주도했다. 안보, 에너지, 노동, 건강, 법의 지배 등 다양한 분야에서 AI 거버넌스를 위한 전략적 프레임워크를 개발했으며 20회 이상의 고위급 자문 회의를 주관하며 AI 정책을 구체화했다. 구글, 마이크로소프트(MS), 메타 등 주요 산업 리더들과 협력하여 AI 거버넌스의 글로벌 표준을 마련하는 데 기여한 반휘은은, 디지털 윤리와 사회적 가치에 대한 깊이 있는 통찰을 제공한다. 학계와 산업계를 잇는 다리 역할을 하며, 현재는 AI 거버넌스를 주제로 한 책을 집필 중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