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학세상] ‘양자역학의 해’를 마무리하며

이난영 과학칼럼니스트

얼마 전부터 양자역학 전공책 한 권을 꺼내 정독하고 있다. 특별한 이유가 있지는 않다. 왠지 모르겠지만 양자역학 책을 볼 때마다 이상하게 마음이 켕겼다. 아마도 물리학에 잠시라도 발을 담갔던 사람으로서 ‘저 책은 꼭 한번 끝까지 꼼꼼히 봐 줘야 하는데…’ 하는 이해할 수 없는 부채감이 있는 것 같다.

이 책의 주인공은 당연히 ‘양자(quantum)’다. 이는 ‘얼마나 많이(how much)’라는 뜻을 담고 있는 라틴어 quantus에서 유래한 말로, 우리의 예상과는 달리 현대물리가 시작된 1900년 이전에도 이미 널리 사용됐다. 일례로 내과 의사들이 약을 처방할 때 “충분한 양” 혹은 “적당량”(quantum satis)의 표현으로 쓰곤 했다. 물론 지금 우리가 말하는 ‘양자’는 전혀 다른 의미다.

현대물리학에서 양자는 ‘더 이상 나눌 수 없는 에너지의 최소 단위’를 뜻한다. 그렇다면 에너지를 더 이상 나눌 수 없다는 말은 도대체 무슨 뜻일까? 우리에게 매우 친숙한 스마트폰을 예로 들어보자. 우리가 스마트폰을 ‘진동 모드’로 두면, 알림이 올 때마다 ‘부르르’ 하고 떨린다. 이 떨림은 내부 모터가 회전하면서 무게 추가 규칙적으로 앞뒤 또는 좌우로 흔들리는 운동에서 나온다. 이런 반복된 흔들림을 우리는 진동이라고 부른다. 그리고 그 진동이 주변 물질로 퍼져 나가는 과정을 파동(wave)이라고 한다.

모든 단순한 진동에는 두 가지 중요한 특징이 있다. 하나는 진폭으로, 물체가 한쪽 끝에서 다른 쪽 끝까지 얼마나 크게 흔들리는지를 알려준다. 다른 하나는 진동수로, 1초 동안 그 흔들림이 몇 번 일어나는지를 말한다. 우리는 일상에서 진폭을 바꾸는 일을 아무렇지 않게 한다. 스마트폰의 진동 세기만 봐도 그렇다. 버튼 몇 번만 누르면 진동이 약해지기도, 강해지기도 한다.

하지만 자연은 그렇게 간단하지 않다. 자연에서는 진폭을 반으로 그리고 또다시 그 값의 반으로처럼 마음대로 그리고 무한히 작게 줄여 나갈 수가 없다. 아무리 작게 만들려고 해도, 절대로 더 줄일 수 없는 최솟값이 존재한다. 진자가 이 최소 진폭까지 줄어들면 두 가지 선택지만 남는다. 계속 그 크기로 진동하거나, 아니면 아예 멈추는 것이다. 이때의 ‘더 이상 줄일 수 없는 진동’, 즉 최소 진폭을 가진 미세한 진동이 바로 우리가 말하는 양자다.

그리고 진동은 언제나 에너지를 실어 나르기 때문에, 진동을 더 작게 만들 수 없다는 말은 곧 에너지 또한 더는 쪼갤 수 없는 최소 단위가 있다는 뜻이 된다. 그래서 “양자는 가장 작은 진동”이라는 설명과 “양자는 더 이상 나눌 수 없는 에너지”라는 정의는 서로 다른 표현처럼 보이지만 사실은 같은 현상을 두 가지 시각에서 설명하는 셈이다.

고에너지 물리학자인 매트 스트래슬러(Matt Strassler)는 이 양자를 “연속적으로 보이는 세계가 갑자기 계단처럼 튀어 오르는 순간을 설명하는 규칙”이라고 표현했다. 바다를 보면 파도는 부드럽고 연속적으로 흐르는 것처럼 보이지만, 실제 바닷물은 작은 물분자들이 모여 만든 세계다. 자연은 이렇게 연속적으로 보이는 세계와, 불연속적인 작은 단위의 세계를 동시에 가지고 있다. 그리고 양자는 바로 그 경계에서 나타나는, 자연의 새로운 법칙이다.

돌이켜 보면 양자는 단순히 ‘작은 것’의 이름이 아니다. 끊어짐 없이 이어지는 세계만이 존재한다고 믿었던 오래된 시각을 깨고, “자연은 때때로 계단식으로 움직인다”는 완전히 새로운 관점을 열어젖힌 하나의 전환점이었다. 그리고 묘하게도, 이 전환은 새로운 물리를 만들겠다고 나선 젊은 천재가 아니라, 오히려 학문의 안정된 길을 걷고 있던 나이 마흔을 넘긴 한 학자에게서 시작됐다. 그가 바로 막스 플랑크(Max Planck)였다. 막스 플랑크는 당시 물리학에서 가장 골칫거리였던 ‘흑체 복사’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평생의 신념을 뒤흔드는 결단을 해야 했다. 그는 자연의 에너지가 연속적이라는 기존 믿음을 스스로 거슬러, “에너지는 덩어리로 움직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받아들였다. 그리하여 그는 최초로 (에너지) 양자라는 개념을 도입했고, 결국 그의 이 한 걸음이 20세기 물리학 전체의 문을 열어젖혔다.

양자는 자연의 가장 깊은 곳에 숨어 있는 최소 단위이면서, 동시에 우리의 사고방식이 바뀌는 순간을 상징하는 개념이다. 그리고 그 전환의 출발점이었던 플랑크의 작은 결단은 지금도 여전히 우리가 세계를 바라보는 방식을 바꾸고 있다.

2025년 유엔이 지정한 ‘양자과학과 기술의 해(International Year of Quantum Science and Technology)’가 저물어 가고 있다. 사람들은 이 해를 기념하며 양자컴퓨터, 양자암호, 새로운 센싱 기술 등 눈부신 성과들을 이야기한다. 물론 이러한 기술들이 인류의 미래를 다시 쓰고 있지만, 우리가 진정으로 눈여겨봐야 할 것은 한계 앞에서 한 발을 더 내디디려는 태도, 익숙한 세계에 머무르지 않고 자신의 믿음을 넘어설 용기, 그리고 자연이 들려주는 작은 신호를 놓치지 않으려는 겸손한 감각이란 생각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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