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장 정치'의 양극화 '현재 진행형'...극단적 갈등 극복 과제

대한민국을 뒤흔든 ‘12·3 비상계엄 사태’로 정치·경제·사회 전반이 요동쳤지만, 한국 사회는 이내 정상 궤도를 되찾았다. 비상계엄 사태 이후 1년이 지난 지금 우리 사회는 단순한 ‘질서 회복’을 넘어 위기 속에서도 시스템을 지켜내는 ‘회복 탄력성’을 각종 지표로 증명하고 있다. 하지만 광장의 열기가 식지 않으면서 심화한 진영 갈등은 여전히 ‘현재 진행형’이어서 과제라는 지적도 나온다.
2일 관광업계에 따르면 서울 명동과 강남 등 주요 상권은 다시 외국인 관광객들로 붐비고 있다. 한국관광공사의 ‘10월 한국관광통계’에 따르면 10월 방한 외국인 관광객은 모두 173만9000명으로 집계됐다. 코로나19 사태 이전인 2019년 10월(165만6000명)을 웃도는 수치다. 이는 비상계엄이라는 정치적 위험이 한국의 치안이나 사회 시스템 붕괴로 이어지지 않았음을 간접적으로 보여준다.

수년 만에 한국을 다시 찾은 50대 재미교포는 “지난해 비상계엄 사태 이후 계엄 해제와 정권 교체 등의 뉴스가 미국에서도 비중 있게 다뤄졌고, 한국 사회 혼란이 진정됐다는 소식도 꾸준히 전해졌다”며 “오기 전엔 걱정도 됐지만, 막상 직접 한국을 찾아와 상황을 보니 생각했던 것 보다 더 차분하고 계엄 사태 영향이 없는 것처럼 보인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서 “오히려 지금 미국에선 한국의 비상계엄 사태보다는 '케이팝데몬헌터스'나 한국 화장품에 관심에 더 많다”고 부연했다.
김태윤 한양대 행정학과 교수(본지 자문위원)는 이번 비상계엄 사태가 역설적으로 한국 사회의 ‘성숙도’를 증명하는 계기가 됐다고 평가했다. 김 교수는 “작년에 계엄 시도가 있었지만, 우리 사회에는 애초에 큰 충격(Shock) 자체가 없었다고 볼 수도 있다”며 “정치적으로는 중대한 사안이었지만 사회적으로 볼 때는 시스템이 빠르게 안정을 찾아갔다”고 진단했다.
그는 이어 “이런 상황은 우리 국민의 민간 역량과 성숙도가 매우 두텁고 강력하다는 것을 확인하는 계기가 됐다”며 “우리 사회가 충격에 휘어지지도 않을 만큼 단단한 시민사회의 뿌리를 갖고 있음을 보여준다”고 분석했다.
하지만 우리나라 경제와 사회가 보여준 회복 탄력성의 이면에는 깊어진 갈등의 골이 자리 잡고 있다. 비상계엄 사태 수습 과정에서 드러난 정치적 양극화와 진영 논리는 최근 1년간 거리를 중심으로 더욱 날카로워졌다. 정치적 갈등이 물리적 충돌로 비화하는 양상은 통계로도 확인된다.
경찰청이 집계한 ‘집회시위현장 경찰관 부상자 현황’에 따르면 2021년 40명이었던 부상 경찰관 수는 2022년 51명, 2023년 39명으로 유지되다 비상계엄 사태의 여파가 이어진 2024년에는 165명으로 4배 이상 급증했다. 지난해 12월 9일 진행된 ‘윤석열 정권 퇴진 1차 총궐기’ 집회가 격화하면서 경찰관 부상자 105명이 더해진 영향이다. 지난해 경찰관 부상자 급증은 정치적 의사 표현이 대화와 타협이 아닌 격렬한 물리적 충돌로 변질되고 있음을 시사한다.
이병훈 중앙대 사회학과 교수는 이러한 현상에 대해 “계엄이라는 민주주의의 위협으로부터 나라를 구한 것은 ‘빛의 혁명’을 이룬 촛불 시민의 힘이었지만, 그 과정에서 ‘광장 정치의 양극화’라는 과제가 남았다”고 진단했다.
이 교수는 “모든 국민이 함께 민주주의를 지켜냈다고 하기에는 계엄 이전부터 존재했던 고질적인 정치 양극화 문제가 심각했다”며 “계엄 내란 사태가 대결 구도를 더 극단적으로 표출시키는 계기가 됐다”고 설명했다. 특히 그는 “시민이 민주주의를 지켜낸 한편에서는 ‘윤 어게인’이나 ‘윤 지키기’ 같은 또 다른 양극화 양상이 표출됐다”며 “이러한 강성 지지층에 의한 정치 양극화 상황은 여전히 우리가 넘어야 할 가장 큰 산이자 민주주의를 흔드는 어려움”이라고 지적했다.

전문가들은 비상계엄 1년이 남긴 과제로 ‘극단적 갈등 극복’을 꼽았다. 시민사회와 시장 경제는 위기를 극복하고 제자리를 찾았지만 정치는 여전히 혼란의 중심에 서 있다는 것이다.
김 교수는 “비상계엄 사태를 계기로 한국 사회의 기본 잠재력과 안정성은 확인했지만, 정치권에서는 갈등이 훨씬 깊어지고 극단화됐다”며 “양측이 지지층 결집을 위해 불필요하게 총력전을 벌이며 정치적 에너지를 낭비하고 있는 상황”이라고 꼬집었다.
이 교수 역시 현재의 상황을 “이중적 정치 양극화의 과제”라고 표현했다. 그는 “정당 정치의 양극화를 넘어서는 것과 동시에 촛불과 태극기로 대변되는 ‘광장 정치의 양극화’를 극복하는 것이 숙제”라며 “시민들끼리 서로 대결하는 구도를 어떻게 해결할 것인가가 큰 과제로 떠오르고 있다”고 말했다. 이어 “계엄이라는 끔찍한 사태는 피했으나, 여전히 민주주의를 위협하고 흔드는 정치 양극화의 늪을 벗어나야 진정한 회복이라 할 수 있다”고 조언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