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료실 풍경] 고3을 둔 부모 마음

최영훈 일산연세마음상담의원 원장

“쉿! 지금 자고 있어.” 현관문을 들어서자마자, 낮고 강한 목소리로 아내가 주의를 주었다. 그렇다. 막내딸은 지금 고 3이다.더군다나, 오늘은 수능전야. 살금살금 발끝을 들고 조용히 안방으로 들어가 씻지도 못하고 누웠다.

지난 과거가 주마등처럼 스쳐 지나간다. 9년 전,초 3이던 막내는 2살 위 큰아들과 함께 대치동으로 이사를 했다. ‘공부교신자’들이 모인 동네. ‘공부만이 살 길’이라는 슬로건하에 살아가는 곳. 지인들이 대치동 생활이 어떠냐고 물어오면, 늘 이렇게 표현하곤 했다. 그런 메마른 곳에서 막내딸은 꿋꿋이 10여 년 가까운 생활을 견뎌냈다. 아침부터 자기 전까지, 별다른 취미 생활도 없이, 아이돌 공연 한번 못 가보고, 남자 친구 한번 못 사귀어 보고. 그렇게 막둥이는 10대를 건조하게, 무채색으로 마무리하고 있었다.

“집사람이 대치동, 대치동 노래를 불러대서, 요즘 아빠들이 자녀 교육에 결정권이 없어서….” 주변에 교육에 과몰입하는 기성세대에 냉소적인 지성인인 듯, 위선적인 언행을 하기도 했었다. 돌이켜보며 참 양가적인 감정과 언행을 보이며 지내곤 했다. 성적이 떨어져 꾸지람을 듣고, 기죽어 있으면, 안쓰러운 심정에 위로해 주면서도, ‘조금 더 성적이 올랐으면’ 하는 서운한 마음도.

결국 아이 엄마의, 아니 아빠의 바람도 더해 의대를 지원한 막내. 매일 자정 무렵 귀가하면서 동네 길냥이들을 보면 환하게 얼굴이 피던 아이. 춥거나 비가 오면 그들의 안녕을 걱정하던 아이. 가끔 수의사를 해서 고양이 전문 병원을 열고 싶다고 뜻을 비친 적이 분명 있었는데, 우리 부부는 못 들은 척 지나치지 않았던지…. 면담 중 자녀의 행복과 적성에 대해 강조하면서, 정작….

드디어 새벽이 찾아왔다. 3인은 조용히 짐을 챙겨 집을 나선다. 서로 아무말이 없다. 이윽고, 수험장에 도착했다. 차에서 내려 교문을 들어가는 막내의 뒷모습을 지켜보고 싶었지만, 밀려드는 다른 수험생 가족들로 인해, 바로 출발해야만 했다. 진료를 시작하며, 잠시 잊은 듯하였으나, 시간이 지날수록 점점 불안, 초조의 감정이 증폭되어 간다.

‘나는 아이에게 좋은 부모였을까. 아닌 것 같다. 하지만 시험은 성공적으로 치르길.’ 오늘 따라 내담자들과 시선 맞추기를 피하는 자신을 느끼며, 석양이 지는 창밖으로 자꾸 고개를 돌리게 된다. 최영훈 일산연세마음상담의원 원장

  • 좋아요0
  • 화나요0
  • 슬퍼요0
  • 추가취재 원해요0
주요뉴스
댓글
0 / 300
e스튜디오
많이 본 뉴스
뉴스발전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