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감 후] 관세 종착지는 ‘정쟁’이 아니라 ‘경쟁력’이어야

독일 사상가 칼 마르크스는 "역사는 반복된다. 한번은 비극으로, 한번은 희극으로"라고 말했다. 올해 한국 자동차 산업을 뒤흔든 관세 변수도 이 말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는다. 현대자동차그룹은 올 한 해 두 차례 공장 준공식을 치렀고 두 번 모두 관세 이슈가 겹쳤다.

3월 미국 조지아 엘라벨에서 열린 현대차그룹 메타플랜트 아메리카(HMGMA) 준공식 날,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외국산 자동차에 25% 관세 부과를 선언했다. 정의선 현대차그룹 회장은 "관세는 국가와 국가의 문제"라며 정부와 기업이 함께 대응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는 "관세 발표 이후 정부가 주도적으로 움직여야 하고 기업도 협상을 이어가야 한다"며 실질적인 시작은 그때부터라고 했다.

이후 수개월 동안 한미 간 협상은 이어졌다. 8월 양국이 관세를 25%에서 15%로 낮추기로 합의했지만 투자 이행 방안을 놓고 줄다리기가 계속되며 협상은 지연됐다. 글로벌 공급망이 흔들릴 때마다 관세는 가장 먼저 산업의 약한 고리를 드러낸다. 이번 관세 협상도 그 취약성을 확인하는 과정이었고 한국 자동차 산업은 위험을 피하는 대신 정면 돌파를 택했다. 현대차는 3월 발표한 210억 달러 규모의 미국 투자를 8월 260억 달러로 확대했다. 위험이 커질수록 한 걸음 더 나아간 셈이다. 호세 무뇨스 현대차 사장은 "위기 대응력은 현대차 DNA"라고 했다. 이는 단순한 승부수가 아니라 생존을 위한 전략적 선택에 가깝다.

전환점은 지난달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APEC) 정상회의였다. 한미 정상이 관세 협상에 최종 합의하면서 흐름이 급변했다. 이어 기아가 미래형 PBV 생산 허브를 선언하며 화성 EVO 플랜트 이스트 준공식과 웨스트 기공식을 연 이달 14일, 양국은 조인트 팩트시트(공동 설명자료)에 공식 합의했다. 한국산 자동차·부품에 적용되던 관세를 25%에서 15%로 낮춘다는 내용이 처음으로 문서에 담긴 것이다.

그러나 관세 문제는 여기서 끝이 아니다. 이번 합의를 이행하기 위한 대미투자특별법 제정과 양해각서(MOU) 국회 비준 등 후속 절차를 둘러싼 논쟁이 이어지고 있다. 경제·통상·무역은 특정 진영의 언어가 아니다. 정쟁의 소재가 돼서는 안 된다. 자동차 산업은 수출뿐 아니라 운송·부품·전후방 산업 전반의 고용과 직결되는 만큼 조속한 입법 논의가 필요하다.

또한 15%라는 수치는 국가마다 다른 의미를 가진다. 일본과 유럽은 이미 15% 관세 기반에서 안정적인 판매 구조를 구축했지만 한국은 무관세에서 단번에 15%로 뛰어올랐다. 평균 수입가격이 다른 만큼 체감 부담도 다르다. 전동화 전환 속도가 빨라지고 가격 경쟁이 심화되는 미국 시장에서 관세는 곧 브랜드 경쟁력이다.

이번 협상 과정은 한국 자동차 산업이 세계 공급망 재편의 소용돌이 속에서 어떤 태도를 취해야 하는지 보여준다. 기업은 현장에서, 정부는 협상장에서, 국회는 제도 마련에서 각각 역할을 수행해야 한다. 관세는 숫자가 아니라 투자·생산거점 전략을 좌우하는 신호다.

역사는 반복된다. 그 반복이 비극이 될지, 희극이 될지는 선택에 달려 있다. 2025년 한국 자동차 산업은 관세의 긴 그림자 속에서 움직였다. 그럼에도 국내 완성차 기업들은 멈추지 않았다. 관세의 시간이 길었던 만큼 이제는 결론을 내릴 시점이다. 시장은 기다리지 않는다. 지금 필요한 것은 빠른 결단과 산업의 미래를 위한 입법이다. 관세 정책의 종착지는 정쟁이 아니라 경쟁력이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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