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석기 과학칼럼니스트

그러자 기후변화 주장이 세계를 대상으로 한 최대 사기라고 주장해온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소셜미디어에 “빌 게이츠가 결국 자신이 틀렸음을 인정했다. 용기를 내줘 고맙다”는 글을 올렸다. 국내 언론도 게이츠가 유턴을 했다며 앞으로 기후변화를 바라보는 관점에 큰 영향을 끼칠 것이라고 해석했다.
2021년 ‘기후재앙을 피하는 법’이라는 제목의 책까지 출간한 빌 게이츠가 불과 4년 만에 180도 변심했다는 게 믿어지지 않은 필자는 지난 10월 28일 올린 글 ‘기후에 대한 세 가지 엄혹한 진실’ 원문을 찬찬히 읽어봤고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기후변화에 대한 게이츠의 입장은 거의 변한 게 없었고 다만 ‘빈대 잡다가 초가삼간 태우는’ 우를 범하지 말자는 내용을 강조한 것인데 이를 왜곡(트럼프뿐 아니라 많은 언론도)해 변심 또는 유턴이라고 표현한 것이다.
이 글은 게이츠가 11월 10일 브라질 벨렝에서 개막한 제30차 유엔기후변화협약 당사국총회(COP30)에 앞서 참석자들에게 읽어보고 유념해달라며 당부한 내용이다. 먼저 게이츠는 지난 10년 동안 파리기후협약이 제대로 이행되지 않고 기후변화로 인한 피해가 커지면서 곧 인류가 멸망할 수 있다는 종말론적 관점이 힘을 얻고 그 결과 온실가스배출 감축 목표에 과몰입하는 현상을 우려하고 있다. 그러다 보면 지구촌의 빈곤과 질병을 퇴치하는데 들어가야 할 자원과 노력이 줄어 결국에는 ‘병은 고치고 사람은 죽는’ 상황이 될 수도 있다는 것이다. 즉 이 글의 핵심은 기후변화만 보지 말고 최빈국 사람들의 고통에도 눈을 돌리라는 호소인 셈이다.
게이츠는 지난 10년의 기후변화 대응 노력이 완전한 실패는 아니고 꽤 진전을 이뤘다고 주장했다. 즉 2100년까지 기온상승을 산업화 이전(1850년) 대비 1.5도 상승으로 묶자는 목표는 이미 실패했지만(지난해 조기 달성(?)했다), 지난 10년의 추세만 유지해도 2.9도 상승에서 머문다는 것이다. 이는 파리기후협약 이전 추세가 유지됐을 때 예상보다는 1도 이상 낮춘 셈이다. 게다가 청정에너지 관련 기술이 급격히 발전하고 있어 각국이 의지를 갖고 실천한다면 2040년 이후에는 온실가스 배출이 본격적으로 줄어 세기말에는 2.1도 상승까지도 가능할 것으로 내다봤다. 이 경우 1.5도 상승보다는 기후변화로 인한 피해가 크겠지만 그렇다고 인류 문명이 종말을 맞는 건 아니라는 말이다.
이어서 게이츠는 기후변화로 인한 피해가 심각한 것은 맞지만, 여전히 인류를 위협하는 최대 문제는 ‘가난과 질병’이라며 빈곤국의 개발과 건강에 세계가 더 신경 써야 한다고 강조했다. 즉 어느 선까지는 삶의 질과 에너지 사용량이 비례관계일 수밖에 없어 빈곤국이 개발되려면 앞으로도 상당 기간 온실가스 배출이 늘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그런데 이런 현실을 무시하고 지난 2021년 스리랑카처럼 ‘온실가스를 배출하는 합성비료 사용을 금지한다’는 식의 급진적 정책을 펼치면 농산물 수확 급감으로 가난한 사람들의 고통이 가중된다는 것이다. 물론 빈곤국 사람들의 삶 개선을 위한 인프라 구축에 최대한 청정에너지 비율을 늘려야 하고 이를 위해 선진국의 지원이 지금보다 훨씬 커져야 한다.
결국 빌 게이츠의 “기후전략도 인류복지가 우선해야 한다”는 주장은 선진국에 사는 우리가 생각하는 수준의 인류복지가 아니다. 필자는 아직 경험해보지 못했지만, 최빈국의 현장을 직접 목격하면 이들 나라 사람들이 겪는 가난의 참상에 경악한다고 한다. 게이츠의 시선은 이들을 향하고 있다. 기후변화 사기론에 백신 사기론을 주장하며 지난 수십 년 동안의 과학자들의 노력을 모욕하고 여러 세계 기구 탈퇴로 최빈국의 참상을 외면하고 자국 이익만을 좇는 트럼프가 게이츠의 발언까지 왜곡해 이용하는 모습이 씁쓸하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