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지대 경제학과 명예교수/바른사회시민회의 공동대표
적자 예산으로 미래세대 빚 떠넘겨
생산성 높이고 정책 불확실 줄여야

시인 김광균은 그의 시 ‘추일서정(秋日抒情)’에서 낙엽을 ‘폴란드 망명 정부의 지폐’로 비유했다. 그만큼 가치가 없다는 것이다. 최근 달러 대비 원화 환율이 1450원을 넘자 원화는 덕수궁 돌담길 낙엽 신세가 됐다.
미국에 자식을 유학시킨 ‘김 여사’는 꼼짝없이 생활비를 더 송금해야 한다. 달러로 국장(국내주식)에 투자한 ‘박 여사’도 돈을 번 듯하지만 막상 달러로 환전하니 남는 것이 없다. 최근 원화가치 하락이 빚은 풍속도다.
최근 원화 환율 추이를 보자. 4월 9일 원화 환율은 ‘1487원’을 찍었다. 그러자 더불어민주당은 ‘비상계엄 발동에 따른 내란’ 후유증이라고 치부했다. 그러면 이후 환율은 어떻게 되었는가? 6월 3일 새정부 출범 후 환율은 꾸준히 고공행진해 2025년 10월에 ‘1455원’을 찍었다. 민주당 논리대로라면 ‘내란이 종식되면 환율은 당연히 안정’돼야 한다. 민주당의 ‘내란 선동’은 거짓인 것이다.
환율 폭등 원인은 ‘원화 약세’에서 오는가 아니면 ‘달러 강세’에서 오는가. 같은 얘기 같지만 전혀 다르다. 결론을 말하면 원화 약세에서 온 것이다.
‘유로, 엔, 파운드’ 등 주요 6개국 통화대비 달러의 상대적 가치를 의미하는 ‘달러 인덱스(기준 100)’를 보면 2025년 상반기에 달러 가치는 ‘10.7%’ 하락했다. 9월 16일에는 96.6 수준까지 밀리며 연중 저점을 기록했다. 9월 하순에 98선을 회복하고 11월 초 99.5 전후에서 등락을 거듭하고 있다. 그렇다면 최근의 원화 환율 급등은 ‘100%’ 원화 약세에 기인한 것이다.
시간여행을 통해 자본시장 개방 전후 상황을 보자. 우리나라는 1992년 1월 3일 자본시장을 외국에 개방했다. 개방 첫날 외국자본의 ‘사자 주문’으로 국내 상장된 766개 종목 중 512개가 상한가로 장을 마쳤다. 자본시장 개방과 함께 외국인에 대한 진입장벽으로 읽힐 수 있고 그렇게 작동한 ‘외국인 투자 등록제’를 도입했다. 당시 외국인은 한국 경제의 전망을 밝게 봤고 달러는 넘처났다. 같은 맥락에서 지금 우리가 겪고 있는 환율 상승은 ‘한국의 경제 활력이 예전 같지 않다’는 반증이다. ‘경제활력’ 저하가 달러유입 부진의 근저 요인인 것이다.
원화 환율이 급등하는 등 금융시장이 불안한 때일수록 그러한 취약성을 가져오는 ‘근저의 구조적 요인’이 무엇인가를 깊이 천착해 근본적인 대책을 세워야 한다. 섣불리 내란사태 같은 ‘희생양’을 찾아서는 안 된다.
밀턴 프리드먼은 ‘인플레이션은 화폐적 현상’이라는 정언적 명제를 증명했다. 돈이 많이 풀리면 그만큼 물가가 오르고 일정 시차를 두고 환율이 오른다는 것이다.
2024년 한국의 GDP(국내총생산) 대비 M2(총통화) 비율은 1.58배이며 미국은 0.72배이다. 한미 간 금융구조 차이로 인해 이를 수평 비교할 수는 없다. 한국은 가계·기업의 자금조달과 자산보유가 예금·저축성 상품에 주로 의존하는 은행 중심형이고, 미국은 채권·주식·펀드·대체상품 등 M2 밖의 수단을 많이 이용하는 시장 중심형이기에 ‘M2/GDP’가 낮다.
이를 감안하더라도 한국은 경제 규모에 비해 지나치게 화폐가 많이 발행되었음을 부인할 수 없다. 부동산 가격이 저절로 오를 리 없다.
미국의 기준금리는 10월 29일 현재 4.0%이고, 한국의 기준금리는 7월 10일 현재 2.5%로 미국이 한국보다 1.50%포인트나 높다. 한국은 가계부채 규모가 꼭지에 도달했기 때문에 금리를 낮게 유지할 수밖에 없다. 금리가 낮으면 원화가치는 유지될 수 없고 환율은 높아질 수밖에 없다. 기준금리를 높게 유지하는 것은 ‘국가의 실력’이다. 기준금리가 높으면 경기가 나쁠 때 기준금리를 낮출 수 있다. 댐에 물을 가두고 비가 오지 않을 때 물을 방류하는 것과 같은 이치다.
신정부는 내년 예산안을 올해보다 8.1% 팽창한 728조 원으로 확정지었다. ‘실질 성장률 전망치가 1%대이고 인플레이션 전망치가 2~3%인 경제’에서 예산을 8.1% 팽창시킨 것은 빚을 미래세대에 넘기겠다는 것이다.
적자예산만큼 통화가 팽창되어 원화가치는 떨어질 수밖에 없다. 허리띠를 풀면서 환율 상승을 가져올 것만 골라 하면서 환율 안정을 바라는 것은 앞뒤가 맞지 않는다. 환율을 안정시키려면 한국 경제에 대한 외국의 신뢰를 높이고 구조개혁을 통해 생산성을 높여야 한다. 핵잠건조계획은 정책 불확실성을 높이는 정치쇼로 끝날 공산이 크다. 환율 안정에도 도움이 안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