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0여 년 정치 경력 마감

미 의회 처음이자 마지막 여성 하원 의장을 지낸 민주당 소속 낸시 펠로시 의원이 내년 11월 치러지는 하원 선거에 출마하지 않겠다고 6일(현지시간) 밝혔다.
CNBC에 따르면 85세의 펠로시는 이날 소셜미디어를 통해 “의회 재선에 다시 출마하지 않겠다”면서 “감사한 마음으로 마지막 봉사에 임하겠다”고 발표했다.
이에 미국 역사상 가장 영향력 있는 여성 정치인 가운데 한 명으로 꼽히는 그는 내년 1월 임기 종료와 함께 40여 년의 정치 이력을 마무리 지을 것으로 보인다.
진보 성향 도시 샌프란시스코의 대표적 정치인인 펠로시 의원은 가정주부로 지내다가 1987년 47세에 늦깎이로 정계에 입문했다. 하원 원내대표로서 2003년부터 20년간 민주당을 이끌었으며 이 가운데 8년은 두 차례에 걸쳐 하원의장을 지냈다. 하원 의장은 부통령 다음으로 대통령직을 승계할 수 있는 자리다.
펠로시는 하원 통제권을 위한 싸움에서 선두에 섰으며, 특히 2017년부터 2021년까지 도널드 트럼프의 첫 대통령 임기 동안 날 선 공방을 주고받으며 격렬히 맞섰다.
트럼프와의 갈등은 2020년 국정연설 당시 극에 달했다. 트럼프가 하원 입장 시 펠로시의 악수 제안을 거절했다. 이에 대한 응답으로 펠로시는 트럼프 연설이 끝난 뒤 연설문을 공개적으로 반으로 찢었으며, “모든 페이지가 거짓이었다”고 설명했다.
펠로시는 2019년 말과 2021년 초 두 차례 하원 탄핵을 통해 트럼프를 실각시키려 했으나, 2번 모두 상원 공화당의 반대로 부결됐다.
트럼프는 이날 백악관에서 기자들의 펠로시 의원의 은퇴 발표에 대한 질문에 "펠로시는 나라에 엄청난 해를 끼친 사악한 인물이었다. 형편없는 일을 했고, 국가의 명예에도 손상을 입혔다”고 입장을 내놓았다.
이번 은퇴는 고령의 지도부가 권력을 놓지 않는 데 불만을 품은 젊은 민주당 세대의 요구 속에서 나온 것이다. 지난해 여름 조 바이든 대통령(당시 81세)은 트럼프와의 토론 이후 부진한 평가를 받았고, 펠로시 등 당내 중진들의 압박으로 대선 후보직을 사퇴한 일도 있었다.
펠로시의 은퇴는 민주당이 격동기에 접어든 시점에서 상징적 손실로 받아들여지지만 차기 지도부 구도에는 큰 변화가 없을 전망이다. 펠로시는 이미 3년 전, 민주당 원내 지도부에서 물러나며 의장직을 하켐 제프리스(뉴욕주) 의원에게 넘겼다. 제프리스는 내년 중간선거 후 민주당이 다수당을 탈환할 경우 차기 의장으로 유력시된다.
정치적 갈등은 그의 가정에도 타격을 줬다. 2022년 극우 음모론자가 샌프란시스코의 펠로시 자택에 침입해 남편 폴 펠로시를 망치로 공격한 사건이 있었다. 폴은 다행히 회복했다.
펠로시는 인권 옹호자이자, 1980년대 에이즈 확산 시기부터 성소수자 권리를 지지해온 진보 정치인으로 평가받는다. 2010년 버락 오바마 대통령과 함께 ‘오바마케어(건강보험개혁법)’ 통과를 이끌었으며, 이를 자신의 가장 큰 업적으로 꼽았다. 또 일본군 위안부 결의안 등의 통과에 주도적인 역할을 했다는 평가를 받는다.
펠로시는 워싱턴 정가에서 ‘스틸레토 힐을 신고 의사당을 전속력으로 뛰어다니는 철의 여인’으로 불렸다. 하루 수백만 달러의 정치자금을 모금하며, 민주당의 ‘기금 조달 기계’ 역할도 했다. 그는 “저는 하루에 백만 달러 정도를 모금해야 했어요. 적어도 일주일에 닷새는요”라고 말했다.
건강한 식습관으로 유명한 캘리포니아주 출신답지 않게 핫도그와 초콜릿을 즐기는 정치인으로도 유명하다. 매일 아침에는 초콜릿과 아이스크림을, 점심에는 핫도그를 즐긴 것으로 알려졌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