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논현광장] ‘깐부 3인방’의 러브샷이 남긴 여운

함인희 이화여대 명예교수/사회학

한때 ‘넘사벽’이었던 일제 소니TV
삼성·LG 시장 평정에 뿌듯함 느껴
포퓰리즘에 무너진 남미 잊지 말길

엔비디아의 젠슨 황, 삼성의 이재용, 현대의 정의선 세 최고경영자(CEO)가 맥주잔을 들고 러브샷을 하는 한 컷 사진을 보는 순간, 불현듯 오래 전의 이런저런 기억들이 밀려왔다. 1960년 국민소득 82달러로 200개 국가 중 196위를 기록했던 나라에서 태어나 오늘에 이르는 동안, 가슴 벅차다는 표현만으론 부족했던 감동을 안겨주었던 바로 그 기억들이….

1993년 삼성의 고(故)이건희 회장이 신경영을 주창하게 된 배경에는, 미국에서도 값싼 전자제품을 팔던 체인점에 ‘메이드 인 코리아’ 삼성 제품이 구석 자리에 먼지를 뒤집어쓴 채 쌓여 있던 흑역사가 있었다. 1985년 가난한 유학생으로 몇 가지 살림살이를 마련하러 간 그 체인점에서, 아무도 거들떠보지 않은 채 구석에 쌓여있던 삼성 제품을 똑똑히 보았다. 당시 ‘메이드 인 코리아’를 대하는 현지인의 시선은 지금 우리가 ‘메이드 인 캄보디아’나 ‘메이드 인 방글라데시’를 보는 것과 다를 바 없었던 듯하다.

1991년 학위논문 심사를 마치고 귀국하려는데 한국에 있는 가족으로부터 전화를 한 통 받았다. 돌아올 때 소니 브라운관 TV를 사오라는 주문이었다. 마침 29인치 TV가 막 출시되었던 때라 가격이 뚝 떨어진 27인치를 샀던 기억이 생생하다. 당시 일본의 소니는 우리에겐 ‘넘사벽’ 아니었던가. 2000년을 지나며 한국의 삼성과 LG가 일본의 소니를 앞서기 시작하는 과정을 지켜보며 느꼈던 뿌듯함을, 요즘 세대가 이해할 수 있으려나 싶다.

10년 전인가, 기업 교육 현장에서 명문대 경영학과 교수로부터 흥미로운 이야기를 전해 들었다. 수업 시간에 한 학생이 “우리 현대 자동차가 일본의 도요타보다 훨씬 잘 만든다”고 했다는 것이다. 교수는 “그걸 말이라고 하느냐”며 핀잔을 주었는데, 그 학생 의견에 동조하는 친구들이 의외로 많아 당황했다는 이야기였다.

나 또한 현대 포니의 추억(?)을 간직하고 있던 터라 대학생들의 국뽕이 지나친 건 아닐까 의구심이 들었던 건 사실이다. 1980년대 중후반 미국에서 현대차 포니는 하류층 및 유색인종이 타고 다니는 값싼 차 이미지가 강했고, 할리우드 영화에 포니가 등장하는 장면은 영락없이 고정관념에서 벗어난 적이 없었다.

20년 전 안식년을 맞아 미국의 버클리대에서 잠시 머물 기회가 있었는데, 그때만 해도 샌프란시스코 거리를 메운 자동차 10대 중 7~8대는 도요타 아니면 혼다 일본차였다. 한국 자동차는 눈을 씻고 봐도 찾아보기 어려웠는데, 이제 일본의 전설적 브랜드가 부럽지 않을 만큼 약진한 모습을 보자니 주책없이 또 감격이 밀려온다.

오늘의 2030들도 3인의 러브샷 장면을 기억 속에 담을 것이다. 우리 기업이 세계무대에서 차지하고 있는 위상을 확인하면서 말이다. 활짝 열린 인공지능(AI) 시대, 세계 3대 허브로 부상할 수 있으리란 꿈이 곧 현실화될지도 모른다는 상황 앞에서 가슴 뜨거워짐을 느낄 것이 분명하다.

다만 맨땅에서 맨주먹으로 시작했기에 잃을 게 없었던 기성세대와 달리, 지금의 젊은 세대를 만나 속내를 들어보면 뜻밖에 불안감이 깊숙이 자리하고 있음을 종종 만나게 된다. 지금까지는 잘 달려왔지만 우리나라가 남미의 베네수엘라처럼 한 방에 훅 가면 어쩌나, 추락하는 건 날개도 없다는데, 말로 표현하기 힘든 두려움이 짙게 배어 있음을 외면해선 안 될 것 같다. 자원 부국이었던 베네수엘라를 단번에 몰락시킨 주범이 포퓰리즘을 앞세운 정권의 퍼 주기식 정책 때문이라는 사실을 기억하고 있는 것이다.

확실히 경제는 2류에서 1류로 도약 중인데, 이젠 3류에서 4류를 향해 하강 중인 정치가 젊은 세대의 꿈과 희망을 분노와 좌절로 몰아가지 않길 간절히 바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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