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호근 대덕대 자동차학과 교수

관세 ‘15%’라는 숫자의 이면을 냉철하게
그러나 이번 15% 관세 확정은 0%에서 15%로의 변화, 즉 실질적으로는 15%의 ‘관세 인상’과 다름없다. 2.5%에서 15%로 오른 일본·EU에 비해 우리 관세 인상 폭(15%포인트)이 더 크다는 사실은, 우리가 그동안 누려왔던 FTA의 핵심 경쟁력 우위를 완전히 상실했음을 의미한다. 이제 우리 자동차는 경쟁국과 동일한 15%의 관세를 부담하며 원점에서 재출발해야 하는 냉혹한 현실에 놓인 것이다.
가뜩이나 최근 글로벌 공급망 불안정, 고금리 및 고환율 기조, 그리고 원자재가 상승 등으로 원가 부담이 가중되는 상황에서, 관세 충격까지 더해지면 현대차그룹이 감내해야 할 연간 수조 원대의 추가 비용은 고스란히 최종 수익 감소로 이어질 수밖에 없으며, 이는 기업의 투자 여력을 크게 위축시키고 미래 성장의 불확실성을 키울 수밖에 없다.
더 큰 문제는 완성차 업계의 위기가 곧 자동차 부품 산업의 위기로 직결되는 도미노 현상이다. 원가 절감 압박 심화는 부품업체들을 기술력이 아닌 가격 경쟁에 내몰리게 하여 부품사들의 연구개발(R&D) 투자 여력을 더욱 악화시키는 악순환을 초래한다. 또한, 장기적으로 관세 회피를 위해 완성차 업체들이 미국 현지 생산 확대에 박차를 가할 경우, 부품사들 역시 대규모 자본과 인력을 투입하여 동반 진출해야 하는 부담을 안게 될 것이다. 자금력과 글로벌 경험이 취약한 국내 중소 부품사에게 이는 단순한 투자가 아닌 생존을 건 도박이 될 수밖에 없다. 설상가상으로, 현재 대다수의 부품사가 내연기관차 부품에 의존하고 있어, 전기차·자율주행차 등 미래 모빌리티로의 사업 전환에 필요한 투자 시점을 놓치게 될 위험이 커지면서 한국 자동차 산업의 근간 자체가 흔들릴 수 있다는 경고음이 울리고 있다.
따라서 우리는 불확실성이 해소되었다는 단기적 안도감에 가려 이 구조적 위기를 간과해서는 안 된다. 지금이야말로 단기적인 생존을 넘어 지속 가능한 성장 전략을 구축해야 할 때이다. 첫째, 관세 리스크는 결국 ‘메이드 인 코리아’에 대한 지정학적 페널티이므로, 현대차그룹은 이미 진행 중인 미국 내 생산 시설 확대에 더욱 속도를 높여야 한다. 장기적으로는 미국 내 생산 물량 확대와 더불어, 멕시코, 유럽 등 생산 거점의 ‘지정학적 리스크’ 분산 및 재편을 통해 각 시장의 요구에 맞는 유연하고 안정적인 공급망을 구축해야 한다. 둘째, 무관세라는 가격 우위가 사라진 만큼, 이제는 일본, 유럽차와 같은 15%의 관세를 부담하고도 소비자에게 선택받을 수 있도록 ‘가격 경쟁력’에서 ‘기술·브랜드 경쟁력’으로의 전환이 필수적이다. 전기차, 수소차 등 친환경차 부문에서 ‘초격차 기술’을 확보하고, 소프트웨어 중심의 자동차(SDV) 전환을 가속화하며, 현지 맞춤형 마케팅과 특화 모델을 통해 프리미엄 이미지를 구축하여 ‘가격 그 이상의 가치’를 제공해야 한다.
셋째, 정부와 완성차 업계는 부품사들이 관세 부담의 최종 희생양이 되지 않도록 상생의 고리를 강화해야 한다. 특히 미래차 핵심 부품 분야에서 중소 부품사의 인수합병(M&A), 기술 R&D, 시설 투자 등에 대한 정책적 지원을 과감하게 확대해야 한다. 자금력만으로는 감당할 수 없는, 해외 동반 진출 비용에 대한 금융 지원도 필수적이다. 완성차와 부품사가 상생을 통해 고부가가치화를 이루어내야 한국 자동차 산업 전체의 체질을 개선할 수 있는 것이다.
이번 15% 관세 확정은 한국 자동차 산업이 ‘FTA 수혜자’라는 안락한 지위를 벗어던지고, ‘글로벌 경쟁자’로서의 냉혹한 현실을 인정해야 함을 보여주고 있다. 우리는 ‘불확실성 해소’라는 환상에서 깨어나, 지금이야말로 고통스러운 혁신을 통해 한국 자동차 산업의 새로운 100년을 준비해야 할 마지막 골든타임임을 명심해야 할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