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선욱 IBA홀딩스대표/미국공인회계사

미국도 마찬가지다. 미국 부동산 거품 붕괴는 2000년대 초반 저금리 기조 속에서 급등한 부동산 가격이 서브프라임 모기지(비우량주택담보대출) 부실화와 함께 터지면서 발생했다. 이로 인해 경제에 큰 충격이 가해졌고, 2008년 세계 금융위기로 이어졌다.
그런데 두 나라의 차이는 극명했다. 일본은 1990년대 부동산 붕괴 후 국운 쇠락의 길을 걸은 반면, 미국은 2000년대 후반 부동산 붕괴에서 일어나 현재 세계에서 가장 경쟁력 있고 혁신적인 경제가 되었다. 미국의 지난해 1인당 명목 국내총생산(GDP)은 8만 달러를 넘는데, 일본의 2배를 훌쩍 넘는 수준이다.
똑같이 부동산 거품과 붕괴를 겪었는데, 무엇이 두 나라의 경제적 운명을 갈랐을까. 중요한 이유 중 하나는 두 나라의 금융시스템 성숙도 차이에 있다고 볼 수 있다. 실물경제 붕괴 충격을 완화해 주는 금융시스템이 발달했느냐 여부다.
일본은 부동산가격 붕괴 위험을 헤지해 줄 금융상품과 투자시장이 역할을 못 하면서 경제 전체가 충격을 고스란히 떠안았다. 반면, 미국은 실물경제 충격에도 이를 완화(헤지)해 주는 반대방향 금융상품과 투자시장이 발달했다.
2015년 미국영화 ‘빅쇼트’를 보면 미국 부동산시장이 붕괴해 실물경제에 재앙이 닥친 상황에서 반대 방향 투자로 큰 이득을 보는 인물이 등장한다. 헤지펀드 매니저인 마이클 버리는 부동산시장이 한창 뜨거웠던 2005년, 몇 년 안에 미국 주택시장이 붕괴돼 주택담보대출에 큰 부도가 있을 것을 예상하고, 이 대출을 증권화한 상품인 주택저당증권(MBS)이 부도 나는 경우 신용손실을 배상해 주는 일종의 보험상품인 신용부도스와프(CDS)에 투자한다. 주택시장에 대해 반대방향(빅쇼트)으로 투자한 것이다.
실제, 2007년 미국 주택시장은 붕괴한다. 서브프라임 주택담보대출이 부도나고, 연계된 MBS가 휴지조각이 되자, 이에 보험금을 타는 상품인 CDS의 시가가 급등하면서 버리에게 엄청난 수익을 안겨준다.
생산적금융을 뒷받침하기 위해선 바로 이런 금융시스템이 필요하다. 몇 주 전 어느 국내은행 계열 연구소장은 "생산적금융에 가장 중요한 건 리스크 테이킹(위험 감수)이고, 감수할 준비가 돼야 한다” 말했다.
반면, 시장에선 아무도 위험 감수를 원치 않는다. 생산적금융을 위해 일방적으로 위험 감수를 하라고 할 것이 아니라, 이 위험을 헤지해 주는 금융시스템 즉, 은행으로부터 적정한 가격을 받고 위험을 인수해 가는 시장(반대방향 투자자)과 이 거래를 위한 시스템을 만들자고 했어야 했다.
많은 사람들은 은행의 사회적 기능이 위험을 인수하는 것이라고 오해하는데, 은행은 위험을 감수하고 싶어도 구조적으로 하기 어렵게 돼 있다. 생산적 금융을 공급할 자금은 갖고 있지만, 위험 기반 자본적립을 엄격히 요구하는 글로벌 규제인 바젤규제 때문에 생산적 금융에 따른 신용위험을 일정 수준 이상으로 테이킹하기 어렵다.
바젤규제는 왜 전세계 은행에 엄격한 자기자본 적립을 요구했을까.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은행업의 본질은 신용중개(대출공급) 이전에, 국민이 맡긴 예금을 안전하게 보관해 지급결제 서비스를 제공하면서 국민 경제활동의 매개체인 민간화폐를 발행하는 데 있기 때문이다.
글로벌 규제인 바젤규제가 위험 기반 자기자본 적립을 엄격히 요구하는 이유도 은행이 대출 운용과정에서 돈을 떼일 경우, 예금자의 돈은 건드리지 말고, 자체자금으로 손실을 감당하라는 취지다. 이 자체자금이 자기자본이다.
바젤규제는 자산의 신용위험 수준에 따라 자기자본 적립 요구분이 다르다. 예를 들어 주택담보대출은 담보가 확실하므로, 기업대출보다 돈 떼일 위험이 낮아 자본부담이 적은 식이다.
같은 금액을 빌려준다 해도 부동산대출은 기업대출 대비 자본 부담이 월등히 적다. 이런 구조에선 단기적으로 은행이 정부 정책에 협조하려고 기업대출을 늘릴 순 있지만, 장기적으론 자금흐름 방향이 바뀌긴 어렵다.
보험료를 내듯이 시가에 신용위험을 이전할 시장이 있어야 한다. 그래야 은행이 바젤규제 준수 부담을 덜고, 자금 방향을 부동산에서 생산적 금융으로 자연스럽게 돌릴 수 있다. 우리나라도 미국이나 유럽처럼, 위험을 감수하기 어려운 경제주체는 적정 비용으로 위험을 회피하고, 위험을 감수하려는 투자자는 적정 대가를 받으면서 위험을 인수하는 효율적인 금융시스템을 도입해야 한다. 그래야 생산적 금융 활성화는 물론 장기적으로 국가 경제 발전에 기여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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