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 APEC 협상, 미국내 반응은 ‘떨떠름’

공완섭 재미언론인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발 글로벌 무역전쟁이 분수령을 맞고 있다. 한국에서 열린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APEC) 정상회의를 계기로 상당수 주요 국가들과의 관세협정이 매듭지어지고 있지만, 아직도 갈 길이 멀다. 1차 협상이 끝난 국가는 34개국. 나머지 160여 개국에 대한 관세협상은 남아 있다.

이번 정상회담에서 미국은 한국과는 3500억 달러 현금 투자를 2000억 달러의 현금 투자와 1500억 달러의 조선업 협력투자로 나누되 연 200억 달러 한도 내에서 진행키로 했다. 상호관세와 자동차 및 부품관세도 15% 선에서 합의, 한국으로선 상당한 양보를 얻어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중국과는 관세를 전체적으로 20% 선으로 내리고, 상호관세 유예 추가 연장, 농산물 무역 확대, 알래스카산 석유와 가스 구매 등에 대해서도 상당 부분 합의를 이끌어 냈다.

트럼프, 對중국 성과 과시…증시는 냉담

트럼프 관세철학은 그간의 불공정 거래를 바로 잡고, 미국의 제조업을 부활시키며 종국에는 미국을 더 위대하게 만들겠다는 것이다. 과연 트럼프가 정한 좌표와 항로대로 미국호는 가고 있을까. 기업과 투자자, 소비자들은 트럼프 선장에게 박수를 보내고 있는가.

미국 내 분위기는 전혀 그렇지 않다. 가장 민감한 반응을 보인 건 투자자들. 트럼프가 시진핑과의 회담 성과에 대해 “10점 만점에 12점”이라고 너스레를 떨었지만 증시는 일제히 하락세로 마감됐다. 양국이 관세전쟁에 마침표를 찍은 게 아니라 ‘휴전’을 선택했고, 추가 협상의 여지도 불투명하다고 보았기 때문이다.

트럼프는 제조업 부흥을 외치고 있지만 관세전쟁 소식이 전해진 이후 불확실성 증가와 수입 원자재 가격 상승으로 건설 프로젝트들이 줄줄이 취소 됐다. 제조업 일자리도 크게 줄어들고 있다. 기업들은 관세 문제가 해결될 때까지는 바늘방석에 앉아 있는 심정이다. 대규모 채용이나 감원에 신중을 기하고 있는 분위기다. 게다가 불법이민자 단속으로 생산직 근로자를 붙잡아 두는 것도 쉽지 않다. 수백 명의 이민 노동자들이 한꺼번에 해고되는 사례가 잇따르면서 트럼프 지지기반인 농가에도 직격탄을 안겨 주고 있다.

미국의 제조업이 후진성을 면치 못한다는 평가가 나온 지는 오래됐다. 예컨대, 생산 자동화와 공장 내 로봇 활용도 면에서 한국이나 중국에 크게 뒤처져 있다. 제조업 로봇 사용 비율은 근로자 1만 명당 한국이 1010대로 가장 많고, 중국은 470대다. 미국은 고작 300대 수준. 다른 나라 손목을 비틀어 투자를 유치한다 한들 공장을 지으려면 자동화 등에 막대한 초기 투자가 필요하고, 이를 정착화하는 데도 전문인력 확보, 교육, 세제 지원 등이 뒤따라야 하는데 앞서가는 제조업 강국들과 경쟁할 수 있겠느냐는 회의론이 많다. 이미 금융, 서비스, 인공지능(AI)분야 중심으로 재편된 산업구조를 뒤바꾸기에는 역부족이라고 보는 것이다. 높은 인건비도 걸림돌이다.

관세 부메랑 인플레로 소비자만 타격

AI붐도 근로자들에겐 반갑지 않다. 지난 달 1만4000명에 이어 내년 초 추가 감원하겠다는 아마존에 이어 구글, 마이크로소프트, 메타 등 주요 대기업들도 AI혁신으로 인한 대규모 감원을 예고하고 있다. 그러니 트럼프의 제조업 부활 구호가 피부에 와 닿지 않는 것이다.

미국 내에서도 트럼프의 ‘벼랑 끝 관세 전략’이 환영 받지 못하는 이유는 간단하다. 국제 무역 질서와 경제의 근간을 흔들고, 금융 시장과 공급망을 교란시켜 당장 소비자 부담만 커졌기 때문이다. 관세전쟁 수개월 만에 소비자들에게 돌아온 건 물가폭등뿐이었다. 자기가 쏜 화살이 자국 기업과 소비자들에게 부메랑이 돼 날아 오고 있다는 걸 트럼프만 모르는 것 같다.

Wanseob.kong@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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