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번 협상의 불씨는 트럼프 행정부의 보호무역 강화 선언에서 시작됐다. 트럼프 대통령은 2월 10일, 철강·알루미늄 수입품에 25% 관세 부과를 예고하며 첫 신호탄을 쏘았다. 여기서 압박은 멈추지 않았다. 사흘 뒤인 13일, 트럼프 대통령은 “4월 2일부터 상호관세를 부과하겠다”고 선언하며 동맹국을 포함한 모든 교역국을 협상 테이블로 끌어냈다. 3월 26일에는 외국산 자동차와 부품에 25% 관세를 추가 예고했고, 불과 나흘 뒤인 3월 30일에는 “모든 국가에 상호관세를 적용하겠다”는 방침까지 내놨다. 철강에서 자동차로 번진 관세정책이 사실상 전면적인 보복관세 체제로 바뀌자, 한국의 주력 수출 산업 전반이 압박에 직면했다.
협상의 흐름은 여름 들어 급격히 달라졌다. 트럼프 대통령이 7월 8일, 한국 정부에 보낸 서한에서 “8월 1일부터 상호관세 25%를 부과하겠다”고 통보하면서다. 워싱턴발 압박은 곧바로 청와대를 흔들었고, 한국 정부는 긴급 협상단을 꾸려 대미 외교전에 돌입했다. 7월 30일, 구윤철 부총리를 단장으로 한 협상단이 백악관을 찾아 트럼프 대통령과 면담했다. 양측은 밤샘 협의 끝에 상호관세·자동차 관세 인하와 3,500억달러 규모의 대미 투자를 포함한 ‘큰 틀의 합의’에 도달했다. 당시 백악관은 “공정하고 상호이익적인 합의가 임박했다”고 밝혔고, 한국 측은 “세부 조율만 남았다”며 낙관적 기류를 보였다.
그러나 상황은 쉽게 풀리지 않았다. 8월 26일, 이재명 대통령과 트럼프 대통령이 백악관에서 첫 정상회담을 가졌지만 공동성명은 채택되지 못했다. 투자 일정과 자동차 관세 조정 시점을 둘러싼 이견이 좁혀지지 않아서다. 협상은 다시 교착상태로 빠졌고, ‘압박과 인내의 외교전’이 두 달 가까이 이어졌다.
막판 돌파구는 10월 29일, 경북 경주에서 열린 APEC 정상회의 계기 제2차 한미 정상회담이었다. 양국은 이 자리에서 모든 쟁점을 최종 조율했고, 이재명 대통령은 회담 직후 “한미 관세협상 타결”을 공식 발표했다. 상호관세와 자동차 관세 인하, 대미 투자 이행 일정 등이 합의문에 포함된 것으로 전해졌다.
이번 협상 타결로 철강·자동차 등 한국 주력 산업의 수출 불확실성은 크게 줄게 됐다. 정부는 이번 합의가 관세 부담 완화뿐 아니라 한미 공급망 협력의 안정성을 높이는 계기가 될 것으로 보고 있다. 특히 미국 내 대규모 투자 이행이 병행되면서, 한국 기업들은 고율 관세 리스크를 피하면서도 미국 시장 내 입지를 강화할 수 있을 것으로 전망된다.
외교적으로는 한미 관계의 균형 회복이라는 상징적 의미도 크다. 트럼프 대통령이 내세운 ‘상호관세’ 원칙이 협상의 출발점이었다면, 이재명 대통령은 실리를 앞세운 절충안을 통해 결과를 이끌어냈다. 283일 동안 이어진 관세전은 이렇게 막을 내렸지만, 보호무역주의의 흐름은 여전히 세계 통상질서의 새로운 변수로 남아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