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학세상] 감염병 예방에는 개미만도 못한 인간

강석기 과학칼럼니스트

이달 초 일본에서 독감이 유행한다는 뉴스에 별일이다 싶었다. 가까운 나라들도 조기 유행 가능성이 크다는 예상대로 지난 17일 우리나라 역시 독감 유행주의보를 발령했다. 예년보다 무려 두 달이나 빠른 시점이다. 그래서인지 길을 가다 보면 병원 출입구마다 ‘어르신 무료 독감 접종’이라는 문구의 플래카드가 보인다.

독감 경보가 울렸음에도 대중은 별 관심이 없는지 지하철이나 버스에서 마스크를 쓰고 있는 사람이 별로 없다. 불과 수년 전 실내는 물론 그럴 필요가 없는 길거리에서도 다들 마스크 차림으로 다니던 모습이 실제 일어났던 일인가 의심이 들 정도다. 감염병을 대하는 우리의 태도는 본능이 아니라 의지라는 생각이 들지 않을 수 없다.

인간은 고도의 지능을 지니게 진화했다지만 이는 수렵채집인으로서 생존과 번식에 성공하는 데 최적화한 방향이다. 수십에서 많아야 백여 명으로 이뤄진 무리가 먹을 것을 찾아 떠도는 삶에서 마주하는 각종 문제를 해결하는 게 본업이라는 말이다. 개인이 안정적인 관계를 맺을 수 있는 한계가 150명이라는 ‘던바의 수’가 나온 배경이다.

따라서 불과(인류 진화의 관점에서) 1만 년 전 농업의 발명으로 시작해 수천 년 전부터 도시를 건설해 수만 명이 모여 사는 삶의 행태가 우리의 마음에는 여전히 낯설다. 그 결과 인류는 인구 밀집에 수반되는 각종 감염병의 창궐에 취약했고 과학기술의 발달로 영향을 최소화하는 해결책을 마련했음에도 코로나19 시절처럼 강제하지 않는 한 사람들의 협조(실천)를 기대하기 어렵다. 여전히 계절성 독감이 유행하는 이유다.

반면 개미는 도시거주민으로서 인간보다 훨씬 뛰어난 적응력을 보인다. 이들은 도시(개미집)를 건설하고 생활하는 데 최적화하게 진화한 ‘본능적 진(眞)사회성 동물’이기 때문이다. 도시에 전염병이 창궐할 조짐이 보이면 누가 시키는 것도 아닌데 각자 알아서 대응한다. 즉 치명적일 수 있는 곰팡이에 감염된 개미는 집을 나와 밖에 머문다. 자발적인 자가격리인 셈이다.

최근 학술지 사이언스에는 개미의 대응이 이런 개별 행동뿐 아니라 도시설계에도 반영된다는 놀라운 연구 결과를 담은 논문이 실렸다. 영국 브리스톨대 연구팀은 개미가 집을 지을 때 곰팡이에 감염된 개미의 영향을 받는지 알아봤다. 그 결과 주위에 감염된 개미가 있으면 개미집 출입구 사이의 간격이 멀어지고 내부 방 사이를 연결하는 통로의 개수도 줄어드는 것으로 밝혀졌다. 즉 병원체가 퍼질 가능성을 최소화하는 방향으로 네트워크 설계를 수정한 셈이다. 연구자들은 이에 대해 ‘건축면역(architectural immunity)’이라는 멋진 말을 만들었다.

인간 역시 진사회성 동물이라지만 안타깝게도 본능이 아니라 발명(문화)의 결과다. 지난 세기 공산주의 실험이 실패한 근본적인 이유다. 따라서 초고밀도 사회 같은, 자신이 만들었지만 낯선 환경에 제대로 대응하려면 과학기술에 기반한 정책과 교육(정보전달)을 지속해야 한다.

▲타고난 도시거주민인 개미는 감염병 유행 조짐이 있으면 본능적으로 대처한다. 최근 연구에 따르면 곰팡이에 감염된 개미가 있을 때(pathogen)는 없을 때(control)에 비해 개미집 출입구 사이의 간격이 넓어지고 방 사이의 연결도 줄여 병원체 확산을 막는 방향으로 네트워크를 바꾸는 것으로 밝혀졌다. 사진출처 ‘사이언스’
노벨과학상 수상자를 절반 가까이 배출한 과학기술 최강국 미국의 보건복지부 장관은 아이러니컬하게도 백신 음모론을 지지하는 로버트 케네디 주니어다. 백신 음모론이란 백신 접종은 각종 부작용으로 득보다 실이 크고 백신 개발은 결국 제약사의 배를 불리기 위함이라는 관점이다. 그래서인지 미국 보건당국은 독감이나 코로나19 백신 접종을 권하지 않고 조류독감 같은 미래의 위협에 대응하는 백신 개발에 대한 지원도 끊었다.

도시거주민으로서의 지능은 사람이 개미에 한참 못 미친다는 생각이 문득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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