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일경 사회경제부 차장

출간 즉시 뉴욕 타임스 베스트셀러에 오른 미국 하버드대학교 정치학과 교수 스티븐 레비츠키와 대니얼 지블랫 공저 ‘어떻게 민주주의는 무너지는가’ 내용 중 일부다.
요새 우리나라에선 국정감사가 한창이다. 며칠 전 더불어민주당이 발표한 사법 개혁안을 두고 국감장에 나온 전국 법원장들은 우려하는 목소리를 숨기지 않았다. 어느 쪽이 옳고 그른지에 대해 시시비비를 가리자는 논쟁이 뜨거운 만큼 기시감 드는 얘기들을 재탕하고 싶지 않다. 하지만 세계사적 평가가 지나간 해외 사건과 ‘데자뷔’ 되는 현실은 씁쓸하다.
‘어떻게 민주주의는 무너지는가’ 가운데 인용한 또 다른 구절이다. 정치학자로서 저자들은 “이들 사례에서 독재자는 민주주의 게임의 심판을 매수했다”며 “헌법적 도전에 대한 방패, 그리고 정적을 공격하는 강력하면서도 ‘합법적인’ 창을 차지했다”라고 썼다.
검찰 개혁부터 사법 개혁까지 권력 구조를 재편하는 데 한 때 뜨거웠던 개헌 논의는 실종된 상태다. 최근 만난 국내 헌법 전문가는 “집권 세력에 유리한 현행 헌법을 고쳐 자기들 손으로 힘을 빼겠느냐”고 반문했다.
삼권 분립 핵심은 행정‧입법‧사법 간 ‘견제와 균형’이다. 견제와 균형은 마치 저울의 양 팔처럼 서로 정반대 방향에 위치해 무게 중심을 맞추는 작업이다. 대한민국 번영과 발전이라는 같은 목표를 향하지만 종착역에 도착하는 길이 하나뿐인 건 아니다. 그 여정까지 예외 없이 한 목소리로 일사분란 해야 한다는 뜻을 내포하지는 않는다.
건전한 갈등과 긴장 관계를 국론 분열과 혼동하는 우(愚)를 범하지 않기를 바란다. 그러기 위해선 상대방을 끌어안는 포용이 필요하다. ‘어떻게 민주주의는 무너지는가’라는 책에 붙은 부제는 ‘우리가 놓치는 민주주의 위기 신호’다.
각자가 지지율 20%대를 흔들림 없이 받쳐주는 소위 콘크리트 지지층에 갇혀 전 국민의 절반 이상이 어떤 생각들을 하는지 헤아리는 자세가 뒷전으로 밀려나지 않기를 기대한다.
집값, 금값, 은값, 주식, 코인 등 월급만 빼고 죄다 오른다는 세상이다. 인플레이션이 덮친 민생 경제에 사법 개혁이나 검찰 개혁은 해법이 될 수 없다. 거대 담론 싸움에 매몰돼 있을 때가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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