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논현논단_조장옥 칼럼] 재정지출에 대한 미신을 버려라

서강대 경제학과 명예교수ㆍ前 한국경제학회 회장

美 대공황 탈출 뒤 불어난 정부부채
日 장기불황 속 재정 확대 ‘역효과’
소규모 재정지출 만병통치약 아냐

경제학을 공부하는 가장 큰 이유 가운데 하나는 정책을 이해하는 것이다. 경제학에서 다루는 정책은 무수히 많다. 그 가운데 경제 전체(거시경제)를 대상으로 하는 정책에는 크게 재정정책과 통화·금융정책이 있다. 재정정책은 대공황이후에 거시경제정책의 총아로 등장하였다고 할 수 있다. 1930년대 극심한 불황과 높은 실업률을 낮추기 위해 공공사업을 통한 재정지출을 크게 증가시킬 것을 권고한 학자가 케인스(John M. Keynes, 1883-1946)였다. 그는 1936년에 출간된 그의 저서 고용, 이자 및 화폐에 관한 일반이론(The General Theory of Employment, Interest and Money)에서 고용을 창출하는데 수요의 중요성을 강조하고 공공사업 등을 통해 재정지출을 크게 증가시킬 것을 미국 루스벨트(Franklin Delano Roosevelt, 1882-1945) 정부에 권고하였다.

그러나 대공황을 빠져 나오는데 재정정책, 보다 넓은 의미에서 뉴딜(New Deal)정책이 얼마나 유효했는가에 대해서는 아직도 논쟁중이다. 1941년 제2차 세계대전에 참전하기 전만 해도 미국의 실업률은 15% 정도에서 유지되고 있었다. 1933년 최고조에 달했을 때 25%정도에서 15%까지 하락하였으니 효과가 있었다고 주장할 수는 있으나 10년 정책의 결과로는 초라했다고 볼 수밖에 없다. 뉴딜과 확장적 재정정책이 대공황을 해결했다고 말하기 어려운 이유이다.

정책을 실행하는 방식에도 문제가 있었다. 전쟁에 뛰어들기 전까지 대공황의 한 가운데에서도 미국의 재정지출은 GDP대비 10% 미만이었다. 지금의 기준으로 보면 상상하기 어려울 정도로 낮은 수준이었다. 그러나 대공황 이전의 재정지출과 비교하여 보면 그나마 높은 수준이었다. 전쟁 시기를 제외하면 대공황 이전 미국의 재정지출은 GDP대비 5%에도 크게 미달하였다. 대공황이 본격적으로 전개되기 직전 1929년(2.92%)이나 1930년(2.98%)의 경우처럼 평상시 미국의 재정지출은 정부기관을 운영할 수 있는 정도의 수준으로 낮게 유지되었으며 총수요를 관리하기 위해서 사용된 적은 없었다. 정부예산을 정부의 운영 이외의 목적, 특히 수요를 관리할 목적으로 사용하는 것은 상상조차 하지 못했던 것으로 보인다.

제2차 세계대전은 미국의 재정지출을 극적으로 증가시켰다. 1940년 GDP의 9.0%이던 미국의 재정지출은 1941년 12월 7일 일본의 진주만 공습으로 전쟁에 참가하면서 1942년에는 20.3%, 1945년에는 32.2%까지 급격하게 증가하였다. 대공황 때와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의 재정팽창이 이루어졌다. 재미있는 것은 막대한 재정지출의 증가가 미국을 대공황으로부터 완전히 탈출시켰다는 사실이다. 1945년 1인당 명목 GDP는 1940년의 2.2배였으며 실질가치로는 54.7% 증가하였다. 당연히 그와 같은 GDP의 증가는 실업률 감소 때문에 가능하였다. 1940년 15% 정도이던 월별 실업률이 전쟁이 끝난 1945년 8월에는 1.51%로 낮아져 있었다. 징집되었던 군인들이 사회로 복귀하면서 같은 해 9월에는 실업률이 3.4%까지 치솟았으나 그 이후로는 유가파동, 금융시장 붕괴, 유행병 등 위기의 시기에도 대공황 때와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낮은 수준에서 유지되었다.

미국의 GDP대비 정부지출 비중은 제2차 세계대전이 끝난 이후에도 그 이전 수준으로 돌아가지 않고 높게 유지되었다. 오히려 추세적으로 증가하였으며 2021년 코로나 위기의 경우에는 제2차 세계대전 때와 유사한 수준인 30%까지 치솟았다. 제2차 세계대전을 전후해서 미국 재정정책의 기조가 완전히 바뀐 것이다. 1960년대의 호황을 거치면서 재정지출의 효과에 대한 미신이 정책담당자를 비롯하여 학자와 정치인들 사이에 널리 퍼졌다. 그리고 세계의 선진국들은 20세기 후반 내내 정부부채를 쌓았다. 대표적인 나라가 일본이다. 1990년대 초부터 일본은 장기불황으로부터 탈출하기 위해서 확장적 재정지출을 지속하였으나 불황은 20년 이상 지속되었다. 그사이 정부부채는 GDP의 258.4%(2020년)까지 치솟았다.

대공황, 제2차 세계대전, 전쟁 이후 미국과 일본의 경험으로부터 유추할 수 있는 것은 재정지출이 만병통치약이 아니라는 사실이다. 엄청나게 큰 재정지출이 아니라면 재정을 경기안정화와 미세조정(fine tuning)을 위해 쓸 수 있는 시대는 지났다고 보아야 한다. 이미 지나치게 많은 재정적자와 정부부채가 쌓여 있기 때문에 재정정책은 능력을 상실하고 있다. 특히 작은 재정지출을 되풀이 하는 것은 마약을 이용해 건강을 회복할 수 있다는 미신과 다를 바 없다. 지금 대한민국에 만연해 있는 재정우선주의가 위기를 예비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걱정스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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