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그러나 정상 간의 합의나 언급이 없는 것이 장관이나 통상책임자에게 주는 부담은 너무 크다. 국방, 경제, 통상 등 주요 의제에 대하여 정상 간에 명확한 원칙과 기준이 언급되었으면 하는 아쉬움이 남는다. 농산물 분야를 예를 들면, “쌀과 소고기 등 농산물은 이미 WTO 규정과 한미 FTA에 따라 안정적으로 교역되고 있다”는 대통령 언급만 있었어도 후속 협상이나 조치에 훨씬 부담이 적을 것이다.
소고기 30월령 제한 해제, 쌀 시장 추가 개방, 과채류 검역 기간 단축 등이 한미 간 농산물 분야 주요 이슈이다. 후속 조치에 도움되고자 몇 가지 제안을 한다. 미국산 소고기 ‘30개월령’ 제한 해제 요구대응이다. 미국은 30개월령 제한을 ‘잠정 조치(transitional measure)'로 간주하고 있는데 한국은 16년째 이를 유지하고 있다. 일본과 대만도 이미 이 제한을 해제했다. 높은 비관세 장벽으로 인식하고 있는 월령 제한 조치 해결을 위해 두 가지를 제시한다. 첫째, 협상 테이블에 앉은 정부 대표자보다 양국 생산자 단체에 역할을 주자. 이들이 다양한 교류와 소통으로 이해를 높이고 풀어갈 수 있다. 미국 소고기의 광우병 발생으로 양국 간 교역이 중단되고, 소통도 막혀있을 때, 필자는 미국 소생산자협회(NCBA)의 이사였던 그래그 다우드(Gregg Doud)와 수시로 만나 소통하면서 한국 정서와 상황을 자세히 설명하였다. 한국 축산 단체가 미국을 방문하여 양국 축산 단체 간에 교류하는 기회도 얻었다. 직접적 이해관계자의 소통과 교류는 공감대를 넓힌다. 그래그 다우드는 나중에 트럼프 행정부 1기 미 무역대표부(USTR) 농업협상 대표로 발탁되었으며 한미 간 소고기 이슈에 대해 충분한 인식을 하고 있다. 둘째, 정부 고위관계자 인식 전환도 중요하다. 광우병 이슈로 중단된 미국 소고기 수입이 양국 간 협상으로 재개되었다. 그러나 수입된 미국 소고기에서 작은 뼛조각이 발견되어 한국은 전량 반송조치 하였다. 미 농무부 고위관계자는 이 조치를 항의하면서 많은 불평과 비판을 하였다. 고민 끝에 마이크 조한스(Mike Johanns) 미국 농무부 장관과 고위관계자를 한국 대사관저에 초청하는 자리를 만들었다. 만찬을 하면서 한국 소고기 상황을 설명하는 등 다양한 노력을 한 결과 부정적 인식을 상당 부분 해소하였다. 비공식적 교류와 소통 확대는 협상 대표자의 운신 폭을 넓혀줄 것이다.
쌀 시장 추가 개방 요구는 쌀이 한국의 ‘민감품목이니 봐달라’는 방어 논리보다는, 공격적 전략으로 대응해야 한다. 쌀은 한국 국민에게 민감한 품목임은 당사자들도 잘 안다. 한국은 두 차례 관세화를 유예하는 등 어려운 여건 속에 WTO 최소시장접근(MMA) 방식으로 연간 40만 8천 톤의 쌀을 수입한다. 최근 수입상황을 보면 미국산 쌀은 13만 2천 톤으로 약 32%를 차지한다, 중국산이 15만 7천 톤(38%), 베트남이 5만 5천 톤(13%)이다. 미국, 중국, 호주, 태국, 베트남에 국가별로 할당된 쿼터를 늘리려면 5개국 동의가 필요하고, WTO 승인, 그리고 국내 국회 동의도 필요하다. 미국산 쌀의 쿼터 외 수입에는 513%의 고율 관세가 적용되니 사실상 수입이 어렵다. 미국 쌀의 추가 개방은 ‘국민 정서’라는 명분에도 맞지 않는다. 법적 절차적 제한도 많다. ‘시장 개방이 가져올 실익도 불투명하다’는 공격적 전략을 추진함과 동시에 가격과 품질, 소비자 신뢰를 높이라는 시장 원리를 강조하자.
미국산 과채류 검역 신속화 요구는 원칙을 지키되, 유연한 선택도 필요하다. 미국산 딸기(1단계), 사과(2단계), 배(3단계)의 검역 기간 단축 요구는 원칙을 지키되, 부당하거나 불합리한 절차는 과감히 개선해야 한다. 다만, 미국산 과채류의 검역 신속화는 바로 중국 등 다른 국가로부터 유사한 압력을 받게 된다는 점이다. 시장은 미국이 열었는데 실익은 중국이 가져갈 수 있다. 선택 방안으로 한국산 과채류의 미국 수출과 연계해야 한다. 과거 10년 이상 미국 검사 과정을 통과하지 못했던 한국산 포도 등 과채류의 미국 수출도 소고기 수입 이슈를 적절히 활용하여 해결하였다.
협상 마무리를 위해 공개되지 않은 어떠한 비공식적 합의를 해서는 안 된다. ‘한중 마늘협상’이 좋은 사례이다. 휴대폰 등 금액이 큰 공산품의 중국 수출확대를 위해 금액이 작은 마늘 고율관세를 철회하라는 압력이 높았다. 협상의 조기 마무리를 하면서 2000년 작성된 ‘이면 합의’ 가 2003년 밝혀져 농업인은 물론 국민의 강한 반발과 정치적 후폭풍을 불러왔다. “한중 마늘협상, 국민을 속였다”는 언론의 대대적 비판이 있었고, 장·차관, 통상교섭본부장, 청와대 수석이 교체되고 관련자들이 문책을 받았다. 통상 협상은 ‘국익’이 우선이고 원칙이 중요하나, 냉철한 분석을 통한 실용적 전략을 추진해야 한다. 한미 간 정상회담으로 얻은 성과와 여운이 실무 협상에서 진정한 성과로 이어지기를 기대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