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강대 명예교수/화학·과학커뮤니케이션
에너지 정책, 분산은 위험한 발상
‘AI 3대 강국 꿈’ 거부나 다름없어

더불어민주당이 산업통상자원부의 에너지 정책 기능을 기후에너지환경부로 넘기는 정부조직개편안을 밀어붙이기 시작했다. 구체적인 내용이 묘하다. 에너지 정책을 통째로 넘기는 것이 아니다. 정작 기후 위기와 직결된 화석 에너지 정책과 함께 원전 수출 업무는 산업부에 그대로 남겨둔다. 자칫 기후에너지환경부가 원전을 줄이고, 신재생을 확대하는 ‘탈원전 시즌 2’의 시작일 수도 있다.
산업부가 통합 관리하던 에너지 정책을 두 부처로 분산시켜 비효율화하는 시도는 경제·민생·안보를 위협하는 위험한 발상이고, 에너지 정책의 복합성·복잡성을 전혀 이해하지 못하는 여당의 인식을 적나라하게 보여주는 부끄러운 시도이다. 그뿐이 아니다. 안정적이고 충분한 전력 공급이 필수인 이재명 대통령의 ‘인공지능 3대 강국’의 꿈에 대한 실질적 거부다.
전기가 기후 위기 극복에 꼭 필요한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국가적 차원에서 에너지 정책의 근간은 여전히 석유·석탄·천연가스로 구성된 화석 에너지다. 기후 위기의 주범이라는 화석연료가 차지하는 비중이 여전히 80%를 넘는다. 세계적으로도 그렇고, 우리도 마찬가지다. 산업현장에서 소비하는 화석 에너지를 안정적으로 공급하는 것이 에너지 정책의 핵심일 수밖에 없다는 뜻이다.
태양광·풍력 등 재생에너지가 빠르게 늘어나고 있기는 하지만 경제적·기술적으로는 여전히 먼 미래의 에너지일 수밖에 없다. 우리나라에서 전력 생산에서 재생에너지가 차지하는 비중이 지난해에 처음으로 10.5%를 기록했을 정도다. ‘햇빛’(태양광)과 ‘바람’(풍력)이 기후 위기를 해결해 주고, 우리의 노후 대책까지 마련해줄 것이라는 기대는 공허한 꿈이다. 그런데도 ‘에너지 정책 기능’을 기후에너지환경부로 넘긴다고 호들갑을 떠는 여당의 진짜 의도가 의심스럽다.
에너지 정책의 본질에 대한 인식도 중요하다. 에너지의 안정적인 공급이 최우선일 수밖에 없다. 원전을 비롯해 더 효율적인 신기술을 개발하고, 에너지 산업을 육성하는 것이 에너지 정책의 핵심이 되어야만 한다. 물론 환경에 대한 부담도 걱정해야 한다. 그렇다고 ‘육성’과 ‘규제’를 절대 한 부처에서 버무릴 수 없다. 스포츠 경기에서 ‘선수’가 ‘심판’의 역할을 할 수 없는 것과 같은 일이다. 영국의 ‘에너지기후부’(2008)와 독일의 ‘경제기후보호부’(2021)가 실패한 경험도 주목해야 한다.
망국적인 탈원전의 망령에서 확실하게 벗어나야 한다. “원전이 위험한 에너지라는 생각은 여전하다”고 했던 이재명 대통령의 후보 시설 발언은 이제 잊어야 한다. 온실가스를 전혀 배출하지 않는 청정에너지인 원전을 포기하면, ‘에너지 대(大)전환’으로 포장한 탈원전 시즌 2는 또다시 실패할 수밖에 없다. 세상에 공짜는 없는 법이다.
단순히 ‘위험할 수 있다’는 이유로 원전을 포기하는 것은 비겁한 패배주의다. 자동차도 위험하고, 비행기는 더 위험하다. 그런데도 아무도 탈(脫)자동차를 외치지 않는다. 안전을 강화하는 신기술과 합리적이고 효율적인 제도를 통해 위해 가능성을 극복하겠다는 의지가 훨씬 더 중요하기 때문이다. 원전이 위험할 수 있지만, 기술 개발과 규제 강화를 통해 안전하게 활용할 수 있다는 확신이 필요하다는 뜻이다. 세계 최고 수준의 안정성·경제성을 확보한 우리의 원전 기술을 섣불리 포기할 이유가 없다.
기후 위기에 대한 지나친 관심도 경계해야 한다. 기후 위기 대응을 위한 국제 사회의 노력에는 반드시 동참해야 한다. 그렇다고 탄소중립을 화려한 잔치판으로 착각해서 앞장서서 막춤을 출 이유는 없다. 기후 위기를 정치적으로 목적에 이용하는 시도도 절대 용납할 수 없다. 풍력을 통째로 거부하는 미국의 현실도 무작정 외면할 이유가 없다. 태양광에 무리하게 투자했다가 초대형 정전 사태를 경험했던 스페인의 사례도 기억해야 하고, 이명박 정부에서 뚜렷한 명분도 없이 억지로 만들었던 교육과학기술부가 남긴 혼란도 잊지 말아야 한다.
차라리 독립적인 ‘에너지부’를 만드는 것이 훨씬 더 현명한 선택일 수 있다. 현대의 에너지 정책은 국가 발전과 국민 생활에 필수적이면서 동시에 기술적·정책적으로 고도의 전문성을 갖춘 적극적인 통합 관리가 반드시 필요한 분야이기 때문이다. 미국도 에너지부를 운영하고 있고, 심지어 노벨 물리학상 수상자를 장관에 앉히기도 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