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강대 경제학과 명예교수ㆍ前 한국경제학회 회장
과도한 정규직보호 정의롭지 않아
노동개혁없이 경제난 타개 어려워

2010년 이후 한국 경제는 장기 저성장국면에 접어들었다. 2010년부터 2024년까지 국내총생산(GDP)의 연평균 성장률은 2.4%이고 농업, 광공업, 서비스업의 연평균 성장률은 각각 2.1%, 2.5%, 2.4%였다. 이제 특별한 사건이 일어나지 않는 한 과거와 같은 고도성장은 일어날 수가 없다. 1인당 실질 GDP가 연 3% 이상 성장한다면 매우 반가울 것이다. 국제기구에서는 이미 한국을 선진국의 범주에 포함시키고 있다. 반길 일이지만 경제성장이라는 면에서는 선진국 유형의 저성장에 들어섰음을 선언하는 것이나 마찬가지이다. 이제 잠재성장률이 2% 미만이라는 연구결과도 적지 않다.
1960년대 중반부터 2010년경까지 한국 경제가 이룬 눈부신 성과는 누군가에게는 기적이고 다른 누군가에게는 온갖 부조리가 함축된 압축성장이다. 기적이라고 보는 사람들은 자본주의의 긍정적인 면을 보는 경우라면 압축성장이라는 용어를 사용하는 많은 인사들은 경제성장의 어두운 면을 보는 경우가 많다. 고도성장의 뒷면에는 당연히 어두운 그림자가 나타나기 마련이다. 고도성장의 과정에서 소득분배가 악화되고 다양한 형태의 양극화가 심화되고 고착화되었다. 과도한 청년실업은 해결될 기미가 없고 인구는 늙어가고 있다. 그 사이 기업, 가계 및 정부의 부채는 쌓이고 그 결과 큰 위기도 겪었다. 그에 대한 반성과 아픔이 아물기도 전에 정치는 하루가 다르게, 한없이 저질의 길로 추락하고 있다.
지난 70년간 한국의 경제발전이 잘 교육된 노동 때문에 가능하였다고 주장한다고 해도 크게 지나치지 않다. 산업수요에 부응하는, 높은 인적 자본을 갖춘 노동이 공급될 수 없었다면 한국의 경제발전도 없었을 것이다. 우리의 경제발전 과정에서 노동자들이 큰 역할과 헌신을 했던 사실을 모르는 사람이 없을 것이다. 그러나 1987년 이후 민주화 과정과 극심한 노사분쟁을 거치면서 그 이전에 비해 근로자 보호 측면이 강조되기 시작하였다. 그러나 그와 같은 갈등의 결과 나타나고 세월이 깊어지면서 고착화된 현상이 노동시장의 2중 구조이다. 정규직이라는 이름으로 보호받는 집단은 지나치게 보호되고 비정규직이라고 명명된 집단은 지나치게 소홀한 보호를 받게 된 것이다.
정규직 노동을 지나치게 보호하기 때문에 고용과 해고가 유연한 비정규직 시장이 확대되었다. 현재 한국의 비정규직 비중은 전체 고용의 40%에 근접하고 있다. 동일 노동을 하는 근로자가 한 사람은 과보호와 높은 임금을 받고 다른 사람은 보호가 낮고 임금 또한 상대적으로 낮은 2중 구조와 양극화가 나타난 것이다. 이와 같은 현상의 첫째 문제는 정의롭지 못하다는 점이다.
이론에 따르면 동일한 노동을 하는 근로자 가운데 보호를 덜 받는 노동자의 임금이 높아야만 한다. 그와 같은 현상은 서구의 노동시장에서 관찰될 수 있다. 그러나 한국 노동시장에서는 보호가 빈약한 노동자가 동일노동을 하지만 오히려 낮은 임금을 받는다. 이와 같은 현상은, 심하게 말한다면, 정규직 노동자가 과보호의 법적 장치를 이용하여 보호가 약한 비정규직 노동자를 착취하는 현상이라고 볼 수밖에 없다.
전해들은 얘기이지만 이제는 잘나가는 기업들이 경력직을 선호한다고 한다. 경력이 없는 노동자를 정규직으로 고용한 다음 능력이 되지 않아도 해고할 수가 없기 때문에 경력을 통해 증명된 노동자를 주로 고용한다는 것이다. 결국 중소기업은 대기업을 위한 경력양성소로 전락하고 있는 셈이다.
역설적이게도 높은 청년실업률에도 중소기업에 인력난이 나타나는 중요한 이유 가운데 하나가 아닐까 생각해본다. 누누이 말하지만 이러한 비정상은 노동시장의 2중 구조 때문이다. 아마도 이러한 노동시장의 2중 구조의 폐해를 모르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그러나 이를 해결하고자 하는 노력은 전혀 이루어지지 않고 있다. 오히려 대한민국의 국회는 소위 노란봉투법이라는 것을 통해 소수인 정규직 노동조합의 보호를 강화하였다. 노동시장의 2중 구조에 철벽을 친 것이다. 그에 따른 비정규직의 희생은 불을 보듯 뻔하다. 개탄스럽다.
지금 세계경제 환경이 급격히 변화하고 있다. 미국에서 트럼프 정권이 들어서면서 자국우선주의가 그 어느 때보다 뚜렷해지고 불확실성이 확대되고 있다. 더군다나 기술의 빠른 진보에 따라 고용 없는 성장이라는 현상까지 나타나고 있다. 노동시장 2중 구조의 시급한 개혁 없이 이와 같은 추세에 적절히 대응할 수 없다는 것은 자명하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