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대근 한국외대 컬처테크융합대학장 / 한국영화학회장
해외서 기획·유통…한국은 배제돼
‘인력·기술·투자’ 성장동력 일깨워

‘케이팝 데몬 헌터스’(이하 ‘케데헌’) 돌풍을 보는 한국의 속내는 복잡하다. K팝 아이돌이 악령을 무찌른다는 이야기의 애니메이션은 넷플릭스에 공개되자마자 글로벌 팬덤을 사로잡았다. K팝과 애니메이션이 결합해 뜻밖의 바람을 몰고 오자, 이게 대체 어찌 된 일인지 여러 설명이 속출했다.
한국 전통문화와 현대적 감각이 융합된 콘텐츠라는 설명은 가장 보편적이다. 호랑이나 도깨비 같은 전통문화 자원에 이질적인 아이돌 캐릭터를 과감하게 뒤섞은 창조적 시도가 돋보인다는 것이다. 이런 설명은 다양한 전통문화 자원이 한국의 미학을 시각적으로 훌륭하게 구현했다는 평가로 이어진다.
한류 콘텐츠의 확장이라는 설명도 있다. 한류가 음악, 영화, 드라마를 넘어 애니메이션에 이르기까지 세력을 넓히고 있다는 것이다. 특히 가상의 걸그룹이 부른 OST가 실제 빌보드 차트 정상에 오르면서 음악과 애니메이션의 장르 혼합을 통해 한류를 확장했으니, 이는 문화적으로나 산업적으로 의미가 있다는 해석이다.
그런가 하면, ‘케데헌’을 K콘텐츠라고 규정할 수 있는지에 관한 회의도 있다. ‘케데헌’은 미국 애니메이션 기업의 기획으로 제작됐기 때문이다. 문화적으로는 한국의 자원을 철저하게 활용하지만, 산업적으로는 한국이 완전히 배제된 상태에서 유통되고 있다는 것이다. 이 때문에 한류와 K콘텐츠가 궁극적으로 무엇인지에 관한 논의도 이어지고 있다.
이런 논의에도 불구하고 ‘케데헌’ 현상 앞에서 우리가 놓치고 있는 지점이 하나 있다. 그것은 바로 ‘케데헌’이 세대를 아우르는 애니메이션이라는 사실이다. 할리우드가 아시아의 다양한 문화 전통을 활용해서 애니메이션을 만든 건 어제오늘 일이 아니다. ‘뮬란’ ‘알라딘’ ‘쿵푸팬더’ 등이 그렇다. 그렇다면 K콘텐츠의 세계화를 이끈 우리는 왜 한국만의 고유한 문화자원으로 애니메이션을 만들지 못했나?
한국 애니메이션은 오랫동안 미국과 일본의 하청 노동에 의존했다. 기획자와 창작자를 길러내지 못한 채, 실무 기능인이 산업을 떠받쳐 왔다. 노동 조건은 열악하고, 고용은 불안정하다. 수십 년 동안 기술을 쌓아온 인력은 기회가 오면 자연스럽게 해외 스튜디오로 떠나갔다.
한국 문화콘텐츠 산업에서 애니메이션이 차지하는 비중만 보아도 이런 취약성이 드러난다. 문화체육관광부의 최근 조사에 따르면 2022년 기준 국내 애니메이션 매출액은 9200억 원이다. 이는 전체 문화콘텐츠 산업에서 0.6%의 비중을 차지한다. 출판, 음악, 영화, 게임 등 11개 콘텐츠 장르 중 가장 규모가 작다.
그나마 아동용 애니메이션이 절대다수를 차지하는 협소한 스펙트럼도 문제다. 청소년과 성인을 대상으로 하는 애니메이션은 전무하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일찍이 1990년대 시도했던 ‘블루시걸’ 같은 실패 사례를 바탕으로 노력을 거듭했다면, 한국 애니메이션도 극장 시대를 넘어 OTT(온라인동영상서비스) 플랫폼 시대를 만나 더욱 큰 활약이 가능했을 것이다. 물론 이는 기획, 투자, 제작, 유통의 사슬이 뒤얽힌 문제다.
정부의 적극적인 관심과 지원도 필요하다. 중국은 2000년대 이후 국가가 나서 애니메이션을 핵심 산업으로 지정하고 지원을 시작했다. 2000년대 초반 100억 위안 정도이던 산업 규모는 2020년 2212억 위안으로 가파르게 성장했다.
그 결과 ‘시양양과 후이타이랑’ 같은 아동용은 물론 ‘너자’ 시리즈를 위시한 성인 애니메이션의 성공 사례를 만들었다. 이런 성공의 이면에는 전문 인력을 양성하는 전략이 있었다. 한때 중국 전역에 애니메이션 관련 학과와 전공이 1500개를 넘어선 적도 있다. 인력이 기술을 만들고, 거기에 자본이 더해지면서 산업의 성장 동력을 만든 것이다.
‘케데헌’의 성공은 우리의 애니메이션 산업을 되돌아보게 한다. 호랑이와 도깨비뿐만 아니라 한복, 매듭, 갓 등이 빛내주는 전통문화와 김밥과 컵라면, 목욕탕, 한의원 등 이루 헤아릴 수 없는 일상문화가 모두 콘텐츠를 위한 자원이 된다는 사실을 깨닫는 건 그 출발점이다.
이런 문화자원이 외부에서 재현되고, 그 결과 제작사인 소니와 유통사인 넷플릭스가 대부분의 수익을 가져간다는 지적은 뼈아프다.
그러므로 우리도 더욱 적극적으로 인력을 양성하고, 기술을 개발하고, 과감한 기획과 투자를 시도해야 한다. 그래야 K콘텐츠의 가장 약한 고리인 애니메이션 산업의 생태계가 살아날 수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