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큐3일 안동역’ 낭만 가로 막은 폭발물 협박…왜 반복될까? [해시태그]


(디자인=김다애 디자이너(mngbn@))


10년 뒤에 만나자

2015년 여름, KBS 2TV ‘다큐멘터리 3일’ 카메라 앞에서 두 여대생이 제작진과 함께 손가락을 걸었습니다. 마지막 촬영지인 안동역에서 10년 뒤에 만나자는 약속. 단순한 약속일 수도 있었지만 청춘의 낭만을 담은 이 장면은 수년 뒤 온라인에서 다시 소환되며 많은 사람의 가슴을 설레게 했는데요.


(출처=KBS2 '다큐 3일' 캡처)

(출처=KBS2)


약속의 날인 2025년 8월 15일, 구 안동역 앞에는 ‘다큐 3일’ 특별판 어바웃 타임 촬영을 위해 제작진과 시민들이 모였습니다. 그러나 그 재회의 ‘낭만’은 깨지고 말았는데요. 유튜브 라이브 채팅창에 “구 안동역 광장에 폭발물을 터뜨리겠다”는 글이 게재되면서였죠. 경찰은 곧바로 특공대와 초동대응팀을 투입해 현장을 봉쇄하고 수색에 나섰습니다. 두 시간 넘는 수색 끝에 폭발물은 발견되지 않았지만 10년 만의 재회는 불안과 긴장 속에 파토가 나는 듯했는데요. 범인은 서울 동대문구의 한 고등학생으로 확인됐고 현장에서 체포됐죠. 이렇게 낭만의 무대는 허위 폭발물 신고로 얼룩져버렸습니다.

요즘 하루가 멀다 하고 ‘폭발물 협박신고’가 속출하고 있는데요. 안동역도 예외는 아니었죠. 가장 최근 사례는 17일 경기 수원 영통에서 발생했습니다.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 “배달이 늦고 직원들이 불친절하다. 폭발물을 설치하러 왔다”는 글이 올라온 거죠. 이 글을 본 네티즌이 경찰에 신고했고 곧바로 버거킹 수원영통점이 입점한 9층짜리 건물이 통제됐습니다. 건물에는 병원과 학원까지 입주해 있었던 터라 학생과 환자를 포함해 400여 명이 긴급 대피에 나섰는데요. 경찰은 특공대를 투입해 1시간 40분 동안 수색했지만 폭발물은 없었습니다.


▲ 5일 서울 중구 명동 신세계백화점 본점에 폭발물을 설치했다는 협박 글이 인터넷 커뮤니티에 올라와 신고받고 출동한 경찰이 수색하고 있다. (연합뉴스)


5일에는 서울 명동 신세계백화점 본점 폭발물 신고가 접수됐는데요. 한 온라인 커뮤니티에 “1층에 폭약을 설치했다. 오후 3시에 폭발한다”는 글이 올라온 거죠. 주말 도심을 찾은 수많은 쇼핑객은 경찰 안내에 따라 전원 대피했고 특공대와 소방당국이 백화점 내부를 샅샅이 수색했는데요. 폭발물은 발견되지 않았지만 서울 도심 한복판 대형 백화점이 수 시간 동안 사실상 폐쇄되는 초유의 사태가 벌어졌죠. 10일 서울 송파구 KSPO 돔(올림픽체조경기장)에서도 폭발물 공포가 들이닥쳤습니다. “경기장 여러 곳에 폭발물을 설치했다”는 팩스가 도착하자 현장에 있던 300여 명의 관객과 관계자가 전원 대피에 나섰는데요. 이날은 남성 그룹 더보이즈의 콘서트가 열릴 예정이었지만 협박으로 인해 공연은 지연됐죠. 협박 문건에는 일본어 번역문과 구체적 폭발 시간까지 적혀 현장은 더욱 혼란스러웠는데요. 그러나 역시 폭발물은 발견되지 않았습니다. 15일에는 해외까지 연계된 협박까지 나왔는데요. 미국 워싱턴DC 주미 한국대사관에 “오후 3시 34분 한국의 대중교통에 폭탄을 터뜨리겠다”는 이메일이 전송됐습니다. 발신자는 최근 국내에 협박 메일을 보내온 인물과 마찬가지로 일본 변호사 명의를 도용한 것으로 드러났죠. 같은 날 안동역 사건과 맞물리며 전국이 비상에 걸렸습니다.

거기다 협박의 방식은 더욱 다양해지고 있는데요. 경기 용인 에버랜드에는 “플라스틱 폭탄 4만298개를 설치했다”는 황당한 내용의 팩스가 접수됐습니다. 경찰은 정오부터 입장을 막고 특공대와 폭발물 처리반을 투입했지만 역시 허위였죠. 삼성물산은 안전을 위해 퍼레이드와 불꽃놀이를 취소했고 가족 단위 관람객이 발길을 돌리면서 현장은 허탈감에 빠졌는데요.

이렇듯 최근 사례들은 모두 허위였지만 시민들은 매번 대피해야 했고 경찰과 소방 인력은 수십에서 수백 명씩 투입됐죠. 공연이 취소되고 쇼핑몰은 문을 닫으며 ‘허위 협박’이 사회 전반을 마비시켰습니다.


(연합뉴스)


그렇다면 이런 폭발물 허위 신고는 왜 계속 반복되는 걸까요? 그 이유는 간단합니다. 처벌이 약하기 때문이죠. 한국일보가 최근 5년간 ‘허위 폭발물 협박’ 사건 판결문 30건을 분석한 결과 실형은 11건(36.7%)에 불과했는데요. 절반인 15건은 징역형 집행유예였고 벌금형은 4건이었습니다. 특히 2년 이상의 실형은 다른 범죄와 결합된 경우 2건뿐이었죠.

“자살 테러용 폭탄을 설치했다”는 글을 온라인에 올려 경찰특공대와 소방대 수십 명이 긴급 투입됐던 2022년 잠실종합운동장 폭발물 사건은 벌금 500만 원에 그쳤고 2021년 충남대 도서관 허위 폭발물 협박범은 1심에서 징역 8개월 집행유예를 받았으나 2심에서는 벌금 500만 원으로 감형됐습니다.

이처럼 솜방망이 처벌이 이어지는 이유는 대부분 위계공무집행방해죄만 적용되기 때문인데요. 이 조항은 “위계로써 공무원의 직무를 방해한 자는 5년 이하 징역 또는 1000만 원 이하 벌금에 처한다”고 규정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고의성 입증이 까다롭고 초범·반성·심신미약 등을 이유로 감형받기 일쑤죠.

이 문제를 보완하기 위해 올해 3월 공중협박죄가 새로 신설됐는데요. 불특정 다수의 생명·신체에 위해를 가하겠다고 협박할 경우 5년 이하 징역 또는 2000만 원 이하 벌금에 처하는 조항입니다. 경찰청 집계에 따르면 시행 이후 7월 말까지 관련 사건이 72건 발생해 48명이 검거됐지만 구속된 피의자는 4명(8.3%)에 불과한데요. 제도가 만들어졌음에도 현장에서 체감되는 변화는 크지 않은 셈입니다.


(출처=KBS2 '다큐 3일' 제작진 SNS)


사건 이후 ‘다큐 3일’ 제작진은 SNS에 “72시간 촬영은 여전히 낭만이었다”는 문구를 남겼는데요. 협박 소동으로 장소를 옮겨 만남이 진행됐을 것이라는 추측이 이어졌습니다. 다행히 허위 협박이 낭만을 모두 빼앗지는 못했는데요.

허위 협박은 단순한 ‘장난’으로 치부할 수 없습니다. 경찰·소방 인력은 허위 협박에 발목이 잡혀 다른 범죄 예방이나 구조 활동에 투입되지 못하고 국가적 이미지와 시민의 일상까지 흔들리는데요. 결국 그 피해는 사회 전체에 전가되죠. 솜방망이 처벌로 이어지는 구조를 끊고 허위 협박을 사회적 재난으로 다루는 엄중한 인식이 필요한 현재, “왜 반복되는가”라는 질문은 이제 “어떻게 끊을 것인가”라는 답으로 향할 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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