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로벌 시민] 리스본을 품고 있는 ‘그리스도 왕’

코임브라(포르투갈)=장영환 통신원

포르투갈의 수도 리스본은 워낙에 아기자기하고 전 세계에서 모인 관광객들로 활기 넘치는 도시라서 어딜 가나 관광지 같다. 그렇다 보니 생각보다 빠듯한 일정에 쫓겨 포기하는 명소가 있기 마련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꼭 한 번은 가보기를 추천하는 곳이 바로 알마다 지역에 있는 ‘그리스도 왕 상’이다.

이 예수 상은 타구스강변에서 바라보면 그 크기를 가늠할 수 없어 무심하게 ‘강 건너편 언덕에 예수님이 팔을 벌리고 있구나’하고 넘길 수도 있다. 가는 길마저 여객선이나 전철, 자동차로 강을 건너야하고 또 버스를 이용해야하기 때문에 조금 번거롭다. 하지만 막상 성상 앞에 다다르면 관광객들은 거대한 규모에 압도돼 ‘우와’하고 감탄사를 내뱉는다.

‘그리스도 왕 상’은 4개의 아치로 구성된 82미터 높이의 사다리꼴 받침대에 28미터에 이르는 그리스도 상이 올라서 있어 전체 높이가 110미터다. 서울 63빌딩의 절반이 조금 안 되는 규모다.

모양이 어디에서 많이 봤다 싶을 텐데, 짐작했겠지만 브라질 리우데자네이로 코르코바도산에 있는 ‘구세주 그리스도 상’과 판박이다. 리스본의 총대주교 마누엘 곤살베스 세레헤이라 추기경은 1934년 리우데자네이로에 있는 구세주 그리스도 상을 감상하며 포르투갈에도 예수의 성상을 세우라는 영감을 받았다.

이후 2차 세계대전이 한창이던 1940년 연례 피정을 마치고 파티마에 모인 포르투갈의 주교들은 “포르투갈이 전쟁에서 살아남는다면 예수 성심 기념비를 리스본에 세우겠다”고 서약했다. 중립국을 표방한 포르투갈엔 아무런 피해 없이 전쟁이 마무리되자 평화라는 그리스도의 선물에 대한 국민적인 감사의 표시로 성상 건립은 속도를 냈다. 1949년 12월 첫 돌을 놓은 예수 상 건립은 1959년 5월 제막식을 갖기까지 10년에 걸친 대공사였다.

예수 상이 있는 곳은 성소답게 경건함이 묻어난다. 성상을 받치고 있는 기단부 안에는 성스러운 예술 작품과 성당, 예배당이 있으며 엘리베이터를 타고 올라가면 리스본 시내 전경을 감상할 수 있는 전망대가 있다.

야외에는 거대한 철제 십자가, 묵주를 들고 있는 성모 마리아 상, 예수의 고난을 담은 부조 작품, 산책로 등이 잘 조성돼 있는데 그리스도 상, 성모 상 등 앞에서 성호를 그으며 기도하고 기념사진을 찍는 관광객들의 모습을 쉽게 볼 수 있다.

무엇보다 이곳은 타구스강을 가로지르는 4.25다리와 강변을 따라 길게 연결된 리스본 시를 한 눈에 담을 수 있다. 리스본 시내에서는 골목 골목 건물 건물을 마치 ‘나무’처럼 봤다면 알마다의 예수 상 밑 언덕에선 오렌지빛 지붕에 짙푸른 강물, 정박 중인 흰색의 거대한 유람선, 초록의 수목들이 어우러진 리스본이라는 ‘숲’을 보기에 제격이다.

리스본(포르투갈)=장영환 통신원 chehot@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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