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복상장만 없어도 주가 30%↑”…가계자산 75%가 부동산 집중
자산, 자본시장으로 이동하면 기업 투자ㆍ증시 상승 이어질것

지금 당장 코스피 전체 종목이 가진 순자산을 다 팔고 주주에게 환원한다고 가정할 경우 수익률은 고작 7%다. 이를 주가순자산비율(PBR)이라고 하며, 기업의 순자산 대비 기업가치를 나타내는 지표다. 다시 말해 시가총액을 순자산으로 나눈 값으로, 주가가 자산 대비 얼마나 고평가 내지 저평가됐는지를 가늠할 수 있다.
7%를 코스피 전체 종목 PBR로 환산하면 1.07배(21일 기준)다. 우량 종목 200개(코스피200)도 마찬가지로 1.07배였다. 기업 가치는 앞으로 얻을 이익이 프리미엄으로 더해지는데, 우리 기업 대부분이 미래가치를 인정받지 못하는 셈이다.
그나마 코스피가 3000포인트를 넘어서며 PBR 1배를 넘었지만, 올 초만 해도 0.84(1월 2일 기준)배에 불과했다. 예컨대 미국 대표기업 500개(S&P500)의 PBR은 5.36배(21일 기준)로 우리와 5배나 차이 난다. 영국 FTSE 100지수는 2배 수준이다. 최근 밸류업이 이뤄진 일본의 경우 1.42배다.
코스피의 평균치는 낮지만, 미래가치를 높게 평가받는 기업들도 있다. 방위산업 대표기업 한화에어로스페이스는 8.24배, 원자력 수출 수혜 기업 두산에너빌리티는 5.56배다.
‘불닭볶음면’으로 세계적인 돌풍을 일으킨 삼양식품의 PBR은 무려 12.83배다. 이들 기업의 공통점은 수출 경쟁력과 성장 동력이다. 기업이 커질 수 있다는 믿음은 강력하게 주가를 끌어올린다.
이다연 다올투자증권 연구원은 삼양식품에 대해 “주요국 대형 채널 내 매대 입점 물량만 고려해도 현재 눈높이 수준의 외형 성장 가시성은 높다”며 목표주가를 150만 원에서 180만 원으로 상향했다. 성장이 담보된다면 상방의 한계가 없단 점을 여실히 보여준다.
실적이 기업 가치를 가르는 중요한 변수지만, 우리 기업의 저평가는 단순히 성과 부진이나 경기 요인만으로 설명하기 힘들다. 제도적ㆍ기업 문화적인 요인이 증시의 발목을 잡고 있기 때문이다.
특히 중복상장은 개별 기업의 만년 저평가의 구조적 문제라는 지적이 나온다.
많은 금융투자업계 전문가들은 중복상장이 기업 가치와 신뢰성을 훼손해 ‘코리아 디스카운트’(한국 증시의 저평가) 현상을 부채질한다고 지적한다. 중복상장은 모기업 지배주주의 이익을 대변하는 반면 소수 주주의 권익은 크게 해치는 결과를 초래한다는 것이다.
이효섭 자본시장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모자회사 중복상장 이슈만 해결돼도 한국 주가는 30% 정도 올라갈 수 있다고 본다”고 내다봤다.
기업 스스로 주가 부양 의지가 부족한 점도 상승을 가로막는다. 배당과 자사주 소각은 주주환원의 대표적인 방법으로 통한다. 그러나 투자자들 사이에서 국내 기업들은 배당은 인색하고, 자사주 소각을 통한 주가 부양 의지가 거의 없다는 생각이 만연하다.
일각에선 이런 문제의 해법으로 자사주 소각 의무화와 배당소득 분리과세 같은 제도 추진을 기대하고 있다.
이성훈 키움증권 연구원은 “대외 불확실성 해소 국면 속 상법 개정안 통과 이후 자사주 소각 의무화, 배당소득 분리과세 등 거버넌스 개혁 정책 추진 기대감도 지속되며 국내 증시 상승세를 뒷받침한다”며 “코스피 5000특별위원회에서 자사주 소각 의무화 법안 추진 소식이 전해지자 자사주 비중이 높은 증권, 지주 등 저 PBR 테마의 상승도 지속하는 흐름을 연출했다”고 평가했다.
그러면서 “국내 증시에 한정해서는 자사주 소각 의무화, 배당소득 분리과세 등 증시 활성화 정책 기대감을 지속 확대시키는 소식 여부도 중요하다”고 조언했다.
자산 시장 전체의 구조적인 문제는 가장 큰 숙제다. 우리나라는 부동산 자산을 극도로 선호하는 나라다. 17일 한국은행이 발표한 ‘2024년 국민대차대조표(잠정)’에 따르면 가계 및 비영리단체의 순자산 중 주택(50.9%) 비율이 가장 높았다. 이어 주택 외 부동산(23.7%), 현금 및 예금(19.4%), 보험 및 연금(12.1%) 순이었다. 가계 자산의 74.6%가 부동산에 집중돼 있다는 뜻이다.
영국(46.2%) 일본(37.0%), 미국(28.5%) 등 주요 선진국보다 크게 높은 수준이다. 게다가 10년 전인 2014년(자산 3억3364만 원)의 부동산(73.2%)과 금융자산(26.8%) 비중과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
자산이 자본시장으로 몰리면 주식, 채권, 펀드 등 금융상품에 자금이 흐른다. 그 돈은 기업 투자자금으로 연결되고, 기업은 자본조달이 쉬워진다. 이는 다시 벤처기업과 신성장 산업 등 혁신 기업에 자금 공급으로 활용될 수 있다.
정부가 종합금융투자사업자(종투사)의 부동산 자산 운용 한도를 축소하고 모험자본 공급 의무를 부여하기로 한 것도 이런 맥락이다.
전문가들은 금융투자 시장으로의 자금 유도가 기업 경쟁력과 투자 활성화로 이어지고, 증시 상승의 동력이 될 것으로 전망한다.
박상현 iM증권 연구원은 “금융업종을 중심으로 한 밸류업이 가시화돼야 한다”며 “국내 증시가 추가 상승하거나 코스피 5000포인트를 달성하기 위해선 일관성 있는 정책과 강력한 제도 개선이 병행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신정부의 정책적 의지 등으로 국내 경기 모멘텀 강화 및 산업 경쟁력 회복이 필요하고 우호적인 대외 여건도 뒷받침돼야 한다”며 “코스피 5000포인트가 꼭 불가능한 영역만은 아닐 수도 있다”고 말했다.











